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치유 기적들

2026년 03월 14일

우리가 바라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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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 명을 먹이심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잘 알려진 성경 이야기 설명하기”의 일곱 번째 글입니다.

사복음서의 저자들은 모두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을 특별하게 다룬다. 이처럼 사복음서가 공통적으로 이를 증언한다는 사실은 그 사건의 중요성을 잘 보여 준다. 사복음서를 정경으로 받아 읽는 우리는 이 이야기를 네 번이나 반복해 만나면서 유익을 얻는 특권을 누린다. 역사적 차원에서 볼 때,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이 사복음서 전부에 실려 있다는 점은, 그것이 역사적 사실임을 입증한다. 그것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예수님은 정말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만으로 남자 오천 명뿐만 아니라 여자와 아이들까지 먹이셨다. 이 사건은 ‘예수님은 누구신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문학적 차원에서 볼 때, 우리는 복음서를 수직적으로 읽을 수도 있고, 수평적으로 읽을 수도 있다. 수직적으로 읽을 때, 우리는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이 각 복음서의 서사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라고 묻는다. 그리고 수평적으로 읽을 때는 ‘각 복음서에서 제시되는 독특한 세부 내용은 서로를 어떻게 보완하는가?’라고 묻는다. 기독론적 차원에서 볼 때, 우리는 이 사건의 의미를 곰곰이 묵상하는 가운데, ‘이것이 예수님에 관해, 그리고 그분이 누구신지에 관해 무엇을 말해 주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

마태복음

마태복음은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을 예수님의 사역이라는 맥락에서 제시한다. 예수님은 일련의 비유를 가르친 후 고향인 나사렛으로 돌아가시지만, 그곳 사람들에게서 배척을 당하신다(마 13:53–58 참고). 갈릴리의 통치자 헤롯 안티파스는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는,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 생각하면서, 전에 요한을 참수했던 사건을 회상한다(마 14:1–12 참고). 이를 들은 예수님은 배를 타고 한적한 곳으로 물러가신다. 그런데 무리가 예수님께서 그 지역에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오고,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겨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신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께서 기적적으로 베푸신 음식을 먹게 된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이곳이 빈 들이며 이미 날이 저물었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주변 마을에서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내셔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다고 말하자, 예수님은 무리에게 잔디 위에 앉으라고 명하신다. 그러고는 그 보잘것없는 음식을 들고서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신다. 제자들은 그것을 무리에게 나눠 준다.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는다. 뿐만 아니라 제자들이 남은 조각을 거두자,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찬다. 그렇게 먹은 사람이 여자와 어린이 외에 남자의 수만 오천 명이나 된다.

마가복음

마가는 더 많은 정황을 덧붙인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보내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게 하신다(막 6:7–13 참고). 그리고 마태복음과 마찬가지로, 헤롯은 이런 예수님에 관해 듣고서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생각한다(14–29절 참고). 열두 제자가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자, 예수님은 그들을 쉬게 하려고 한적한 곳으로 데려가신다. 그런 후에 예수님은 많은 사람을 고치고 가르치신다. 마가는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기록할 때, 사람들을 먹이려면 대략 이백 데나리온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덧붙이는데, 이것은 한 사람의 일 년 치 품삯에 달한다. 훗날 요한도 이 점을 기록한다. 또한 마가는 물고기 두 마리가 늘어나는 장면을 거듭 강조하는데, 아마 어부였던 사도 베드로가 그에게 이 일을 증언한 주요 목격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누가복음

누가도 마찬가지로, 오천 명을 먹이기 직전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파송하신 일과, 헤롯이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요한으로 짐작한 일을 독자에게 전한다. 제자들은 사역을 마치고 돌아와 예수님께 보고한다. 예수님은 그들을 데리고 벳새다로 가신다(눅 9:10 참고). 그리고 예수님은 병든 자들을 고치시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사람들에게 가르치신다. 또한 사람들을 먹이실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을 오십 명씩 무리 지어 앉히라고 말씀하신다. 누가복음의 이런 독특한 언급들은 평소에 세부 상황에 주의를 기울이며 정확하게 기록하는 누가의 성격에 잘 어울린다.

