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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의 감정고조를 불러일으키는 사건들이 에스겔서 전편에 흩어져 있다: 하나님의 사람들 중에 일부는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고 일부는 예루살렘의 포위된 상태도 남겨졌다. 제사장 가문 출신의 예언자는 왼쪽으로 390일 동안 누워 있으며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으며, 난해한 상징주의와 생생하고 불안한 예언이 결합된 환상을 본다(겔 4:4–8; 24:15–24). 아마도 에스겔에서 가장 큰 긴장은 하나님의 성품의 계시에 있다: 초월적이지만 내재적이며, 거룩하고 죄에 의해 모욕을 받으시지만 용서하시며, 심판에서는 무섭지만 자비에서는 놀라우신 분이다. 이러한 긴장감이 독자를 괴롭히거나 혼란스럽게 할 가능성이 있지만, 에스겔서는 주님의 이름과 영광을 독특하고 교훈적인 방식으로 드러낸다.
이 세 가지는 당신이 긴장을 풀고 에스겔의 예언을 즐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1. 에스겔의 기이한 환상과 예언은 영광스럽지만 이해할 수 있는 하나님을 계시한다.
에스겔서를 읽기 시작하지 얼마 안 되서 당혹감을 느낀다. 그의 첫 번째 환상과 부르심은 괴물 같은 특징을 가진 네 생물(후에 그룹으로 식별됨)과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신현을 포함하며, 이는 인간의 감각을 뒤흔든다. 그리고 그의 사명과 함께 오는 일련의 활동들, 즉 두루마리를 먹고 벙어리가 되는 것을 포함한다(겔 1:1–3:27; 10:20). 그리고 이것은 책의 시작일 뿐이다. 상징적인 행위, 이미지, 선언, 그리고 영광스러운 주님과 그의 천사 무리의 방문은 전체에 걸쳐 반복된다 (겔 10:1–22; 40:1–4 참조).
하지만 이걸 알면 놀라운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초월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마주하면 경이로움과 겸손의 반응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그것을 맞이하자 에스겔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다 (겔 1:28). 그의 성령 충만한 사역을 기록한 이유 중 하나는 우리에게도 같은 경외로 가득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기 위함이다. 에스겔과 바벨론 포로들, 그리고 우리와 같은 인간은 자기 방식으로 하나님을 알 수 없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셔야 한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 것은, 에스겔은 우리의 주권자 하나님이 내재하시며 온 세상에 자신을 알리신다고 밝힌다.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는 구절이 이스라엘과 여러 나라에 대한 예언들에 반복적으로 나타난다(겔 7:4, 9; 11:10; 13:9 등).
슬프게도 인간의 죄와 배교는 거룩한 하나님께서 먼저 심판으로 자신을 드러내시도록 요구한다, 이는 우리의 다음 요점과 관계있다.
2. 에스겔의 제사장 계보는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한 강조로 나타난다.
에스겔은 책의 서두에서 자신을 제사장으로 밝히지만, 아마도 예루살렘에서 이 직무를 수행할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겔 1:3). 대신 주님께서 그를 부르사 자신의 선지자로 삼으시고, 먼저 반역하는 자신의 백성에게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시고, 그 다음에는 악한 나라들에게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신다 (겔 1:1–24:27; 25:1–32:32). 이 직책의 변화에도 에스겔은 하나님의 심판에서의 거룩함에 대한 제사장적 지식을 많이 활용한다.
에스겔은 성령으로 충만한 그의 고발적 직무에서 하나님의 언약적 규례에 대한 옛 언약 교회의 범죄와 우상 숭배로 인한 그들의 더러움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겔 5:6; 16:59). 이러한 행동들은 주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위험을 초래하여, 하나님께서 그 영광스러운 임재(하늘의 이동식 보좌로 상징됨)를 예루살렘에서 제거하고 그 날을 멸망의 날로 정하심으로써 그 거룩함을 지키도록 하셨다(겔 20:9, 14).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반역의 극악함을 다양한 문학적 표현을 통해 보여준다, 아마도 두 불신실한 자매의 비유만큼 불안하게 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겔 23:1–49). 예루살렘의 몰락을 두고 민족들이 기뻐하며 자신들이 무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에스겔은 세계 모든 민족을 상징하는 주변 일곱 왕국을 대상으로 유사한 심판의 예언을 한다. 그들도 거룩하신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악행과 반역에 대해 대답할 것이며, 세상은 그들의 심판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희망을 버리지 않도록 에스겔은 회복을 기대하며 또 다른 제사장의 개념인 성전을 언급한다.
3.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에스겔의 회복 예언을 성취한다.
심판 중에도 이스라엘의 영광스럽고 거룩한 하나님께서 회복을 예언하셨다. 그는 에스겔이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것을 목격한 것처럼 그의 언약 백성을 확실히 부활시킬 것이다 (겔 37:1–14).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단순히 심판 이전의 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정결하게 하시고 새 마음을 주시며, 그들의 조상들의 왕국에 다시 세우시고, 그들 위에 의로운 다윗의 왕자를 세우시며, 영원히 그들 가운데 거하시리라 (겔 36:22–37:28). 에스겔은 새로운 성전의 환상을 통해 언약의 평화가 변화된 상태를 가장 먼저 상상한다. 이는 “여호와 삼마”라는 도시의 이름으로 명확히 드러나는 주님의 영원한 임재를 상징한다(겔 40-48 참조).
에스겔의 예언의 성취는 제2성전의 재건을 초월하여 예수님 안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사도 요한의 영감받은 작품들이 그것을 증언한다. 하나님의 영광의 충만함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 안에서 나타나며, 그분은 그의 백성 가운데 거하시고 하나님을 알리신다 (요 1:14–18). 예수님께서 성전과 자신을 동일시하시며, 성전 파괴의 고통을 자신의 십자가 처형과 비교하고, 성전의 회복의 영광을 자신의 부활과 비교하신다 (요 2:18–22). 게다가 에스겔이 성전에서 흘러나와 온 세상에 생명을 주는 강을 상상하듯이,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생수의 근원이라고 선언하신다 (요 4:1–43; 7:37–39). 요한은 자신의 마지막 환상에서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흐르는 같은 강을 목격하며, 이 강이 여러 나라에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에게 정화와 치유를 가져다주었음을 본다 (계 22).
에스겔의 커다란 긴장이 상상할 수 있는 최대의 잠재력으로 피어났다: 하나님과 어린 양의 영원한 임재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