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몸과 영혼의 복합체 -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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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몸과 영혼의 복합체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인간론”의 세 번째 글입니다.

교회는 거의 예외 없이 인간의 본성이 몸과 영혼의 복합체라는 데 동의해왔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의 몸과 영혼은 자의식을 지닌 한 인격체로서 심신의 결합체이다. 이 견해를 이분법이라고 한다. 이 글의 목적은 몸(인간 본성 중 물리적/물질적 요소)과 영혼(성경에서 “영혼” 또는 “영”으로 다양하게 묘사되는 비물질적 요소)에 관해 성경이 가르치는 바에 관해 살펴보는 것이다. 이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을 살펴본 후에는, 인간의 본성이 몸과 영혼의 복합체임을 부인하는 견해, 즉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나지만,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삼분법(인간이 몸, 혼, 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견해)을 다룰 것이다. 

우리는 육체적인 존재로서 시작한다. 이것은 창조 기사에서 가르쳐 온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비기독교와 이교 사상의 도전에 맞서 이 진리를 확증해 왔다. 성경은 인간 본성에 육체가 필수 요소임을 말한다. 이는 육체가 물질이라는 이유로 과소평가하려는 경향을 완화시킨다. 플라톤 철학은 영혼은 불멸이며 인간 본성에 필수적이지만, 육체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며, 기독교를 왜곡한 영지주의적 가르침은 우리의 신성한 영적 본성이 인간 존재에서 가장 지배적이라고 주장한다. 이와는 달리, 기독교는 육체가 단지 영혼의 부속물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영혼이 환생하여 더 뛰어나거나 낮은 형태의 생명체에 들어가는 일은 없다. 육체가 영혼을 가두는 감옥이라는 개념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는 성경적이지 않다. 신체는 인간 존재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육체가 물질적이라고 해서 악한 것은 아니다.

죄의 삯인 죽음의 결과로 몸과 영혼은 분리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창조 때 확립하신 몸과 영혼의 연합이 파괴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땅의 흙으로 인간의 몸을 먼저 지으신 후에, 그 몸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고 물질 세계에 존재하도록 설계하셨다(창 2:7). 하나님은 육체를 포함하여 자신이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고 “심히 좋았다”고 선언하셨는데(창 1:31), 이런 사실은 시편 139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영혼이 우리의 몸을 떠나고, 우리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우리의 영혼이 물질에서 해방되는 것이 아니라 아담의 죄와 저주(죽음)의 슬픈 결과일 뿐이다. 

모든 기독교 신학자들은 삼분법을 거부했다.

창조 기사 외에도 인간 본성의 물질적 요소와 관련된 중요한 고려 사항이 있다. 성삼위일체의 제 2위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을 통해 참된 인성을 취하셨다(갈 4:4). 이는 우리의 육체적 요소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두 번째 고려 사항은 예수님의 몸이 죽음에서 부활했다는 것이다(눅 24:40~43; 고전 15:3~8).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부활의 첫 열매로 묘사되고 있다(고전 15:35~58). 널리 알려져 있는 설과는 달리, 우리는 육체 없이 구름 위를 떠다니며 영혼의 상태로 영원을 보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영원히 부활의 영광스러운 몸으로 구속되어 온전하게 회복된 영혼과 다시 결합할 것이다. 예수님은 육체적 부활과 영광을 통해, 죄의 형벌인 죽음으로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것을 되돌리셨다.

성경은 우리가 물질적인 육체 외에 비물질적이고 영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는 사실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이 비물질적 요소는 다양하게 “혼”(그리스어로 psych) 또는 “영”(pneuma)으로 표현된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0장 28절에서 “몸과 영혼(soul)”에 대해 말씀하셨고, 마태복음 26장 41절에서는 “육신”과 “마음(spirit)”을 대조하셨다. “영혼(soul)”과 “영(spirit)”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영”은 물질이 아니며(눅 24:39) 우리 속에 있다(고전 2:11). 바울은 성화를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깨끗하게”(고후 7:1)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야고보는 영혼 없는 몸은 “죽었다”고 말한다(약 2:26). 왜냐하면 영이 몸을 떠나는 것은 죽는 것이기 때문이다(마 27:50; 행 7:59).

