
그리스도인의 제자도란 무엇인가?
2026년 01월 07일
왜 세례는 은혜의 방편인가?
2026년 01월 07일세례는 왜 중요한가?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기독교 제자도의 기초”의 일곱 번째 글입니다.
세례는 기독교 신앙이 시작된 이래로 그 중심에 있어 왔다. 그러나 세례의 뿌리는 단지 신약 교회가 세워진 때에 머무르지 않고 훨씬 더 깊이 내려가, 구약 및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맺으신 언약 관계로까지 이어진다. 사실 구약의 표와 인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우리는 새 언약의 세례를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 달리 말하면,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은 에덴동산의 두 나무까지 거슬러 올라가, 태초부터 자기 백성에게 눈에 보이는 표징과 표지를 주셨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성경에 대한 무지가 매우 만연한 시대에 살고 있다. 하나님의 본질에서부터 인간에 대한 성경적 이해, 세례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성경의 가르침을 둘러싸고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다. 이처럼 혼란이 가득한 때에 세례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리하여 세례가 왜 중요한지, 왜 그리스도인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표와 인
첫째, 세례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맺으신 언약의 표이며 인이다. 이것은 더 큰 실체를 가리키는 가시적인 표지이다. 창세기 17장을 보면, 하나님은 처음에 아브라함에게 언약의 표징으로 할례를 주셨다. 할례는 육체를 베어 내는 행위로, 하나님의 백성을 구별하고,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들을 기억하게 했다. 창세기 17장 10절에서, 하나님은 이 할례를 “내 언약”이라고 부르신다. 한편 성만찬을 제정하실 때, 주 예수님도 포도주를 나누어 주면서 “언약의 피”(마 26:28)로 일컬으신다. 할례나 포도주 자체가 언약의 실체는 아니었으나, 그것들은 언약 자체의 실체를 가리켰다. 표징과 그것이 나타내는 실체는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7장 2절은 이를 “성례전적 연합”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어느 하나를 가리키면 곧 다른 하나를 지칭하게 된다.
결혼반지를 비유로 생각해 보자. 결혼반지는 결혼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끼고 있는 사람이 결혼한 상태라는 것을 나타내는 표이다. 즉, 그것은 결혼한 사람이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니라 다른 이에게 속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눈에 보이는 장치이다. 세례도 그와 같다. 세례를 통해 우리는 새 언약의 표징, 곧 우리가 삼위일체 하나님과 맺은 언약 관계에 속한 자라는 표징을 받는다. 그리스도인은 삼위일체 하나님께 속하며, 그분께 속한 자들은 그분의 표징을 지녀야 한다.
새 이름
둘째, 세례를 통해 언약의 표징을 받은 자들은 새로운 정체성을 담은 새 이름을 받는다. 세례를 받을 때 우리는 세례를 통해 연합하게 되는 바로 그분의 이름을 받는다. 예수님은 “너희는 가서……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마 28:19)라고 명령하신다. 사도 바울도 이 가르침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롬 6:3)라고 말한다. 그는 갈라디아서 3장 27절에서도 비슷하게 표현한다. 출애굽 사건 당시 백성들이 옛 언약 아래서 “모세에게 속하여”(고전 10:2) 세례를 받았던 것처럼, 우리는 새로운 출애굽 가운데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는다.
이것은, 신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임을 가르쳐 준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매우 긴밀하게 연합되어 있어서, 그분이 죽으셨을 때 우리도 함께 죽었고(갈 2:20 참고), 그분이 부활하고 승천해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으실 때 우리도 함께 그렇게 되었다(엡 2:6 참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다. 그로 인해 혼돈과 우울, 절망에 빠지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여, 당신에게는 삼위일체 하나님, 바로 그분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당신의 정체성은 당신이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즉, 당신은 세례를 통해 그분과 함께 장사되었을 뿐 아니라 새 생명 가운데 행하도록 함께 살리심을 받은 새 피조물이다(롬 6:4,5 참고). 우리는 세상이나 심지어 우리 자신의 육신이 우리에 대해 말하는 바에 귀 기울여서는 안 된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세례를 통해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지를 잘 들어야 한다.
은혜의 방편
마지막으로, 세례는 은혜의 방편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우리는 하늘 시온을 향해 나아가는 연약하고도 지친 순례자이다. 우리에게는 이 순례의 여정을 위한 힘의 원천이 필요하다. 세례는 바로 그런 힘의 원천 중 하나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양육하고 강건하게 하시려고 교회에 이 성례를 주셨다. 그렇다고 세례 자체에 어떤 능력이 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표징이 믿음과 결합될 때, 성령께서 세례라는 행위를 사용해 하나님의 백성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뜻이다. 세례를 통해, 물이 사람을 깨끗하게 하듯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로 우리를 씻어 정결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우리의 마음이 굳세진다. 세례 받는 이에게 물이 부어지는 것을 볼 때, 성령께서 우리 위에 부어졌으며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함으로써, 우리의 믿음은 확신을 얻는다. 시험과 유혹의 순간에, 마귀가 우리의 가장 약한 지점을 공격하면서 우리가 결코 구원받을 수 없고 하나님이 결코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신다고 속삭일 때, 우리는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처럼 담대히 대답할 수 있다. “나는 세례를 받았다! 나는 세례를 받았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