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세기, 구원론의 개혁
2026년 04월 09일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여섯 부류의 사람들
정보가 넘쳐 나는 세상에는 우리의 관심을 끌려는 목소리가 수없이 많다. 그러나 이토록 소란한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시편 기자는 그 말씀이 ‘꿀보다 더 달다’(시 119:103 참고)고 고백한다. 이와 관련해, 야고보서 1장 22–25절은 중대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그저 듣기만 하는가, 아니면 그것을 삶에 적용하는가?
야고보는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 1:22)라고 가르친다. 그는 듣는 일의 필요성을 깎아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독자에게 “듣기는 속히 하고”(약 1:19)라고 권면한다. 다만 야고보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저 듣기만 해도 참된 경건에 이르리라 생각하는 자들의 위험한 자기기만을 폭로한다. 그는 참된 믿음이란 행동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라고 주장한다. 즉, 우리가 듣는 바로 그 진리가 삶의 모습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약 2:14–17 참고).
야고보는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를 ‘거울로 자기 얼굴을 보고도 돌아서서는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 곧 잊어버리는 사람’에 비유한다(약 1:23,24 참고). 이 비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삶에 적용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비극적이고도 어리석은 일인지를 강력하게 보여 준다. 여기서 거울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 그분의 말씀은 우리의 죄를 드러내고, 우리의 영적 실상을 밝혀 준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용서하고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수 있는 오직 한 분, 그리스도께로 우리를 인도한다. 말씀을 듣고도 회개와 믿음으로 이끄는 그 부르심을 무시하는 것은, 그 말씀이 베푸는 은혜를 저버리고 죄 가운데 그대로 머무는 것이다.
야고보의 경고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어떤 태도로 말씀을 듣는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여섯 부류로 살펴보자.
1. 눈먼 사람
눈먼 사람은 거울을 들여다보지만, 영적으로 눈이 멀어서 자신의 모습을 분명히 보지 못한다. 즉, 성경을 읽거나 공부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죄로 규정하시는 바를 죄로 깨닫지 못한다. 그는 도리어 악을 선하다 하고, 선을 악하다 말한다(사 5:20 참고). 그의 삶은 습관적인 죄로 점철되어 있지만, 그는 자기 삶을 지배하는 죄악된 양상을 개의치 않는다. 그에게는 성령의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가 필요하다. 곧 성령께서 그의 눈을 열어 진리를 보게 하셔야 한다.
2. 두려워하는 사람
이 사람은 자신에게 흠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을 직면하기를 두려워한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나쁜 진단을 받을까 봐 무서워 의사를 피하는 사람처럼, 말씀의 책망을 거부한다. 그는 회개에 따르는 대가를 마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회피하면 참된 자유를 얻을 수 없다. 자기 죄를 빛 가운데 드러내고 회개와 믿음으로 그리스도께로 나아갈 때 비로소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3. 자기 의에 빠진 사람
자기 의에 빠진 사람은 자신의 흠을 알면서도 변명한다. 그는 자신이 도덕적으로 살아왔다고 확신하며, 자기 잘못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다. 책망을 받으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변해야 한다”라고 말하면서 책임을 회피한다. 그는 자신이 의롭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자신에게 자비가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한지를 깨닫지 못한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바리새인을 닮았다. 그는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눅 18:11,12). 겉으로는 경건해 보이지만,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회개할 줄 모른다. 예수님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32)라고 말씀하면서 우리를 일깨워 주신다.
4. 비관적인 사람
비관적인 사람은 거울을 들여다보고 자기 흠을 인정하지만, 그것들을 씻어 낼 수 없다고 믿는다. 그는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면서 돌이키는 대신, 자신의 비참함에 파묻혀 절망하며, “나는 죄가 너무나 많아서 용서받을 수 없다”라고 말한다. 비관적인 사람에게는 복음의 소망이 필요하다. 로버트 머리 맥체인(Robert Murray M’Cheyne)은 지혜롭게 말한다. “자신을 한 번 바라볼 때마다 그리스도를 열 번 바라보라.” 그리스도 안에서는 가장 악한 죄인이라도 회개하고 믿으면 온전히 용서받을 수 있다.
5. 일부만 듣는 사람
이 사람은 사무엘상 15장의 사울 왕처럼 선택적으로 순종한다. 사울은 아말렉 사람들을 완전히 멸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가장 좋은 가축들과 아각 왕을 살려 둔다. 그러고는 제사하려 했다는 명목을 내세워 자신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선지자 사무엘은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삼상 15:22)라고 대답한다. 일부만 듣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부분적으로만 따를 뿐, 전부 따르지는 않는다. 이처럼 일부만 순종하는 것도 결국 불순종이다. 말씀을 참으로 듣는 사람은 자신에게 편한 부분만을 따르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 전체에 온전히 복종한다.
6. 지혜로운 사람
지혜로운 사람이 바로 말씀을 진정으로 듣는 자이다. 이 사람은 성경이라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흠을 보고 회개함으로 하나님께로 돌이키며, 그리스도를 통해 깨끗하게 되기를 구한다.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세리처럼, 그는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18:13)라고 기도한다. 야고보는 그런 이를 가리켜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약 1:25)라고 말한다. 그의 삶에는, 시편 1편의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열매를 맺고 오래도록 견디는 모습이 나타난다.
자신을 살피라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태도로 말씀을 듣는 사람인가? 기억하라. 하나님의 복은 듣고 순종하는 자에게 임한다. 순종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진정으로 변화된 마음에서 그 순종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은 단순히 주의 깊게 듣거나 성경의 진리를 지적으로 인정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겸손히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 앞에서 우리를 살피며, 믿음으로 그 말씀에 복종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비추는 빛 가운데서 주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다. 오래된 찬송가는 이렇게 말한다.
믿고 순종하라, 다른 길 없나니.
예수 안에서 복된 길은 믿고 순종하는 것뿐이로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