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의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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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순복
2023년 02월 04일복음서 중의 복음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복음서”의 여섯 번째 글입니다.
‘복음서’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빨리 답변해보자. 혹시 “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전기이다.”라고 대답했는가? 복음서를 전기로만 읽을 때 우리는 기본적으로 복음서를 숲과 동떨어진 나무처럼 보게 된다. 복음서를 읽고 듣는 더 좋은 방법이 있다. 복음서는 전기이지만 이스라엘 왕의 오심과 온 땅에 대한 그분의 나라의 시작을 선포할 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신학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읽을 때 우리는 선지자들이 했던 약속의 성취에 관한 선언으로서 복음서 안에 있는 복음을 읽을 수 있다. 선지자들의 약속 중에는, 여호와께서 아브람(창 17:6), 유다(창 49:10), 다윗(삼하 7:12~13), 솔로몬의 노래(시 72편)와 스가랴의 예언(슥 9:9)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에게 약속하셨던 것처럼 왕이 이스라엘에 임할 것이라는 약속이 있었다. 이 왕이 오실 때 그분은 모든 민족을 위한 평화의 나라를 선포하실 것이다(사 2:2~4, 9:1~7). 우리는 이 오실 왕과 그분의 왕국을 복음서 이야기에서 생생한 색채로 본다.
왕과 그의 나라의 등장은 우리 주님의 탄생 이야기에 표현되어 있다. 예수님의 족보에서 그분은 “다윗의 자손”(마 1:1)으로 묘사된다.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의 열네 대는 위대한 왕과 이스라엘 왕국을 향해 이동했고(1:2~6), 다윗부터 바벨론 유수까지의 열네 대는 그런 영광스러운 왕의 왕국에서 멀어졌다(1:7~11). 예수님의 오심과 함께 바벨론 유수에서 그리스도까지의 열네 세대는 다윗 왕권과 왕국의 회복이다(1:12~16). 이 아기의 진정한 정체성은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2:1)의 여행에서 드러난다. 그들은 “그에게 경배하기” 위하여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기 위해 왔다(2:2).
요한은 이런 왕의 오심을 알렸고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3:2)라고 가르쳤다. 반면에 우리 주님은 자신이 몸소 회당에서 그분의 나라를 선포하신 것이 특징이었다.(4:17). 사역 전체에 걸쳐서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가르치셨다(4:23, 9:35; 눅 16:16). 그런데 이 용어는 하나님 나라가 복음서의 주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주님은 제자들에게 “천국의 비밀”을 알려주시기 위해 이런 비유를 가르치셨다(마 13:11 또한 19, 24, 31, 33, 38, 41~45, 47, 52절 참조).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당혹스럽게 하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왕으로 사용했고,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물으셨다.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그들은 예수님에게 “다윗의 자손이니이다”라고 답했다(22:42). 그런 후에 예수님은 시편 110편에서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마 22:43~44a)라고 말한 부분을 지적하셨다. 예수님의 결론은 훌륭했고 바리새인들의 말문이 막히게 했다.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22:45).
심지어 그리스도의 수난 이야기도 전기의 슬픈 결말이 아니라 왕과 그분의 나라에 관한 것이다. 대제사장 가야바가 예수님을 심문했을 때 그는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26:63)고 말했다. 예수께서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라고 답변하셨다(26:64). 그러나 이 왕은 먼저 조롱받을 것이다. 즉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그는 홍포를 입고 가시관로 엮은 관을 그 머리에 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든 왕이다(27:28~29). 심지어 그의 머리 위에는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27:37)라는 명찰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요한복음이 분명히 밝히는 것처럼 우리 주님은 비하(卑下, Humiliation)를 통해 승귀(昇貴, Exaltation)를 경험하셨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한복음 12:32).
물론 우리 주님의 부활은 그분의 왕권과 왕국 복음의 가장 강력한 증거이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 28:18). 야고보가 예루살렘 공회에서 말했던 것처럼 그 이유는 부활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행 15:13~18; 암 9:11~12 참조). 예언자들이 예언한 것처럼 왕이 오셔서 그분의 나라를 세우셨다.
이런 복음서 읽기 방식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첫째, 왕이 오셨고 그분의 나라가 가까이 왔기 때문에 더 긴급한 마음으로 복음서를 읽어야 한다. 마가의 특징적인 말은 즉시 우리에게 마가복음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읽고 이해하는 힘을 보여준다(1:12, 18, 21, 23, 29, 42). 둘째, 복음서는 단순한 전기가 아니기 때문에 복음서를 마치 “오래전에, 아주 먼 곳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이야기인 것처럼 읽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 이야기에 참여해야 한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요 20:30~31). 셋째, 설교자들은 복음을 역사적인 유물이나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원칙으로 또는 고난 주간 예배에서 과시용으로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왕이 이 세상에서 세우셨던 영원한 나라의 시작에 관한 긴급한 말씀으로 설교해야 한다. 목회자들은 복음서에서 복음을 전해야 하며 그것을 새로운 법으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