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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치유 기적들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잘 알려진 성경 이야기 설명하기”의 여섯 번째 글입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신 치유의 기적은 대개 성자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자비하심이 나타난 사례로 여겨진다. 그것은 분명 사실이다. 그 기적들은 하나님의 능력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도 드러내며, 그 자체로도 놀라운 사건이다. 그것들은 단지 의학적으로 경이로운 현상이라는 의미를 넘어선다. 치유의 기적은 우리를 영적 진리로 이끄는 표적이다. 그렇지 않다면,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고침받았는지가 아니라 왜 그렇게 적은 사람만 고침받았는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 분명히 예수님은 많은 사람을 고치셨지만, 세상의 모든 사람을 고치지는 않으셨다. 만일 당신이 이 세상에 내려온 하나님이며 한 마디 명령만으로 멀리 있는 사람까지 치유할 수 있다면,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한꺼번에 고칠 만큼 충분히 그들을 아끼지 않겠는가? 예수님의 치유 기적에는 더 거대한 서사와 목적이 반드시 존재한다. 그 목적을 살펴보기 위해, 마태복음에 나타난 치유의 기적들을 고찰해 보자. 마태복음에 기록된 치유 기적은 대략 스무 건 정도 되는데, 때로는 서로 묶여 하나의 사건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우리는 그중 다섯 가지를 살펴볼 것이다.

마태복음 4장 23,24절

마태는 예수님께서 온 갈릴리를 두루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며 고치셨다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곧바로 그 기적들이 지닌 의미를 감지할 수 있다. 그것들이 단순한 기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복음 선포와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둘은 함께 간다. 하나는 말로 전하는 메시지이고, 다른 하나는 눈으로 보거나 몸으로 느끼는 메시지이다. 이와 같이 복음 선포와 치유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하나의 메시지를 전하는 사역이라는 점은, 치유의 기적들이 우리에게 전하려는 바가 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게다가 마태복음은 복음 선포와 더불어 이런 치유들이 이사야의 예언을 성취하는 한 측면이라고 기록한다. 즉, 흑암에 앉은 갈릴리 사람들이 이제 (예수 안에서) 큰 빛을 보게 된 것이다(16절 참고). 이 기적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드러낸다.

마태복음 8장 5–13절

다음으로, 백부장의 종을 고치신 사건을 살펴보자. 마태의 기록을 보면, 그 교훈이 매우 분명하게 나타난다. 즉, 그것은 권위에 관해 가르친다. 백부장은 그것을 이해한다. 예수님은 말씀 한 마디로도 병을 고칠 수 있는 권위를 가지고 계신다. 따라서 여기서는 믿음이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가 하는 그분의 본성에 근거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예수님께는 말씀만으로도 누구든지 치유하실 권위가 있다. 종교적인 사람들(“그 나라의 본 자손들”[12절])은 그것을 지나치게 복잡하게 생각할 수 있으나, 이방인 백부장은 그것을 완전히 알아차린다. “예수님, 그저 말씀만 하십시오. 그러면 그가 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적은 긍휼을 베풀 뿐만 아니라, 말씀만으로도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권위를 입증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믿어 구원에 이르게 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 나는 누가복음에 기록된 평행 본문을 함께 살펴볼 수밖에 없다. 영어 성경에서 ‘heal(고치다)’(눅 7:3)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에는 ‘구원하다’라는 뜻도 담겨 있다. 한 단어 안에 치유와 구원이라는 개념이 겹쳐 있다는 사실을 통찰하는 것은, 광대하고도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가는 창과 같다. 치유은 일시적이다(예수님께 고침받은 모든 이들, 심지어 나사로까지도 결국 죽었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궁극적이고도 영원한 치유, 곧 어떻게 구원받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 주어졌다.

마태복음 12장 9–14절

이 본문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병 고치시는 장면을 보여 준다. 이로 인해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행위가 합당한가를 두고 큰 논쟁이 일어난다. 이에 예수님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고 대답하신다. 그러자 안식일에 예수님이 병 고치신 것을 문제 삼던 바리새인들은 격분하여, 바로 그 안식일에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한다. 그들의 위선은 경악스러울 정도다. 이어지는 18-21절은 이사야 말씀을 인용하는데, 여기서 이 치유 기적의 의미가 더 자세히 드러난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을 고치심으로써, 하나님의 종인 메시아에게서 나타나는 온유함과 정의에 대한 헌신, 선을 행하는 영적 권능을 보여 주신다. 그러므로 이 치유는 그저 의학적인 기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도록 이끄는 성경적·신학적 성취이다. 그분은 종교적 율법주의자들의 반대 가운데서도 우리에게 손을 내미시며, 우리로 하여금 그분께 손을 내밀게 하시고(“손을 내밀라”[13절]), 그리하여 우리가 치유되고 구원받게 하신다.

