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령의 열매
2026년 01월 28일
사랑을 나타내면서 진리를 말하라
2026년 02월 12일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중보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성령”의 여섯 번째 글입니다.
“다 이루었다”(요 19:30).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완전히 속죄하셨음을 선포하는 이 말씀은, 2천 년 동안 그리스도인들에게 위로가 되어 왔다. 이렇게 ‘단번에 이루어진 속죄’를 히브리서만큼 찬양하는 책도 없다. 히브리서에서는 예수님께서 구약의 제사장들과는 달리 죄를 해결하기 위해 끝없이 제사 드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또한 히브리서는 예수님이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히 7:17)이시며, “그 제사장 직분이 영원히 갈리지 않는다”(24절 참고)라고 말한다. 예수님의 속죄 사역이 완성되었다고 해서, 그분의 제사장 사역이 끝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예수님은 제사장으로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가? 히브리서 저자는 이어서 말한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25절). 예수님께서 지속적으로 행하는 제사장 사역의 핵심은 자기 백성을 위해 중보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레위 제사장들의 사역 가운데 이미 예표되었다. 성전 뜰에 있는 놋 제단에서 제사 드리는 것뿐 아니라, 하나님의 집인 성막에 들어가 금 제단에서 향을 피우는 것도 그들의 직무였다. 하나님의 발등상 앞에서 끊임없이 향기롭게 타오르던 이 향이 바로 그리스도의 중보를 예표했다.
중보한다는 것은 간단히 말해 ‘다른 이를 대신해 요청한다’는 의미이다. 하늘의 중보가 이뤄지는 정확한 형태는 우리에게 어느 정도 신비에 속하지만, 예수님께서 끊임없이 자기 백성의 필요를 아버지께 올려 드린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한다.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 제사장직을 감당하는 동안 속죄를 이루셨고, 하늘에서 감당하는 제사장직을 통해서는 그 속죄를 우리에게 적용하여 유익을 쏟아부으신다. 의사의 약장에 환자들에게 필요한 모든 약들이 가득 차 있다고 상상해 보라. 그 약들은 한 번에 마련되었더라도, 차차 처방에 따라 제공될 것이다. 우리 영혼의 위대한 의사이신 예수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분은 단번에 완전한 속죄를 이루시고, 모든 복을 획득하셨다. 그러나 그 복들 중 많은 것은 본향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의 여정 가운데 차차 주어진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무엇을 간구하실까? 그분은 우리가 ‘온전히 구원받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간구하신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이 얼마나 큰지 깨달을수록, 지금도 계속되는 그분의 중보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십자가를 생각할 때, 죄 사함 받고 칭의를 받아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다 선언되는 복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물론 이것은 마땅하다). 만약 당신이 신자라면, 갈보리에서 얻어진 이 복들은 당신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2천 년 전에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당신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 즉 역사의 어느 특정한 시점에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 궁극적으로 당신의 삶에 칭의의 복을 적용하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예수님의 일이다. 오늘 당신이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다면, 그것은 그분께서 자신의 의가 당신에게 전가되고 당신이 ‘그 안에’ 있는 자로 여겨지도록, 아버지 앞에 서서 간구하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이 시작될 때와 마찬가지로, 그 삶이 지속되는 것도 그와 같다. 칭의는 ‘단번에 완전히 이루어지는’ 복이며, 우리는 다시 의롭다 하심을 받을 필요가 없다. 동시에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모든 복을 획득하셨다. 많은 위험과 수고와 올무가 도사리는 이 세상을 지날 때, 우리에게는 끊임없이 은혜가 필요하다. 유혹을 물리치는 은혜, 거의 압도당할 것 같은 순간에도 견딜 수 있는 은혜, 믿음이 흔들릴 때 붙들 은혜가 필요하다. 하나님은 자신의 지혜 가운데, 그리스도인의 삶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 곧바로 완전해지지는 않도록 설계하셨다. 대신에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그분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고, 믿음과 소망과 사랑 안에서 성장해 간다. 이렇게 우리가 한 걸음씩 전진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날 필요한 은혜를 달라고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간구하신 결과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중보는 그분이 우리를 얼마나 친밀히 돌보시는지를 보여 준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하늘로 돌아가셨으니, 이제 사실상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일에서 물러나셨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분은 할 일을 다 하셨고, 이제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히브리서의 표현을 다시 주목해 보라.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 7:25). 항상. 예수님은 결코 멈추지 않으시고, 자신의 형제자매 중 한 사람도 놓치지 않으시며, 우리의 일상적인 싸움에 절대 냉담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의 마음을 아시고, 우리의 분투를 아시며, 우리를 돌보신다. 그분은 우리가 필요한 것을 틀림없이 받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우리를 위해 간구하실 정도로 우리를 돌보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엄청난 격려가 된다. 우리는 자신이 올바르게 구하고 있는지 의문스러워하지만,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지혜로우신 그리스도는 우리를 대신해 아버지께 구해야 할 바를 정확히 아신다. 또한 우리는 기도가 상달되지 않을까 두려워하지만, 아버지께서 아들을 기꺼이 영화롭게 하시므로 그리스도의 간구는 항상 환영받는다. 우리는 기도하다가 지치고 마음이 흐트러지며 냉담해지기도 하지만, 그리스도는 부활의 생명 안에서 끊임없이 우리를 위해 중보하신다. 우리는 죄에 빠지지만, 그리스도는 이미 우리의 사건을 변호하며 우리가 용서받을 수 있도록 갈보리의 피를 적용하고 계신다. 진실로 그리스도는 우리 자신보다 훨씬 더 우리를 동정하고, 불쌍히 여기며, 사랑하신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그분은 우리가 안전하게 본향에 이르도록 하는 일에 우리보다 더 헌신하신다. 분투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여기서 참된 확신과 위로를 얻는다. 즉, 나의 소망은 내 기도 생활의 열심과 순전함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에 있다. 하늘 보좌에 앉으신 그분은 모든 천사와 천사장들, 그룹들 위에 계시지만, 죄에 빠져 고통받는 양들을 지극히 긍휼히 여기신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생각해 보자.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강요하여 우리를 위한 복을 얻어 내시는 것이 아니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시 2:8). 아버지와 아들은 구원받은 백성을 위해 예수님이 간구하시는 데 기꺼이 뜻을 함께하셨다. 그리고 이제 아버지와 아들은 십자가로 사신, 은혜로 충만한 복을 그 백성에게 쏟아부어 주시되, 하나님의 아들의 기도를 통해 그 복이 하늘에서 흘러 내려오는 것을 기뻐하신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