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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으로 베푸는 삶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잘 알려진 성경 이야기 설명하기”의 아홉 번째 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베푸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자신이 가진 것을 교회와 기독교 자선 단체, 선한 목적에 이바지하는 사회적 활동, 가족과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나누어 준다. 그러나 베푸는 일은 실제로 만만치 않은 도전일 수 있다. 그렇게 베푸는 것 자체가 어렵다면, 즐거이 베푸는 일은 갑절로 어려운 도전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쁨으로 베풀 수 있을까? 다음 세 가지 통찰은 기쁨으로 베푸는 삶을 살도록 우리를 독려한다.

기쁨으로 베푸는 삶은 복음의 정수를 드러낸다

기쁘게 베푸는 일을 꾸준히 실천하려면,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확고하게 인식해야 한다.

하나님의 새 언약의 약속은 이렇게 선언한다.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히 8:12; 렘 31:34 인용). 이 말씀은 택하신 자들에게서 진노를 거두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뜻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행하신 제사장적 사역을 통해 이 약속을 성취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담당하신 일은 그분께 가장 큰 고난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지못해 그렇게 행하신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무한히 은혜로운 작정과 기쁘신 뜻에 따라 자기 아들을 내주셨다. 그리스도의 희생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서 비롯된다.

기쁨으로 베푸는 데는 바로 이처럼 기꺼이 내주고자 준비된 마음이 담겨 있다. 그것은 복음 안에서 자기 아들을 내주신 하나님의 기꺼운 뜻을 반영한다. 또한 그것은 속죄하신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신실하게 나타나는 열매이다. 하나님은 아들의 신실한 희생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사랑하신다(요 10:17 참고). 그리고 비록 우리가 그분을 온전하게 닮지는 못할지라도,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고후 9:7)하신다.

즐거이 내주는 것이 아버지를 기쁘시게 한다면, 반대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부성적인 노여움을 불러일으킨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신명기 28장 47–51절은 이 사실을 우리에게 분명히 일깨워 준다. 하나님은 자신을 섬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섬기지 않는 것에 언약의 저주가 따른다고 설명하신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의 섬김 자체만큼이나 섬기는 방식을 중요하게 여기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단순히 내주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되며, 즐거이 내주어야 한다.

기쁨으로 베푸는 삶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통해 타락한 욕망을 이긴다

타락한 본성은 주는 것이 아니라 탐욕으로 기운다. 그것은 베푸는 것이 개인적인 이득 없이 손해만 가져올 뿐이라고 판단한다. 그리고 자선을 베풀면서 기뻐하기보다 비용을 생각하며 슬퍼한다. 그런 마음은 물질을 소유하려는 욕망으로 가득 차기 쉬워, ‘내가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또는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보다는, ‘내가 무엇을 가질 수 있을까?’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티모시 더들리-스미스(Timothy Dudley-Smith)는 자신의 찬송가 ‘주여, 지나온 세월 동안(Lord, for the Years)’의 3절에서 그런 마음을 잘 표현한다. “주여, 이 시대, 우리 세대와 이 땅을 위해 기도하오니, 쾌락과 재물과 염려에 짓눌린 영혼들을 위하여……우리의 기도를 기쁘게 들으소서.”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찬송가에 묘사된 영적 눌림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유혹을 이기고 오히려 기꺼이 베풀 수 있도록 믿음을 주신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다른 이들에게 유익을 끼치며, 우리 자신의 영혼에도 선을 이루게 하신다.

기쁨으로 베푸는 일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것이 우리 자신에게도 유익하다는 사실을 특히 더 확신할 필요가 있다. 주는 일의 주된 목적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지만, 성경은 실상 주는 것이 우리 자신에게도 유익함을 종종 일깨워 준다. 얼마든지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전 11:1).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선을 행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확신한다면, 기쁨으로 베푸는 일이 우리에게 유익하다는 사실도 확신할 것이다.

기쁨으로 베푸는 삶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 되심을 신실하게 증언한다

기쁨으로 베풀라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근본적이고도 널리 영향을 미치는 가르침이다. 그 가르침을 신실하게 따를 때, 우리는 상황이나 물질적 소유, 또는 자신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흔들리지 않고 이를 실천할 수 있다. 기쁨으로 베푸는 실천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임재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구약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 있는 즐거움을 이렇게 표현한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 또한 신약은 그리스도를 그와 같은 기쁨의 근원으로 제시한다. 그리스도가 곧 하나님이시므로, 이는 마땅한 일이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계셨으므로, 그들이 두렵고 무서운 상황에 처했을 때도 “안심하라”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다. 신자에게는 주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할 이유가 충분하다. 그러므로 기뻐하라는 권면의 중심에는 그분의 임재하심이 있다.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마 14:27).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그리스도인이 기쁨으로 베푸는 일은 상황에 달려 있지 않고,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하시는 그리스도의 임재에 달려 있다. 주님은 우리를 결코 떠나지 않으며 버리지도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특히 역경 속에서 기쁨으로 베푸는 일은 그리스도가 주 되시며 우리 영혼에 충분하신 분임을 세상에 강력하게 증언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증언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할 때, 그중 하나가 바로 기쁨으로 베푸는 일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주신 것이, 우리가 기쁨으로 베푸는 일의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그분은 그리스도인이 믿음 안에서 기쁨으로 베풀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신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는 기쁨으로 베푸는 일의 목적이 되신다. 그리스도인이 날마다 그렇게 행할 때 그분의 주 되심과 충분하심이 증언되고, 그분이 높임을 받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영혼을 위해 은혜로 자신을 내주시고 우리가 신실하게 그분을 따르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채우시는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하며, 더욱 힘을 얻어 기쁨으로 베풀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존 퍼거슨
존 퍼거슨
존 퍼거슨(John C.A. Ferguson) 박사는 스코틀랜드 인버네스 연합 장로교회(Inverness Associated Presbyterian Church)의 목사이다. 또한 그는 『목회를 위한 신학: 교리가 목회자의 삶과 사역에 미치는 영향』(Theology for Ministry: How Doctrine Affects Pastoral Life and Practice)의 공동 편집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