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순절
2025년 08월 09일
워필드는 어디로?
2025년 08월 10일크리스천 클럽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사도들의 행적”의 네 번째 글입니다.
많은 미국 교회가 혼란에 빠져 있다. 신학적 측면에서 보면 많은 교회들이 무관심하고 혼란스럽고 또는 위험할 정도로 잘못되어 있다. 예배의 측면에서 보면 많은 교회들이 피상적인 유행에 사로잡혀 있다. 도덕적 측면에서 보면 세상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종종 어떤 교회는 많은 교인, 많은 돈, 많은 활동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런 교회가 진정으로 교회일까, 아니면 그저 독특한 모임으로 특수 단체로 전락한 것일까?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이 엉망진창의 상태의 핵심에는 단순한 현상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곧 교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과 확신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교회들은 여전히 성경을 전수하고 성경의 권위를 선언한다. 여전히 성경 구절에 기초하여 설교를 하며, 여전히 성경 공부 시간을 갖고 있다. 그러나 예배에서 실제로 읽혀지는 성경 본문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런 교회들의 설교와 성경 공부의 목적은 대체로 성경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무엇이 중요하다고 말씀하는지 알아보는 데 있지 않다. 점차 성경을 그저 시적 감동이나, 세상에서 유행하는 심리학이나, 스스로 돕는 조언을 얻어내기 위해 사용하는 일이 증가하고 있다. 성경을 무시하거나 악용하는 교회들에 다니는 회중들은 정말 심각한 위험 속에 있다. 말씀에서 떠나는 교회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서 떠났다는 것을 곧 발견할 것이다.
이처럼 서글픈 상황에 대하여 성경은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까? 바울은 간단하지만 심도 있는 해답을 골로새서 3:16에서 제시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말씀을 풍성히 거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진리를 알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목적과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우리는 “삶의 필요들”에 관한 관심을 줄이고, 성경에서 가르친 대로 잃어버린 죄인들의 진정한 필요에 관한 관심을 늘려나가야 한다.
바울은 여기서 우리 안에 말씀을 풍성하게 거하게 하라고 촉구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말씀을 풍성하게 경험하는 것이 어떤 형태로 드러나는지에 대해서도 말해준다. 바울은 이에 대하여 우리에게 세 가지 요점을 제시한다. (바울은 결국 설교자였다.)
첫째, 바울은 우리에게 말씀을 공부할 것을 촉구하고, 이렇게 공부할 때 우리는 “피차 가르치며 권면함으로써” 지혜를 더 풍성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은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하는 것의 한 부분으로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지고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다. 교회는 성도들이 설교든 성경 공부든 성경 읽기든 또는 대화든 막론하고 이런 시간들을 통해 말씀을 배우도록 자극하고 독려해야 한다. 우리는 말씀 안에서 자라가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으로부터 배워야 하는 것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지식 안에서 자라가야 한다.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골 1:9).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면 우리는 지혜롭게 되고, 그 지혜에 따라 죄로 크게 손상된 형상을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 새롭게 할 수 있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3:10).
우리는 또한 이 지혜를 통해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와 목적을 세속적인 것에서 하늘의 것으로 재조정할 수 있다.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1:5).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하게 거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알게 된다고 확신할 수 있다.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1:25). 우리는 성경을 통해 구원과 경건을 위하여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알게 된다.
둘째, 바울은 전혀 새로워진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며” 말씀을 표현할 것을 촉구한다. 흥미롭게도 바울은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하는 말씀과 노래하는 것을 서로 연관시킨다. 노래는 우리의 지성과 마음속에 하나님의 진리를 깊이 뿌리박히게 하는 아주 소중한 수단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알츠하이머병을 앓아온 노인 그리스도인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께 찬송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신령한 노래를 부르게 되면 진리와 우리의 감정을 연계시키는 일이 가능하다. 신령한 노래를 부르게 되면 우리의 믿음에 대한 자극과 확신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골 2:2~3)
또한 노래하는 것은 우리가 부르는 노래의 내용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때문에 중요하다. 만약 아무 생각 없이 피상적이고 반복적인 노래를 부르게 되면, 마음속에 말씀을 많이 새겨놓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말씀 자체를 충분히 그리고 풍성히 노래하게 되면 확실히 우리 자신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찬송 시집 곧 시편이 우리가 부르는 노래에 도움을 준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셋째, 바울은 말씀의 효력이 우리를 항상 “감사하는” 사람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촉구한다. 골로새서 3:15~17에서 바울은 세 번에 걸쳐 우리에게 감사를 촉구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할 때 우리는 당연히 감사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 섭리, 구속을 통해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배우고 성찰할 때 우리는 감사로 충만하게 될 것이다. 용서, 거듭남, 보존, 영광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할 때 우리는 진실로 감사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