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의 증거

2023년 01월 26일

온전한 순복

2023년 02월 04일

요한의 증거

2023년 01월 26일

온전한 순복

2023년 02월 04일

복음서 중의 복음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복음서”의 여섯 번째 글입니다.

‘복음서’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빨리 답변해보자.  혹시 “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전기이다.”라고 대답했는가? 복음서를 전기로만 읽을 때 우리는 기본적으로 복음서를 숲과 동떨어진 나무처럼 보게 된다. 복음서를 읽고 듣는 더 좋은 방법이 있다. 복음서는 전기이지만 이스라엘 왕의 오심과 온 땅에 대한 그분의 나라의 시작을 선포할 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신학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읽을 때 우리는 선지자들이 했던 약속의 성취에 관한 선언으로서 복음서 안에 있는 복음을 읽을 수 있다. 선지자들의 약속 중에는, 여호와께서 아브람(창 17:6), 유다(창 49:10), 다윗(삼하 7:12~13), 솔로몬의 노래(시 72편)와 스가랴의 예언(슥 9:9)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에게 약속하셨던 것처럼 왕이 이스라엘에 임할 것이라는 약속이 있었다. 이 왕이 오실 때 그분은 모든 민족을 위한 평화의 나라를 선포하실 것이다(사 2:2~4, 9:1~7). 우리는 이 오실 왕과 그분의 왕국을 복음서 이야기에서 생생한 색채로 본다.

왕과 그의 나라의 등장은 우리 주님의 탄생 이야기에 표현되어 있다. 예수님의 족보에서 그분은 “다윗의 자손”(마 1:1)으로 묘사된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의 열네 대는 위대한 왕과 이스라엘 왕국을 향해 이동했고(1:2~6), 다윗부터 바벨론 유수까지의 열네 대는 그런 영광스러운 왕의 왕국에서 멀어졌다(1:7~11). 예수님의 오심과 함께 바벨론 유수에서 그리스도까지의 열네 세대는 다윗 왕권과 왕국의 회복이다(1:12~16). 이 아기의 진정한 정체성은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2:1)의 여행에서 드러난다. 그들은 “그에게 경배하기” 위하여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기 위해 왔다(2:2).

요한은 이런 왕의 오심을 알렸고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3:2)라고 가르쳤다. 반면에 우리 주님은 자신이 몸소 회당에서 그분의 나라를 선포하신 것이 특징이었다.(4:17). 사역 전체에 걸쳐서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가르치셨다(4:23, 9:35; 눅 16:16). 그런데 이 용어는 하나님 나라가 복음서의 주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주님은 제자들에게 “천국의 비밀”을 알려주시기 위해 이런 비유를 가르치셨다(마 13:11 또한 19, 24, 31, 33, 38, 41~45, 47, 52절 참조).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당혹스럽게 하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왕으로 사용했고,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물으셨다.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그들은 예수님에게 “다윗의 자손이니이다”라고 답했다(22:42). 그런 후에 예수님은 시편 110편에서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마 22:43~44a)라고 말한 부분을 지적하셨다. 예수님의 결론은 훌륭했고 바리새인들의 말문이 막히게 했다.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22:45).

심지어 그리스도의 수난 이야기도 전기의 슬픈 결말이 아니라 왕과 그분의 나라에 관한 것이다. 대제사장 가야바가 예수님을 심문했을 때 그는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26:63)고 말했다. 예수께서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라고 답변하셨다(26:64). 그러나 이 왕은 먼저 조롱받을 것이다. 즉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그는 홍포를 입고 가시관로 엮은 관을 그 머리에 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든 왕이다(27:28~29). 심지어 그의 머리 위에는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27:37)라는 명찰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요한복음이 분명히 밝히는 것처럼 우리 주님은 비하(卑下, Humiliation)를 통해 승귀(昇貴, Exaltation)를 경험하셨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한복음 12:32).

물론 우리 주님의 부활은 그분의 왕권과 왕국 복음의 가장 강력한 증거이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 28:18). 야고보가 예루살렘 공회에서 말했던 것처럼 그 이유는 부활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행 15:13~18; 암 9:11~12 참조). 예언자들이 예언한 것처럼 왕이 오셔서 그분의 나라를 세우셨다.

이런 복음서 읽기 방식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첫째, 왕이 오셨고 그분의 나라가 가까이 왔기 때문에 더 긴급한 마음으로 복음서를 읽어야 한다. 마가의 특징적인 말은 즉시 우리에게 마가복음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읽고 이해하는 힘을 보여준다(1:12, 18, 21, 23, 29, 42). 둘째, 복음서는 단순한 전기가 아니기 때문에 복음서를 마치 “오래전에, 아주 먼 곳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이야기인 것처럼 읽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 이야기에 참여해야 한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요 20:30~31). 셋째, 설교자들은 복음을 역사적인 유물이나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원칙으로 또는 고난 주간 예배에서 과시용으로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왕이 이 세상에서 세우셨던 영원한 나라의 시작에 관한 긴급한 말씀으로 설교해야 한다. 목회자들은 복음서에서 복음을 전해야 하며 그것을 새로운 법으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

이 글은 원래 테이블톡 매거진에 게재되었습니다.

대니얼 하이드

대니얼 하이드

대니얼 하이드(Daniel R. Hyde) 박사는 캘리포니아주 칼즈배드에 있는 오션사이드 연합개혁교회(Oceanside United Reformed Church)의 목사이다. 그는 『우리 가운데 계신 하나님』(God in Our Midst), 『개혁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Welcome to a Reformed Church, 부흥과개혁사 역간, 2012) 등 많은 책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