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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사도들의 행적”의 첫 번째 글입니다.

이 사람들은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리며 3년을 보냈다. 그들은 역사상 그들 이전의 그 누구도 보지 못한 것을 목격했다. 그들의 눈은 활짝 열려 천사들이 그토록 보기를 갈망했으나 볼 수 없었던 일을 자세히 보았다. 그들의 귀는 구약 시대 성도들이 자기들의 귀로 듣기를 그토록 염원했으나 듣지 못했던 것을 들었다. 이 사람들은 바로 나사렛 예수의 제자들이었다. 그분의 학생이었다. 그분의 친구였다. 그분이 갔던 곳에 그들도 갔다. 그들은 그분이 말씀하신 것을 들었다. 그분이 행하신 것을 자기들의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지상 사역을 최초로 목격한 증인들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이 사람들은 자기들의 선생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는 모든 소식 가운데 가장 나쁜 소식을 들었다. 예수님은 이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들을 떠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 세상에서 가졌던 그들과의 친밀한 교제는 막을 내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것도 그 일이 금방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이 마음으로 받았을 충격과 깊은 공황 상태를 상상해 보라. 

요한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니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냐 하고 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이라 하신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요 16:16~22). 

이 알쏭달쏭한 말씀을 하시기 직전에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 16:5~7).

무엇보다 먼저 예수님은 제자들이 단지 스쳐지나가듯이 슬픔, 근심, 실망의 감정을 느끼는 정도가 아니라 그들의 마음 구석구석이 슬픔으로 충만할 정도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근심으로 압도당할 것이다. 그들의 슬픔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한계에 달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경험할 슬픔의 상태는 일시적이며, 그들이 한동안 느끼게 될 버림받은 심정은 곧 형언할 수 없는 기쁨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또한 자신이 제자들을 떠나셔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신다. 제자들이 성령으로 충만할 수 있도록 자신이 떠나는 것이 마땅하고 필수적이라고 말씀하신다. 완전히 손해처럼 보이는 일이 곧 유익으로 바뀔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사도행전 1:9~11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는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제자들은 예수님이 자기들을 떠나시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자기들의 눈에 예수님이 안 보일 때까지 하늘을 자세히 쳐다보고 응시했다. 그때 두 천사가 다가와 제자들에게 왜 하늘을 쳐다보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천사들은 가시적이고 육체로 승천하신 그 예수님이 나중에 똑같은 방식으로 다시 오실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누가는 누가복음에 나오는 승천 관련 기사(눅 24:50~53)에서 이렇게 말한다.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이 예언하신 것이 그대로 성취된 것을 깨닫는다. 곧 예수님이 떠나신다는 소식을 듣고 제자들을 크게 휘몰아쳤던 슬픔이 만족, 인정, 기쁨으로, 그것도 크고 충만한 기쁨으로 바뀐 것을 본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마지막으로 보았던 곳에서 기쁨으로 충만한 마음을 갖고 돌아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명확한 대답은 제자들이 승천의 의미를 깨닫게 된 것에서 확인된다. 헤아리기는 힘들었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이 어디로 가셨는지 그리고 거기서 어떤 일을 감당하도록 되어 있는지를 깨닫고, 자기들을 떠나신 것이 육체로 자기들과 함께 계실 때보다 큰 유익이 된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요한복음 3:13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선언하셨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구약 시대에 에녹이 하늘로 이끌려 올라간 것과 또 엘리야가 불 병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 것을 생각하면 일견 이 구절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예수님은 승천에 관해 말씀하실 때 단순히 [하늘로] “올라가는 것”에 관해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전문적인 의미를 담아 어떤 사실을 특별히 말씀하시는 것이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왕의 기름부음을 축하하며 성전에 올라가는 시편들(시 120~134편)에 비추어 자신의 승천을 생각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이 하늘에 올라간 자가 아무도 없다고 말씀하실 때 그것은 사실 자신이 하늘로 가신 것과 똑같은 방식이나 똑같은 목적으로 하늘로 올라가거나 하늘로 간 자가 아무도 없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왕으로—만왕의 왕과 만주의 주로— 대관식을 가지려고 자기 아버지께 가기 위하여 영광의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신 것이다. 예수님은 날마다 자기 백성을 중보하시는 우리의 크신 대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기 위하여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렇게 예수님이 아버지 우편에 앉아 온 세상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고 아버지 앞에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중보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상태가 엄청나게 달라진다. 이뿐만이 아니다. 성령이 교회에 부어짐으로써 교회가 온 세상에 대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권능을 받는 오순절 사건이 있으려면, 먼저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셔서 아버지와 함께 하늘에서 모든 권능을 가진 성령을 보내시는 것이 필수적인 일이었다.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비록 우리는 십자가 대속, 부활, 승천, 오순절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던 현장에는 없었지만,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상태가 제자들이 주 예수님과 함께한 3년 동안 누렸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상황이다. 우리는 주님이 승천을 통해 우리 왕이 되신 것을 알고 기뻐하기에 승천을 기뻐한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R.C. 스프로울
R.C. 스프로울
R.C.스프로울 박사는 리고니어 미니스트리(Ligonier Ministries)의 창립자이자 플로리다주 샌포드(Sanford)에 있는 세인트 앤드류 채플(Saint Andrew's Chapel)의 초대 설교 및 강도 목사였고, 레포메이션 바이블 칼리지(Reformation Bible College)의 초대 총장이었다. 그는 을 포함하여 백권이 넘는 책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