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혜 문학을 읽는 법
2025년 11월 22일
선지서를 읽는 법
2025년 11월 22일히브리 시를 읽는 법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는 언젠가 시를 “가장 좋은 단어들을 가장 좋은 순서로 배열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를 비웃고 무시하는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은 다시금 시를 사랑할 필요가 있다. 특히 구약의 삼분의 일이 시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러나 시를 읽기란 쉽지 않을 때가 많다. 시는 언어의 경계를 확장하고, 독자로 하여금 빈틈을 채워 넣는 큰 수고를 하게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성경의 많은 부분을 시로 계시하는 것을 가장 좋게 여기셨다면, 우리는 그것을 잘 읽는 독자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는 구약의 시를 잘 읽기 위한 네 가지 조언을 전하고자 한다.
1. 평행법의 미묘함을 포착하라.
영어로 된 시에서는 각 행의 끝소리를 맞추는 각운을 자주 사용한다. 한편 히브리 시는 평행법을 사용하여 행들을 서로 연결한다. 특히 두 유형의 평행법이 가장 흔하게 나타난다. 하나는 동의적 평행법으로, 두 행이 매우 비슷한 의미를 전한다. 다른 하나는 대조적 평행법으로, 두 행이 대조되는 관점을 나란히 보여 준다(시편 1:6, 그리고 잠언 10:1 등 많은 잠언에 나타난다). 동의적 평행법은 보통 두 행이 같은 내용을 두 번 반복한다고 오해 받는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둘째 행에는 언제나 새로운 내용이 더해진다. 예를 살펴보자.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시 2:10).
둘째 행에서, 시인은 권면의 대상을 왕들을 넘어 하급 관리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통치자로 확장한다. 또한 그는 지혜가 무엇인지 설명하는데, 그가 말하는 지혜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지극히 높으신 왕으로 세우신 것을 보고 경고를 삼는 것이다(시 2:5–9 참고).
모든 종류의 평행법에 대비해야 한다. 어떤 평행 구절들은 비교를 보여 주고(시 103:11 참고), 어떤 것은 두 부분으로 된 이야기를 전하며(시 3:4 참고), 어떤 것은 단순히 첫째 행에서 시작된 문장을 완성한다(시 111:6 참고). 우리는 언제나 둘째 행이 첫째 행을 어떻게 완성하거나 심화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2. 은유를 만끽하라.
은유는 시의 생명줄이다(이 말 자체가 은유라는 데 주목하라). 은유는 현실을 깊이 통찰하는 수단이 된다. 예레미야 2장 13절을 생각해 보자.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은유를 이해하려면, 그 이미지를 그려 보아야 한다. 샘은 땅에서 물이 자연히 솟아나는 근원이다. 맑고 신선한 물이 거저 흘러나온다. 하나님의 넘치는 선하심이 바로 그와 같다. 반면, 웅덩이는 입구가 좁은 구덩이로, 바위를 파내고 물이 새지 않도록 회반죽을 발라야 하는 수고가 따른다. 웅덩이에 물이 고인다고 해도, 그 물은 그렇게 고여 있다가 썩고 만다. 더욱이 우상은 터진 웅덩이와 같아서 물조차 담지 못하며, 진창만 남을 뿐이다. 죄의 비극은 우리가 생수의 근원을 터진 웅덩이와 맞바꾸는 데 있다. 좋은 성경 사전이나 스터디 바이블은 고대 근동의 이미지를 더 잘 이해하도록 돕는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은유가 종종 집단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시편 1편 3절을 읽어 보자.
“그(경건한 자)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이 은유에서는 경건한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 나무이다. 그런데 다른 은유들도 나타난다. 주님은 나무를 그처럼 번성하는 곳에 심으신 농부이고, 나무의 열매는 성도의 선한 행실이다. 주님께서 우리를 돌보시는 분으로 나타나시는 것이 얼마나 격려가 되는지 모른다. 은유를 만날 때는 그것을 마음에 새겨 보자. 주도적인 은유가 함축하는 다른 은유들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
3. 누가 말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라.
우리는 때때로 ‘누가 말하고 있는가’라는 중요한 질문을 소홀히 하는 까닭에 구약의 시 앞에서 혼란스러워한다. 구약의 시인들은 종종 주님과 그 백성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극적으로 표현하는데, 때로는 아무런 고지도 없이 화자가 바뀌기도 한다. 인상적인 예가 예레미야 8장 18–20절에 나오는데, 여기서는 화자가 세 번 바뀐다. 아래 본문에 화자를 표시해 두었다.
[예레미야] “
슬프다 나의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내 마음이 병들었도다.
딸 내 백성의 심히 먼 땅에서 부르짖는 소리로다.”
[백성] “
여호와께서 시온에 계시지 아니한가?
그의 왕이 그 가운데 계시지 아니한가?”
[여호와] “
그들이 어찌하여 그 조각한 신상과 이방의 헛된 것들로 나를 격노하게 하였는고?”
[백성] “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
각 경우에, 우리는 문맥과 발화 자체에 담긴 단서들을 바탕으로 화자를 분별할 수 있다. 누가 말하는지 묻는 법을 배우면, 난해한 본문을 풀어 가는 데 도움이 된다.
4. 하나님의 정교한 말씀을 기뻐하라.
하나님께서 일부러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시려고 성경의 많은 부분을 시로 주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극히 기뻐하도록 시를 주셨다. 성경의 시를 더 깊이 감상하도록 도와줄 다른 그리스도인이 항상 주변에 있어야 한다. 또한 영어로 된 좋은 시를 읽어야 한다. 그러면 머지않아 성경의 시를 점점 더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