마태복음 12장 22–32절

이제 예수님은 “귀신 들려 눈멀고 말 못 하는 사람”(22절)을 고쳐 주신다. 성경은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의학적 진단을 자세히 전하지 않고, 그저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22절)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놀라며,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23절)라고 묻는다. 참으로 올바른 반응이다. 그러나 이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예수님을 죽이기로 마음먹은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이 마귀를 힘입지 않고서는 나타날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발한다. 이렇게 치유 기적에 반발하는 태도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것이다. 미워하는 사람이 부인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놀라운 일을 행하면, 그 놀라운 일이 악한 힘에서 비롯되었다고 몰고 가는 일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놀라운 답변을 주신다. 만일 그 기적이 악한 영의 힘으로 행해진 것이라면,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는 셈이 되어 사탄의 나라가 분열되었음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자신이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28절) 이 기적을 행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올바른 결론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한편 예수님은 자신을 거부하는 이들에게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경고하신다. 특히 성령의 역사를 마귀의 일로 치부하며 거절하는 것은 훨씬 크고도 영구적인 위험을 초래한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용서받지 못할 죄이다(32절 참고). 그 죄를 제대로 탐구하려면 논문 한 편, 아니 책 한 권이 필요하겠지만, 여기서는 용서받지 못할 죄란 결국 용서를 구하지 않는 죄라는 사실에 주목해 보자. 참으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자는 용서를 받는다. 나는 목회자로 지낸 세월 동안,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을까 봐 걱정하는 비기독교인을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다. 정의대로 하면, 자신이 혹시 그런 죄를 저질렀을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미 그런 죄를 짓지 않은 자이다. 이런 목회적 설명은 잠시 제쳐 두고 말하자면, 이 치유 기적의 핵심은 예수님께서 마귀를 정복하시는 분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서구 일부 지역에서는 악을 다스리는 예수님의 권능을 지나치게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여기지만,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는 어둠의 세력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더 널리 받아들인다. 그러하기에 이 이야기는 자연스레 우리를 감사와 예배로 이끈다. 예수님은 스스로 증언하신 대로, 하나님의 성령을 힙입어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며, 마귀를 물리치실 수 있는 분이다.

마태복음 17장 14–20절

마지막 기적은 어쩌면 우리가 살피고 있는 치유 기적들 가운데 가장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어떤 면에서는 가장 단순하기도 하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아이’를 고치지 못하지만, 주님은 고치신다. 예수님은 그 아이를 고치지 못하는 자들, 심지어 제자들까지도 믿음이 없는 것에 탄식하신다. 제자들은 왜 자신들이 아이를 고치지 못했는지 예수님께 묻는다. 그러자 그분은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20절)라고 답하신다. 그러고는 다소 의아한 말씀을 덧붙이신다. 겨자씨 한 알만큼 지극히 작은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기적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예수님께서 방금까지 산 위에 계셨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변화산, 마 17:1–12 참고). 그곳에서 예수님의 영광이 드러났고, 구름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와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말을 들으라고 명령하셨다. 또한 잠시 후에 예수님께서 또 다른 산, 곧 성전산으로 가실 것이라는 사실도 기억하라. 이제 산이 바뀌려 한다.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마태복음의 핵심 주제, 마 1:23; 28:20 참고)이신 예수님의 복음이, 이제 모든 민족에게 선포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산을 옮기는 사건이다. 우리는 겨자씨 한 알만큼 아주 작은 믿음으로도 복음을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 이 기적의 요점은 예수님께서 장차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임을 드러내고, 우리가 그분과 그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아이를 고치신 직후에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신다, 마 17:22,23 참고). 또한 이것은 구원의 메시지가 변화산이나 성전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전해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요컨대, 예수님의 치유 기적은 긍휼의 기적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표징이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조쉬 무디

조쉬 무디

조쉬 무디 (Josh Moody) 박사는 일리노이주 휘튼에 있는 칼리지 교회의 담임목사이자 (God Centered Life Ministries)의 대표이다. 그는 How the Bible Can Change Your Life 를 비롯한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