“영혼”이라는 용어는 성경 전반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지만, 일반적으로 몸 속에 있는 생명을 의미한다(마 16:25~26; 20:28; 눅 14:26; 요 10:11~18; 행 15:26; 20:10; 빌 2:30; 요일 3:16). 또한 “영혼”은 사람 자체를 가리키는 동의어로 사용된다(눅 12:19; 행 2:41, 43; 롬 2:9; 3:11; 약 1:21; 5:20; 벧전 1:9). 마찬가지로 “영”은 일반적인 의미로 인간의 생명을 의미할 수도 있고(마 27:50, “예수께서… 영혼(spirit)이 떠나시니라”), 인간의 육신과 대조되는 영적인 측면을 의미하기도 한다(살전 5:23, 그리스어 sarx).

삼분론자들은 육체는 인간 본성의 물질적 요소이고, 혼은 생명력이며, 영은 하나님과 관련된 인간 존재의 불멸의 요소라고 주장한다. 사실상 모든 기독교 신학자들은 삼분법을 거부했다. 삼분법은 성경적 개념이 아니라 사변적인 그리스 철학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물론, 교리를 단지 기원으로만 판단할 수는 없지만, 교리의 궁극적인 결과를 보면 그 교리의 혈통이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오랜 세월에 걸친 기독교적 관점에서 볼 때, 삼분법은 모호한 혈통을 가지고 있다. 플라톤은 육체와 영혼을 분리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영혼을 “동물적”인 요소와 “이성적”인 요소로 나누었다. 이에 뿌리를 두고 인간 본성을 세 부분으로 나눈 삼분론적 개념은 성경적이 아니라 이교도적이다. 

삼분법은 여러 방법으로 옹호되었다. 여러 기독교 문헌과 설교에서 하나님은 삼위일체(성부, 성자, 성령)이시며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간도 몸, 혼, 영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비유는 성경적 자료가 적절하게 뒷받침되지 않은  불필요한 추론이다. 

삼분법이 성경의 가르침이라고 입증하기 위해 성경 본문 두 곳이 자주 사용된다. 몇몇 초기 기독교 저술가들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 있는 바울의 말로 삼분법을 확증하였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다른 성경 자료들과 비교해 보면 바울의 의도는 분명하다. 바울 사도는 누가복음 10장 27절의 말씀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에서와 같이 인간 본성의 요소들을 나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누가복음의 말씀처럼, 강조를 위해 여러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삼분법을 입증하기 위해 가장 널리 사용되는 본문은 히브리서 4장 12절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삼분론자들은 혼과 영이 쪼개지기 때문에 동의어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 “쪼갠다(division)”라는 개념은 서로 다른 두 가지를 구별하는 의미로 사용된 적이 없고, 항상 동일한 것의 다양한 측면을 분배하고 나눌 때 사용되었다(마 27:35; 눅 11:17~18; 요 19:24; 히 2:4). 히브리서 저자의 요점은 말씀이 인간의 두 가지 별개의 요소인 혼과 영을 쪼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가장 깊은 부분까지 파고든다는 의미에서 혼과 영을 쪼갠다는 것이다.

삼분법과 성경적 이분법의 차이는 창조 기사와 본질적인 인간 본성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에 필연적인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삼분법은 하나님께서 이생에서 사람 전체(육체와 영혼)를 구속하시지 않고 구속이 필요하지 않은 거듭난 (영원한) 영을 우리 안에 두신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형상대로 만드셨다. 이 땅에서의 생활에 적합한 육체적 요소를 수반하게 하셨고,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예표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식적인 자기 인식을 지닌 영혼(또는 영)을 주셔서, 우리로하여금 하나님과 교통하기를 원하고 그분과 교통할 수 있도록 하셨다. 우리의 가장 큰 원수, 죽음은 하나님께서 합쳐 놓은 것이 분리되는 것이다. 이것은 타락한 인류에 대한 저주이지, 물질적인 것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 끝 부활의 날에 하나님은 우리를 썩지 않을 “영의 몸”(구속된 몸과 영혼)으로 일으키실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이 말한 것같이 이 몸은 영원한 하늘의 영광스러운 것으로,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날 것이다.

이 글은 원래 테이블톡 매거진에 게재되었습니다.

킴 리들바거
킴 리들바거
킴 리들바거(Kim Riddlebarger) 박사는 캘리포니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조직신학 방문 교수이자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에 위치한 크라이스트 리폼드 교회의 명예 목사이다. 저서로는 『A Case for Amillennialism』 및 Lectio Continua 시리즈 가운데 『First Corinthians』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