튤립(TULIP)과 개혁신학 : 전적 타락

2021년 12월 14일

튤립(TULIP)과 개혁신학 : 제한적 속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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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립(TULIP)과 개혁신학: 무조건적 선택

무조건적인 선택(unconditional election)으로 알려진 선택에 대한 개혁주의의 견해는 우리 쪽에서 그분으로 하여금 우리를 선택하게 하는 행동이나 조건을 하나님이 미리 보시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히려 선택은 하나님이 구원하기를 기뻐하시는 누구이든지 간에 그를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주권적 결정에 의존한다. 

로마서에서 우리는 이 어려운 개념에 대한 논의를 발견한다. 롬 9:10–13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여기서 사도 바울은 선택 교리에 대한 자신의 설명을 제공하고 있다. 그는 로마서 8장에서 선택 교리를 중요하게 다루지만 여기서 그는 유대 민족의 과거로 돌아가서 쌍둥이인 야곱과 에서의 출생을 둘러싼 상황을 살펴봄으로써 선택 교리에 대한 자신의 가르침을 잘 그려 주고 있다. 고대 세계에서는 맏아들이 상속이나 족장의 축복을 받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이 쌍둥이의 경우 하나님은 그 과정을 뒤집고 축복을 장자가 아니라 더 어린 자에게 주셨다. 바울 사도가 여기서 주장하는 요점은 다음과 같다. 즉 하나님은 쌍둥이의 출생 전에 이런 결정을 하신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그들이 하는 선한 일이든지 아니면 악한 무언가를 고려하지 않고 그런 결정을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이 서기 위함이다. 따라서 우리의 구원은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고, 오히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운 주권적인 결정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우리 쪽에서 그분으로 하여금 우리를 선택하게 하는 행동이나 조건을 미리 보시지 않는다. – R. C. 스프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들이 믿음으로 나오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하나님이 구원을 위해 작정하는 조건이 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인격적 신뢰다. 하지만 이것은 칭의를 위한 조건이다. 또한 선택 교리는 다른 것이다. 무조건적인 선택을 논의할 때 우리는 선택 교리 자체의 매우 좁은 범위 안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근거’에서 특정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선택하시는가? 그것은 택자의 예견된 반응, 대응 또는 활동에 기초하는 것인가? 선택이나 예정 교리를 가진 많은 사람이 이런 방식으로 선택 교리를 바라본다. 그들은 과거 영원에서 하나님이 시간의 복도를 통해서 내려다 보셨고, 복음이 제시될 때 누가 승낙하고 누가 거절할지를 미리 아셨다고 믿는다. 구원을 위한 이런 조건 즉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나 믿음을 표현하는 것과 같은 구원을 위한 조건을 충족할 사람들에 대한 이런 사전 지식(prior knowledge)에 기초해서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기로 선택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조건적 선택이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 자신이 충족하는 예견된 어떤 조건에 기초해서 하나님은 자신의 선택하는 은혜를 분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조건적 선택’은 내가 생각하기에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 또 다른 용어다. 따라서 나는 ‘주권적 선택’ (sovereign electio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하나님이 일부 죄인들에게 자신의 은혜를 베푸시고 다른 죄인들에게는 은혜를 베풀지 않기로 주권적으로 선택하신다면 이런 결정에 공의를 위반하는 것이 있는가? 이 선물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받아 마땅하지 않은 무언가를 받는 것인가? 물론 아니다. 하나님이 이런 죄인들이 멸망하도록 허락하신다면 하나님이 그들을 부당하게 대우하시는 것인가? 물론 아니다. 한 집단은 은혜를 받지만 다른 집단은 공의를 받는 것이다. 누구도 불의를 받지 않는다. 바울은 이런 반대를 예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롬 9:14상). 바울은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반응으로 그런 질문에 대답한다. 나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God forbid)”(14절) 라는 번역을 더 선호한다. 이어서 그는 계속해서 이런 답변을 더 자세하게 설명한다. 즉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15절). 여기서 사도는 모세가 수 세기 전에 선언했던 것을 자기 독자에게 상기시키고 있다. 즉, 하나님이 원하실 때 또한 원하시는 곳에서 긍휼을 베푸시는 것은 하나님의 신적 권리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내가 긍휼이 여길 자를 긍휼이 여긴다”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어떤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런 유익을 주시는 것을 기뻐하는 자들에게 있는 것이다.

다음 포스팅에서 우리는 튤립(TULIP)의 ‘L’ (제한적 속죄)을 살펴볼 것이다.  

다음 글을 참조하세요.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R.C. 스프로울

R.C. 스프로울

R.C.스프로울 박사는 리고니어 미니스트리(Ligonier Ministries)의 창립자이자 플로리다주 샌포드(Sanford)에 있는 세인트 앤드류 채플(Saint Andrew's Chapel)의 초대 설교 및 강도 목사였고, 레포메이션 바이블 칼리지(Reformation Bible College)의 초대 총장이었다. 그는 을 포함하여 백권이 넘는 책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