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덜거림, 원망과 불평
2026년 03월 19일
성경에 나타난 구원
2026년 04월 02일히브리서에 나타난 주제들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잘 알려진 성경 이야기 설명하기”의 열한 번째 글입니다.
아마도 히브리서는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에 대한 강조(히 4:14; 8:1 참고), 언약에 관한 논의(히 8:7; 9:15; 13:20 참고), 구약의 예표 사용(히 3:5; 8:5; 10:1 참고), 믿음이처럼 그리스도의 삼중직인 선지자직, 제사장직, 왕직은 모두 히브리서에 나타나지만, 선지자직은 상대적으로 덜 두드러진다. 끝으로, 히브리서는 이 세 직분 외에도 여러 호칭으로 그리스도를 언급한다. 예를 들어, 그분은 “하나님”(히 1:8), “사도”(히 3:1), “보증”(히 7:22), “중보자”(히 9:15), “양들의 큰 목자”(히 13:20)로 불리신다.
아들이신 그리스도
그리스도를 아들로 강조하는 두 본문, 히브리서 1장 1–13절과 5장 5–8절을 살펴보자. 여기서 다루지는 않지만, 3장 1–6절, 6장 6절, 7장 3절과 28절, 10장 29절도 이와 관련된다.
히브리서의 장엄한 서두는 그리스도를 아들로 강조한다(히 1:1–4 참고). 구약 시대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아버지 하나님은,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1절)하셨다. 이 아들은 아버지 하나님과 본질이 동일하시며(“그 본체의 형상”, 3절), 우주를 창조하고 보존하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아들은 신성을 지니신 분, 곧 삼위일체의 제2위격이시다(히 1:10–12; 7:3; 13:8 참고). 또한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3절)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보여 준다. 이처럼 신성과 인성을 지니신 아들은 이제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3절) 계신 “만유의 상속자”(2절)이시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으며 상속자가 되셨다는 선언은 그분의 왕직을 나타낸다(히 1:13; 시 110:1 참고). 그분은 지극히 높은 ‘이름’을 가지셨는데, 본문의 문맥에서 그 이름은 ‘아들’을 가리킨다(히 1:4–6,8 참고).
히브리서 1장 5–14절은 구약에서 인용한 일곱 구절을 사슬처럼 엮어(카테나, catena) 제시함으로써, 앞 단락에서 그리스도에 관해 진술한 바를 뒷받침한다. ‘아들’이라는 호칭이 계속 사용된다는 점에 주목하라. 5절에서는 “너는 내 아들이라”라고 말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승천과 높아지심을 시편 2편 7절과 연결하는데, 이를 통해 그분의 왕권과 메시아 되심을 분명히 선포한다. 또한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라는 사무엘하 7장 14절의 다윗 언약을 인용함으로써, 다시 한 번 왕권을 강조한다. 8절에서는 시편 45편 6,7절을 바탕으로 “규”와 같이 왕권을 상징하는 표현을 사용하며, 그런 맥락 속에서 ‘아들’을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더욱이 10–12절에서는 시편 102편 25–27절을 인용해, 아들을 창조주요 보존자이신 구약의 하나님과 동일한 분으로 제시한다. “주는 한결같으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시 102:27; 히 13:8 비교). 마지막으로, 13절에서는 시편 110편 1절을 인용해, 그리스도의 왕적 높아지심(“우편”)을 다시금 언급하며, ‘원수들’의 멸망과 더불어 그분의 재림을 암시한다. 요컨대 히브리서 1장은 구속사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아들의 사역을 보여 준다. 그분은 신성을 지닌 창조주이시며, 성육신하여 신인(神人)이 되셨고,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으며, 이제 높아지셨고, 장차 다시 오실 것이다. 참으로 히브리서 1장은 놀라운 아들을 제시한다.
