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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댜의 예언은 구약에서 가장 짧은 책이기도 하고 많은 성경 독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소선지서들 중 하나여서 쉽게 간과될 수 있다. 오바댜서는 읽는데 1~2분밖에 걸리지 않기 때문에 그 기본적인 내용은 금방 파악할 수 있다.
오바댜는 에돔에 대한 주님의 심판을 선포한다 (옵 1-4, 8-10). 작은 나라지만 안락함과 안전함을 누리고 있어서 자부심이 있었다(옵 3, 12). 에돔의 자부심을 유지하는데 대한 자신감의 이유는 두 가지였다. 우선 에돔은 산악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어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방어하기 쉬운 곳이었다. (옵 3-4). 게다가 에돔은 (종종 그 주요 도시 데만으로 불리움) 많은 인간적인 지혜를 소유했기 때문이다 (옵 8-9; 또한 렘 49:7 참조). 다시 말해, 에돔은 거주자들이 안전하게 사는데 필요한 모든 전략적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주님은 에돔위에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선포하신다. 이는 바벨론이 유다를 공격할 때 그들을 돕지 않았던 것 뿐만 아니라, 도망치는 유다 사람들을 붙잡아 침략자들에게 넘겨주며 적극적으로 도왔기 때문이다 (옵 11-14; 시 137:8-9; 겔 25:12; 35:5). 이 심판의 메시지와 동시에, 주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주님의 왕권을 통해 구원 받고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옵 17–21).
오바댜서에 대한 다음 세 가지는 선지서를 더 풍성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1. 이삭의 아들 야곱과 에서에 관한 하나님의 작정이 있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창 25:23). 오바댜의 예언은 주님의 주권적 작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여준다.
에돔과 유다는 에서와 야곱의 후손으로 이루어진 나라이다 (창 36:1–43; 49:1–28). 두 형제가 좋지 않은 관계를 가졌던 것처럼 (창 27:41-45) 그들에게서 나온 두 나라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에서의 에돔과 야곱의 유다). 야곱은 거짓과 속임이 있는 자였지만, 원래 형에게 속했던 장자권과 복을 받게 되었다 (창 25:29–33; 27:1–40). 마찬가지로, 유다가 에돔을 지배할 권한이 (민 24:18-19) 그들의 갈등의 역사 속에서 발견된다. (예를 들어 삼상 14:47; 삼하 8:11-14; 왕상 22:47; 대상 18:11). 주님이 야곱과 이스라엘을 어떻게 다루시는지를 통해 하나님이 자격 없는 자에게 베푸시는 호의가 그려진다 (말 1:1–4; 롬 9:10–16).
2. 오바댜의 환상(옵 1장)은 망원경을 통해 보듯이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처럼 그린다.
오바댜는 에돔에 대한 심판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날”에 대해서도 말한다 (옵 15). 그날에 모든 나라가 심판을 받을 것이며 (옵 16) 하나님의 사람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옵 17). 처음 보기에는 모든 사건이 동시에 일어날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성경의 선지자들은 보통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행위를 합쳐서 동시에 이야기한다. 마치 긴 망원경을 가장 작은 크기로 줄이는 것과 비슷하다. 이러한 문학적 기법은 종종 “예언적 단축” 또는 “망원경적 기법”이라고 불린다. 이것을 의식하면서 읽으면 혼란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언의 계시들에서 자주 나타나는 이러한 특징을 알게되면, 오바댜의 예언이 여러 시기에 성취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예를 들어, 에돔의 멸망은 이미 일어났다. 그렇지만 신자는 여전히 “주의 날”에 모든 나라가 심판을 받게 되고 교회의 구원이 완성될 것을 기다린다.
3. 오바댜의 예언은 신약에서 직접 인용되지 않지만, 그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놀랍게 성취됨을 성경이 가르친다.
에스더, 스바냐와 같은 몇몇 구약 성경처럼 오바댜는 신약 성경에서 인용되지 않는다. 성경은 오바댜의 예언이 놀라운 방식으로 성취되었음을 보여준다. 시간이 흘러 에돔 사람들은 외세에 의해 정복되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그들은 다시 유대인의 지배 아래에 놓이게 되고 기원전 2세기 후반에 하스몬 왕조의 통치자이자 유대 대제사장인 요한 히르카누스의 명령으로 의식적 할례를 받게 된다 (유대 고대사 13:256). 결과적으로 “이두매인”로 알려지게 된 에돔은 유대인들과 동화되기 시작했다.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땅과 민족 정체성을 잃은 것은 결과적으로 변장된 축복이 되었다. 이두매 사람들 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 모여든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막 3:8–9). 이는 골로새서 3장 11절의 진리를 증명해 준다.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자나 무할례자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오바댜가 선언한 것처럼, 구원은 시온 산에서 발견된다 (옵 17). 즉, 더 나은 언약의 중보자는 예수님을 따르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사람들 안에 계신다 (히 12:22-24).
오바댜서를 통해서 옛 속담이 사실임이 증명된다: 좋은 일들은 작은 바구니에 담겨서 온다. (Good things come in small packages.)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