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쁨으로 베푸는 삶
2026년 03월 19일
히브리서에 나타난 주제들
2026년 03월 21일투덜거림, 원망과 불평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잘 알려진 성경 이야기 설명하기”의 열 번째 글입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내와 나는 아이들이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도록 도우려고 짤막한 노래 하나를 가르쳐 주었다. 이런 내용의 노래였다.
네 옷과 네 신발에
왜 불평하니?
너의 선생님과 선생님의 규칙에
왜 불평하니?
집이 없는 사람도 이렇게나 많은데
왜 불평하니?
너에게는 집이 있는데
왜 불평하니?
네가 가진 좋은 것들에
그저 감사하렴.
이 노래가 우리 아이들의 투덜거림과 원망과 불평을 고치는 만병통치약이었다고 말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겠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불평하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할 만하다. 그런데 왜 우리 어른들은, 더욱이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 형편을 두고 불평하는 것일까? 아이들처럼, 우리는 날씨에서부터 햄버거 가격, 운동 경기 결과에 이르기까지 온갖 것에 투덜거린다.
불평은 에덴동산에서 시작되었다. 어느 날, 뱀의 모습으로 나타난 사탄이 하와에게 다가와 물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 3:1) 이것은 거짓이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과 섭리에 대한 불평을 교묘하게 감춘 말이기도 했다. 곁에 서 있던 아담은 사탄의 거짓말을 받아들이고 금지된 열매를 먹었으며, 곧바로 하나님과 하와 모두를 탓하면서 원망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12절, 강조 추가). 타락한 아담 안에서 우리는 모두 죄를 지었고, 늘 불평하는 자들이 되었다.
구약의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여정이 기록되어 있다. 광야를 지나는 동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셨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힘들다고 불평했다. 홍해의 기적이 일어난 지 겨우 사흘 만에, 마라의 물가에서 백성은 모세를 원망하면서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출 15:24)라고 툴툴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배가 고파지자 이렇게 부르짖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출 16:3). 아이러니하게도 수천 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노예가 되어 괴롭힘당하며 죽어 갔던 애굽이, 이제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꿈의 낙원처럼 보였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민 14:3) 이런 불평은 이스라엘이 모세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까지도 신뢰하지 못한다는 것을 드러냈다.
물론 고통을 솔직히 표현한다고 해서 반드시 불평하는 것은 아니다. 고난을 겪을 때 누군가에게 “나는 아프다. 힘들다”라고 털어놓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심지어 건강한 태도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다치거나 두렵거나 걱정될 때, 우리에게 말해 주기를 바란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우리가 자신의 문제를 그분께 아뢰기를 원하신다. 그렇게 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 치유이다. 성경에는 그처럼 탄식하는 모습이 수십 번이나 나타난다. 예를 들어, 다윗은 시편 142편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내가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 내 우환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도다”(1,2절). 또한 욥은 시련의 때에 이렇게 기도한다.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불평을 토로하고 내 마음이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욥 10:1). 예레미야애가는 책 전반에 걸쳐 하나님께 탄식하며 호소하는 것이 선하고 경건한 일임을 보여 준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해 불평하며 그분이 우리의 삶을 섭리하시는 방식을 두고 원망하는 것은 중대한 죄이다. 사도 바울은 광야의 이스라엘을 들어 우리에게 경고한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고전 10:9,10). 교통 체증이나 무더위와 습도, 또는 직장에서의 요구에 투덜대는 것은 ‘용인될 만한 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세상을 제대로 다스리시지 못한다고 비난하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에 따르면,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에 대해 원망하거나 다투는 것”은 제3계명이 금하는 죄이다(문답 113 참고). 또한 우리 형편에 대해 투덜거리는 것은 우리의 “거룩한 고백”(문답 112)에 어긋난다. 그런 태도는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불신자들 앞에서 우리의 증언을 손상시킨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렇게 기록한다.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빌 2:14,15).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은 어린아이처럼 투덜거릴지라도, 그리스도를 아는 우리는 달라야 한다. 우리는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받을”(빌 4:8) 만한 말을 해야 한다. 또한 고난의 때에도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엡 1:11)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그렇다면 불평을 멈추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두 가지 실천 방안이 떠오른다. 첫째, 예수님을 바라보라. 역사상 자신의 형편에 대해 정당하게 불평할 만했던 이가 있다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은 친히 구원하려 하신 자들에게서 ‘멸시를 받아 버림받으셨으나 그 입을 열지 않으셨다’(사 53:3,7 참고). 베드로전서 2장 23절은 이렇게 말한다.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사셨으며, 우리의 죄, 심지어 원망하는 죄에 대한 형벌까지도 대신 담당하셨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복음을 믿어 변화를 받으라. 둘째,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조차 하루 종일 하나님과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라. 이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감사는 불평을 이기고, 복음의 실제를 강력하게 증언한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쳤던 짧은 노래는 옳은 말을 하고 있다. “네가 가진 좋은 것들에 그저 감사하렴.”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