히브리서 5장 1–10절은 그리스도를 아들이자 대제사장으로 부각하는 단락이다. 특히 5절과 8절은 아들 되심을 강조하는 핵심 구절인데, 여기서는 8절만 살펴보겠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저자는 “아들이시면서도”라고 표현함으로써, 이 아들, 곧 영원하신 아들이 보통의 아들처럼 ‘순종함을 배울’ 필요가 없으심을 시사한다. 그런데도 영원하신 신적 아들이 순종함을 배우셨다는 사실은, 그분께서 인성을 취하셨음을 보여 준다(히 2:5–9 참고). 그분은 순종함을 배우셔야 했고, 실제 삶 속에서 경험적으로 고난을 당하셔야 했다(히 10:5–7 참고). 참된 인간으로서 그리스도는 개인적인 죄를 제외하고는 인간의 모든 어려움과 문제들을 몸소 겪으셨다(히 2:18; 4:15; 12:3–11; 눅 2:52; 롬 5:19; 빌 2:6–8 참고). 이런 순종과 고난은 아들을 온전한 대제사장으로 서게 하는 요건들 중 하나였다(히 5:9,10 참고). 이제 한 걸음 물러서서 이를 생각해 보면, 히브리서 5장 8절은 실로 놀라운 진술이다. 하나님의 아들, 곧 삼위일체의 제2위격이며 우주를 창조하고 붙드시는 분께서 순종함을 배우고 고난을 받으셨다. 바로 우리를 위해서 말이다.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히브리서 저자는 주로 4장 14절-5장 10절, 7장 1절-10장 18절에서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으로 제시한다. 그리스도를 아들로서 제시할 때와 마찬가지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경우에도 그분의 신성(히 7:3,16; 13:20 참고)과 인성(히 2:14,17; 4:15; 7:14; 10:5 참고)이 모두 나타난다. 그분이 제사장 지파인 레위 지파에 속하지 않으신 것은, 그리스도께서 예표적으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시는 분이라는 사실로 설명된다(창 14:17–20; 시 110:4; 히 7:1–17 참고).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적 사역으로는 십자가에서 드린 속죄 제사로 절정에 이른 지상에서의 사역과(히 5:7–10; 7:27; 9:12; 10:14 참고),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하늘에서의 사역이 있다(히 4:14–16; 7:25; 9:24 참고). 그분은 지상에서의 사역으로 우리의 구원을 성취하셨고, 하늘에서의 사역으로 그 구원을 우리에게 적용하신다.
이 글에서는 “자기를 드려”(히 7:27)라는 표현만 살펴보겠다(히 9:14; 10:12 참고; 9:25; 10:10,14; 12:2,24; 13:12,20 비교). 이 표현은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이 가진 중요한 요소들을 잘 담아낼 뿐 아니라, 수사적으로도 힘이 있다. 제사장이 제물을 드리는 것은 전혀 놀랍지 않지만, 자기 자신을 제물로 드리는 것은 충격적이다. “자기를 드려”라는 표현은 그리스도가 제사장인 동시에 희생 제물이시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밀라노의 암브로시우스(주후 339–397)는 “제사장과 희생 제물은 하나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제물’에 관해 말하자면, 그리스도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자기의 피”(히 9:12; 14절 참고)를 사용하심으로써 ‘자기를 드리셨다’(히 7:27 참고). 그렇다면 왜 피가 필요했는가?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 9:22). 왜 짐승의 피를 사용하지 않았는가?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히 10:4). 그렇다면 누구의 피가 필요한가? 그리스도의 피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히 10:10). 즉, 그분은 자기를 드리셨다.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히 7:27). 아멘, 아멘.
인내하라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히 12:1). 앞서 말했듯이, 히브리서의 목적은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끝까지 인내하도록 격려하고 권면하는 것이다. 히브리서의 개요를 일부만 살펴도 이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히브리서에는 중요한 교리적 논의들이 담겨 있을 뿐 아니라, 명시적으로 권면하는 단락들도 나타난다(히 2:1–4; 5:11–6:12; 10:19–39; 12:1–29; 13:1–17 참고). 그렇게 권면하는 본문들 중 13장 1–17절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신자가 이 세상 삶이 끝날 때까지 그리스도 안에서 인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들에 더해, 믿음의 영웅들을 다루는 11장도 명시적으로 권면하지는 않더라도, 같은 요점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히브리서 저자가 인내하도록 권면하고 격려하기 위해 제시하는 주요한 실체들은 무엇인가? 물론 그 중심에는 아들이자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가 계신다. 오직 믿음으로 받는 그분의 구원은 칭의(히 10:17,18 참고), 성화(히 10:16 참고), 영화(히 11:40 참고)를 가져온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면, 어떻게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겠는가?(히 2:3 참고)
신자들에게 ‘굳게 붙잡으라’고 권면하는 것 역시 인내라는 주제에 부합한다. 이와 유사한 표현들은 신자들이 그들의 “확신”(히 3:6,14)과 “믿는 도리”(히 4:14; 10:23), 그들 앞에 놓인 “소망”(히 6:18)을 굳게 붙잡고 인내하도록 격려한다.
또한 이미 경주를 마친 다른 신자들에게서 적절히 격려를 받고 그들을 본받는 것도 인내하도록 돕는다.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히 6:12) 본받아야 한다. 아브라함은 그 대표적인 본보기이다(히 6:13–15 참고). 11장에는 본받아야 할 믿음의 영웅들이 많이 등장한다. 최근에 별세한 사역자들 및 지도자들과 관련해, 성경은 성도들에게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히 13:7)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구약의 광야 세대는 본받지 말아야 할 부정적인 예로 제시된다(히 3:19 참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우리 모두가 아들이자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끝까지 인내하기를 바란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