요한복음

끝으로, 요한은 그때가 유월절이라고 덧붙인다(요 6:4 참고). 그는 이 먹이심을 예수님의 메시아적 표적 가운데 하나로 제시한다(2,14,26,30절 참고). 요한은 내내 상황을 주권적으로 주도하시는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며, 구체적인 세부 내용을 서술한다. 이는 목격자의 회상을 반영한 것인 듯하다. 요한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님은 빌립에게 이 모든 사람을 먹일 떡을 어디서 사야 할지를 물으셨고, 빌립은 이백 데나리온의 비용이 들 것이라고 대답한다. 이어서 안드레는 한 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이를 엘리야 및 엘리사와 연결 지을 수 있음에 주목하라. 왕상 17:21,22; 왕하 4:42–44 참고). 또한 요한은 그곳에 잔디가 많았던 것을 떠올린다. 무리는 예수님이 모세와 같은 종말의 선지자라고 결론짓고는 그분을 왕으로 삼으려 한다.

이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물러가셨고, 이후에 물 위를 걷는 기적을 행하신 다음, 생명의 떡에 관해 가르치신다. 사람들은 모세가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늘의 떡인 만나를 주었다고 말하면서, 예수님께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라고 도전한다. 예수님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만나를 주셨다고 말씀하심으로써 그들의 잘못을 바로잡으신다. 그리고 자신이 바로 하늘의 떡이라고 덧붙이신다(이는 요한복음에 나오는 일곱 가지 ‘나는 ~이다’라는 자기 선언 중 첫 번째이다). 이와 같이 요한은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에 담긴 기독론적 의미를 드러냄으로써, 앞선 세 복음서를 보완한다.

비교와 요약

사복음서는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을 기록하는 방식에서 완전한 조화를 이룬다. 각 복음서에는 고유한 세부 내용들이 더해지지만, 본질적으로 동일한 이야기를 전한다.

마태복음은 남자 오천 명 외에도 여자들과 어린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홀로 언급한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을 열두 제자의 사명이라는 맥락에서 다룬다. 누가복음만이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고 벳새다로 가셨다는 것과 사람들을 오십 명씩 앉히셨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기록한다. 요한복음은 그때가 유월절이었음을 덧붙이고,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을 예수님의 메시아적 표적 가운데 하나로 제시한다.

또한 요한복음은 생명의 떡에 관한 담화를 제시하고, 예수님께서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심을 밝힘으로써, 앞선 복음서들의 증언을 보강한다. 예수님은 단지 사람들에게 떡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떡이 되신다. 이와 같이 요한은 이 사건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예수님의 기적을 통해 유익을 얻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메시아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어야 하며, 그 믿음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저 하루 먹을 음식이 아니라 그보다 더 큰 것을 주고자 하신다. 곧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 주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은 우리를 이끌어, 예수님을 신뢰하게 하며, 그분이 하늘에서 보냄을 받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닫게 한다.

적용

마지막 적용을 생각하면서 다시 요한복음의 기록으로 돌아가 보자. 무리를 먹이신 후, 예수님께 반대하는 자들은 이렇게 따져 묻는다.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요 6:30,31).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영광스러운 행사를 후대에 전할 것’이라고 선포하는 시편 말씀을 인용한다(시 78:4 참고). 그러나 광야 세대는 하나님께서 공급하신다는 사실을 의심했다(시 78:20 참고). 그런데도 하나님은 “하늘 문을 여시고, 그들에게 만나를 비같이 내려 먹이시며 하늘 양식을 그들에게”(시 78:23,24) 주셨다.

우리는 광야 세대와 달리,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우리 필요를 채우시는 그분의 신실하심을 신뢰하자. 바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분이다. 그분은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을 가장 완전하게 구현하신다. 예수님은 생명을 주는 떡이시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과 친밀히 교제하면서 살아갈 때, 우리는 날마다 그 떡을 먹을 수 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광야에서 그들의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불평하며 예수님을 떠났지만, 우리는 베드로와 함께 이렇게 고백한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요 6:68,69).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안드레아스 쾨스텐버거

안드레아스 쾨스텐버거

안드레아스 쾨스텐버거(Andreas J. Köstenberger) 박사는 노스캐롤라이나주 랄리에 있는 펠로우십 롤리(Fellowship Raleigh)의 상주 신학자이며,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에 있는 밥 존스 대학교 신학대학원(Bob Jones University Seminary)의 겸임 교수이다. 또한 그는 ‘비블리컬 파운데이션즈(Biblical Foundations)’의 공동 설립자이다. 그는 『복음서 속의 예수님』(The Jesus of the Gospels)과 『히브리서에서 요한계시록까지』(Handbook on Hebrews through Revelation, 기독교문서선교회 역간, 2023)를 비롯해 60권이 넘는 책을 저술, 편집,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