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
2025년 12월 10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2025년 12월 12일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예수님의 자기 선언들”의 세 번째 글입니다.
전도서의 지혜로운 교사는 경건함이 깊어지는 장소에 대해 말하는데, 그 장소가 당신을 놀라게 할지도 모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전 7:2).
이어서 그는 다시 상기시킨다.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전 7:4).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당신도 알고 있을 것이다. 영원한 실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장례식에 참석하거나 묘지를 방문하는 일은 영혼에 유익을 줄 수 있다.
요한복음 11장은 독자를 초상집으로 데려간다. 우리가 죽음의 절망과 패배에 관해 무언가를 배우도록, 성령께서 우리를 이곳으로 이끄신다. J. C. 라일(J. C. Ryle)은 요한복음 11장이 “신약성경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장 중 하나”라고 말하면서, “이만큼 웅장하고 단순하며, 슬프고 엄숙하게 기록된 장은 없다”라고 덧붙인다.1
상황
본문은 예수님께서 친구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으시는 장면으로 시작된다(요 11:3 참고). 마리아와 마르다는 병을 다스리시는 예수님의 능력에 대해 분명히 들었고, 어쩌면 직접 보기까지 했을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서둘러 오시면 나사로를 살리실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런데 예수님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반응을 보여 주신다.
요한은 이렇게 기록한다.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요 11:5,6). (영문 성경을 보면) 6절은 ‘그러므로’라고 번역되는 작은 단어 ‘so’로 시작된다. 따라서 본문을 문자 그대로 옮기면,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마리아)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그러므로……이틀을 더 유하시고”이다. 흥미롭게도, 그분은 사랑하기 때문에 기다리신다. 자신의 제자들을 기뻐하시기에, 그분은 지체하신다. 그분은 그 고난과 질병이 다 진행될 때까지 머무르신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언제나 이 위대한 교훈을 배운다. 주님께 무언가를 해 달라고 간구했는데도 곧바로 응답하지 않거나, 때맞춰 응답하지 않으시는 적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행동하시지 않는 것은 오히려 그분의 사랑의 역사이며, 당신이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이루시려는 그분의 계획과 목적임을 깨달으라.
선언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 후, 마침내 예수님께서 그 초상집에 도착하신다. 마르다는 예수님께로 달려와 그분을 만나 이렇게 말한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요 11:21,22). 마르다 안에는 분명히 믿음의 씨앗이 있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확실히 말씀하신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요 11:23).
그러자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요 11:24)라고 대답한다. 예수님의 시대에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사이에 부활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쟁점은 역사의 종말에 정말 부활이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마르다는 부활 문제에서 신학적으로 바리새인의 편에 서 있었다. 그는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믿었으나, 역사가 끝나는 마지막 날에 일어날 일로 여겼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금을 이야기하고 계신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이는 요한복음에서 다섯 번째로 나타나는 “나는 ~이다”라는 선언으로, 실로 놀라운 말씀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단지 부활을 가르치기만 하지 않는다. 내가 바로 부활이다. 나는 단지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전하기만 하지 않는다. 내가 바로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 사실을 믿는 데 머물지 말고, 나를 믿으라.” 참된 믿음은 예수님에 관한 정보와 사실을 신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모든 진리가 거하시는 그분을 믿는 것이다.
확증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부르실 때, 나사로는 죽었다가 살아나, 구원의 걸어다니는 표징이 된다. 그는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보여 주는 살아 있는 증거이다. 나사로가 살아나자, 예수님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요 11:44)라고 명하신다.
참으로 복음을 잘 묘사하는 장면이다! 성경은 우리가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말한다. 불신앙의 누더기가 우리를 옭아매고, 죄의 옷이 우리를 덮는다. 나사로와 마찬가지로, 우리 스스로 살 수 있는 방법이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죽은 죄인이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살리신다. 구주는 죄인들을 대신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으며, 따라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고 계신다. 그분은 우리를 부르신다. “나오라. 너의 죄에서 돌이켜 나를 믿으라. 내가 너를 죄의 결박에서 풀어 자유롭게 하리라.”
그 표적을 보고 그 선언을 듣는 우리도, 예수님의 이 다섯 번째 자기 선언에 마르다처럼 응답하게 되기를 기도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 11:27).
1 J. C. 라일, 『요한복음 강해 묵상』( Expository Thoughts on John, 에든버러: 배너 오브 트루스, 2012), 2:256.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