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브리 시를 읽는 법
2025년 11월 22일
복음서를 읽는 법
2025년 11월 27일선지서를 읽는 법
선지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 이유 중 하나로,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꿈과 환상으로 자신을 계신 것을 꼽을 수 있다. 하나님은 오직 모세와만 얼굴을 마주하여 말씀하셨다(민 12:6-8 참고). 대선지서에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이 포함된다. 소선지서에는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가 포함된다. 여기서는 선지서를 읽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몇 가지 지침을 제시하고자 한다.
1. 맥락을 살피라.
먼저,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상황, 읽고 있는 선지자를 가능한 한 많이 이해해야 한다. 개혁주의 스터디 바이블처럼 좋은 스터디 바이블이 도움을 줄 수 있다.
2. 선지자를 하나님의 언약 변호자로 인식하라.
둘째, 선지자들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상기시키는 하나님의 언약적 대변자였다. 그들은 언약의 여러 부분, 이를테면 서문과 역사적 서론(“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출 20:2])을 전했고, 종종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명령(규례)을 지켜야 할 책임을 상기시켰다. 그러나 그들의 주된 사명은 언약의 제재를 선포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일상적인 표현에서는 ‘제재’를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예: 경제 제재). 그러나 성경에서는 ‘제재’라는 말에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모두 담겨 있다. 다시 말해,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나 벌을 받는다. 선지자는 유능한 법률가처럼, 왕이나 백성(또는 둘 다)을 상대로 하는 소송을 정리하고, 설교를 통해 그들이 하나님의 규범을 어떻게 어겼는지를 낱낱이 고발했다.
3. 예언적 표현을 인식하는 법을 익히라.
예언적 표현은 선지자들이 미래의 실상을 말할 때 사용하는 중요한 방식이다. 여기서 핵심 논지는, 선지자가 이스라엘과 각 지파들, 그들의 땅과 성전을 관리하고 질서를 확립하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면서, 아직 오지 않은 새 언약의 실재를 매우 자주 묘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독자는 끊임없이 “선지자가 실제로 자신을 둘러싼 당대의 문제에 대해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미래의 실재를 말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결국 예언적 표현이란, 구약의 선지자가 이스라엘의 상황을 예표론적으로 구성하여 새 언약 시대의 메시아적 실재를 묘사하는 표현 방식이다. 바로 이것이 예언적 표현의 본질이며, 우리가 이를 인식하지 못하면 선지자들을 오해하게 된다.
바울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며, 아그립바 앞에서 변론할 때도 마찬가지였다(행 26:19-29 참고). 바울은 선지자들에게 호소하여, 그들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와 자신의 사명에 대해 말한다고 밝힌다. 선지자들의 언어, 즉 그들이 전할 바를 표현하는 비유적 관용어법은, (특히 새 언약의 신자에게) 겉으로 드러난 표현 방식과 새 언약으로 주어진 약속의 실재를 구별하도록 요구한다.
요컨대 예언적 표현에서, 선지자들은 종종 옛 언약의 제도가 처한 상황을 빌려 새 언약을 묘사한다. 예언의 언어, 즉 선지자들이 사용하는 이미지와 관용적 표현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온 인류에게 일어날 일을 묘사하는 데 자주 사용된다. 예를 들어, 포로와 흩어짐, 지파들의 모임, 약속의 땅으로의 귀환, 저주가 나타나는 형태를 서술할 때 중요하게 드러난다. 선지자들은 미래에 대해 전지하게 말하지는 않지만, 종종 각 사건들을 서로 뚜렷이 구별짓지 않은 채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임하시는 하나님과 새 언약, 더 나아가 우리 주님의 재림에 이르기까지 그 확실성을 증언한다. 그런데도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그들이 말하는 여러 국면에는 여전히 유기적 통일성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요엘이 성령을 부어 주시는 일과 다가올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을 묘사할 때, 그는 당대의 청중에게만 말한 것이 아니었다(욜 2:28–32 참고). 요엘 2장은 사도행전의 오순절 사건에서도 인용된다(행 2:17–21 참고). 또한 사도행전 2장 28-32절에 표현된 것과 동일한 이미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서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심지어 누군가는 요엘의 예언이 우리 주님의 재림에서 궁극적으로 성취된다고 주장할 수도 있는데, 그 역시 합당하다. 이와 같이 요엘이 단일한 의도로 말했을지라도, 그의 말은 구속사 전반에 걸쳐 여러 적용점(착지점)을 가진다. 그래서 성령을 부어 주시는 일을 다룬 이 본문은, 존 칼빈이 예언적 표현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설명할 때 즐겨 사용한 구절 중 하나였다.
4. 신약성경이 어떻게 선지자들을 인용하고 암시하고 상기시키는지를 찾아보라.
마지막으로, 엠마오로 가는 길에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모든 성경이 자신과 자신의 사역(또는 확장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관해 말한다고 하신 것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신약성경이 선지자들을 어떻게 인용하고 암시하고 상기시키는지를 항상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신명기 18장 15–19절은 모세를 모든 후대 선지자들의 전형으로 꼽는 토대가 되는데, 변화산의 증인이었던 베드로는 바로 이 말씀이 마지막 선지자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궁극적으로 성취된 것을 깨달았다(행 3:17–26 참고). 히브리서 저자도 그런 해석을 더욱 확증한다. 그는 ‘모세가 하나님의 집(옛 언약)에서 종으로서 신실했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새 언약)에서 아들로서 신실했다’는 것을 이해했다. 더욱이 하나님은 옛 집이든 새 집이든 그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이시다(히 3:1–6 참고).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