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회서신을 읽는 법
2025년 12월 04일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
2025년 12월 10일생명의 떡이신 예수님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예수님의 자기 선언들”의 첫 번째 글입니다.
요한복음 6장 48절에서, 우리는 ‘나는 ~이다’라는 예수님의 일곱 가지 자기 선언 가운데 첫 번째를 듣는다. 이 선언들 중 여섯 가지에는 보어가 포함되어 있다. 즉, “떡”(요 6:48), “빛”(요 8:12; 9:5), “문”(요 10:7,9), “선한 목자”(요 10:11,14), “부활”과 “생명”(요 11:25), “길”과 “진리”와 “생명”(요 14:6)이다. 이 표현들은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한편 요한복음 8장 58절의 선언에는 보어가 없으며, 선지자 모세가 하나님의 이름을 묻자 주님께서 알려 주신 신적 이름, “스스로 있는 자”(출 3:14)를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적용해 말씀하신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요 8:58). 이 절대적 선언은 ‘나는 ~이다’라는 예수님의 모든 선언이 그분의 신성을 확증함을 분명히 보여 준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았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이 말씀을 신성모독으로 여겼다. 그래서 그들은 돌을 들고 예수님을 치려 했다(요 8:59 참고).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신성에 관해 선포하신 진리를 알아들었으나 믿지 않았다. 우리가 첫 번째 ‘나는 ~이다’라는 선언을 살펴보면 알겠지만, 이런 불신앙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생명이냐 죽음이냐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길게 대화하시던 중,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요 6:48)라고 말씀하셨다. 이 담화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 직후(요 6:5–14 참고), 그리고 유월절과 초막절 직전에 하신 것이었다(요 6:4 참고). 이 두 사건은 예수님께서 생명의 떡이시라는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맥락을 제공한다.
초막절은 이스라엘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받은 후에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돌봐 주신 일을 기념하는 절기였다. 광야는 척박한 곳이었다. 그곳에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음식과 물, 낮 동안의 그늘과 밤 동안의 불 같은 자원이 없었다. 그러나 그 황무지를 여행하는 동안, 온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자신의 풍성한 대로 그들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심으로써 자신의 관대함을 드러내 보이셨다(빌 4:19; 고전 10:1–4 참고). 그분이 베풀어 주신 첫 기적은 일용할 양식을 주신 일이었다. 사람들은 그 양식을 처음 보았을 때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 만나라고 불렀다. 시편 78편 23–25절은 광야에서 떡(만나)을 주신 주님의 선하심을 증언한다.
“그러나 그가 위의 궁창을 명령하시며
하늘 문을 여시고,
그들에게 만나를 비같이 내려 먹이시며
하늘 양식을 그들에게 주셨나니,
사람이 힘센 자의 떡을 먹었으며
그가 음식을 그들에게 충족히 주셨도다.”
요한복음 6장에서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조상들에게 만나를 주었던 모세처럼 기적을 행하여 자신을 증명하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모세가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께서 만나를 주신 것이라고 설명함으로써 그들을 바로잡으셨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자신이 하늘로부터 내려온 만나, 곧 그들의 영혼을 살리는 떡임을 설명한다. 만나는 하나님의 선한 선물로,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 사십 년 동안 그들의 육체를 먹여 살렸다. 그러나 만나를 먹었던 그들은 죽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요 6:54)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오천 명을 먹이실 때, 자신이 모든 것을 공급하는 주님임을 보이시려고 모세 시대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재현하셨다. 그러나 사람들이 예수님을 다시 찾아왔을 때, 그분은 그들이 잘못된 식욕에 이끌리고 있다고 경고하셨다. 그들은 썩을 양식을 위하여 수고하고 있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수고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고는 자신이 바로 생명의 떡이라고 설명하셨다.
떡에 대한 말씀과 그분의 살을 먹고 그분의 피를 마신다는 표현은 명확하게 예수님의 인성을 가리킨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이 인성 가운데 생명 바치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다’라는 선언들은 예수님의 신성도 말한다. 그러므로 그분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분의 희생을 믿을 뿐 아니라, 성육신하신 하나님으로서 불멸하는 그분의 생명도 믿는다는 것이다. 먹는다는 표현은 구원받는 믿음을 묘사하기에 적절하다. 먹는 것이 몸속으로 들어와 생명을 살리고 더욱 건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몸을 위한 음식과는 달리, 신자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은 사랑을 실천하더라도 소모되거나 소진되지 않는다. 그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을 향한 삶을 영원히 지탱한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