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학은 송영 찬송을 부르게 한다
2023년 10월 26일
종교 개혁은 왜 여전히 중요한가?
2023년 10월 28일종교 개혁은 왜 필요했을까?

교회는 언제나 개혁이 필요하다. 신약 성경에서도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꾸짖으시는 것과 바울이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교정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죄인들이기에, 교회도 항상 개혁이 필요하다. 문제는 언제 절대적으로 필요하나 이다.
16세기의 위대한 종교 개혁자들은 당대에 개혁이 절박하고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교회를 위한 개혁을 추구하면서, 그들은 두 가지의 극단을 거부했다. 한 쪽으로는, 교회가 본질적으로 건전하며 근본적인 변화는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거부했고 다른 한 쪽으로는 모든 면에서 완벽한 교회를 세울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거부했다. 교회는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했지만, 또한 항상 스스로를 개혁할 필요가 있었다. 종교 개혁자들은 자신들의 성경 연구를 통해 이러한 결론에 도달했다.
1543년, 스트라스부르의 종교 개혁자 마르틴 부쩌는 존 칼빈에게 1544년 슈파이어에서 열릴 제국의회에서 찰스 5세에게 종교 개혁을 위한 항변서를 써달라고 요청했다. 부쩌는 로마 카톨릭 황제가 교회 안의 개혁을 위한 노력에 해를 끼치는 모사들에 둘러 쌓여 있다는 것을 알았으며, 칼빈이야말로 개신교의 대의를 변호할 가장 유능한 목사라고 믿었다.
칼빈은 그 도전에 맞서 일어나 그의 최고의 작품들 중에 하나인 “교회 개혁의 필요성”이라는 작품을 저술했다. 이 중요한 논문은 황제를 설득하지는 못했지만, 종교 개혁의 대의에 관해 지금까지 쓰여진 진술 중 최고의 진술로 여겨진다.
칼빈은 그의 글에서 교회가 “수없이 많은 비통한 질병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모든 이들이 동의한다고 말하면서 시작한다. 그는 문제들이 너무 심각하여 그리스도인들은 개혁을 위한 “더 이상 지연”하거나 “느린 구제책들”을 기다릴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종교 개혁자들이 “경솔하고 불경건한 혁신”을 주도한 죄를 지었다는 주장을 반박한다. 오히려, 그는 “우리 신앙의 진리”를 보존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루터와 다른 이들을” 일으키셨다고 주장한다. 칼빈은 기독교의 토대들이 위협 받고 있다는 것과 성경적 진리만이 유일하게 교회를 새롭게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칼빈은 개혁이 필요한 교회 생활에서 네 가지 큰 영역들에 주목한다. 그는 이 영역들을 교회의 영혼과 몸이라고 구분하여 불렀다. 교회의 영혼은 “하나님을 향한 순결하고 정당한 예배”와 “사람들의 구원”으로 구성되었고 교회의 몸은 “성례의 사용”과 “교회의 정치”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칼빈에게 있어서 종교 개혁 논쟁의 핵심에 있는 것들이었다. 그것들은 교회 생활에 있어서 본질적이며, 성경적인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에만 바르게 이해될 수 있다.
예배는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인 권위로 인정하고 그것에 복종하는지 여부를 보여준다.
우리는 칼빈이 하나님에 대한 예배를 종교 개혁 쟁점들 중 첫 번째로 놓았다는 것에 놀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가 일관되게 주장해 온 주제였다. 일찍이 그는 사돌레토 추기경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하나님에 대한 터무니없고 비뚤어진 예배는 우리의 구원에 아주 치명적이다.”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이며, 그 만남은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수행되어야만 한다. 예배는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인 권위로 인정하고 그것에 복종하는지 여부를 보여준다. 인간이 스스로 고안해 낸 예배는 행위의(self-righteousness)의 한 형태이며 우상 숭배에 대한 표현이다.
다음으로, 칼빈은 우리가 종교 개혁의 가장 큰 쟁점라고 생각하는 것 즉, 칭의 교리에 주목한다.
“어떤 사람의 행위가 어떤식으로 묘사되든지 간에, 그는 단지 값없이 베푸시는 자비에 기초하여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존재로 간주된다고 우리는 주장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행위와 관계 없이, 그리스도의 의를 마치 그의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에게 전가하심으로써, 그리스도 안에서 그를 아무 댓가 없이 입양하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음의 의라고 부릅니다. 즉 어떤 사람이 자신의 행위에 대한 모든 확신이 사라지고 공허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자신은 결핍되어 있으며 그리스도로부터 전가된 의로움 뿐이라는 확신을 얻는다. 세상이 항상 길을 잃는 지점(이 오류는 거의 모든 세대에 걸쳐 만연해 있었기 때문에)은 아무리 부분적인 결함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여전히 자신의 행위로 어느 정도 하나님의 호의를 얻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상상한다는 것이다.”
교회의 영혼을 형성하는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들은 교회의 몸 즉, 성례와 교회 정치에 의해 지지를 받는다. 성례는 그 순전하고 단순한 의미와 성경에 주어진 용도로 회복되어야 한다. 교회 정치는 하나님의 말씀에 반하여 그리스도인들의 양심을 속박하는 모든 압제를 거부해야 한다.
우리 시대의 교회를 바라볼 때, 칼빈이 그토록 우려했던 많은 영역들에서 개혁이 요구되며, 그것이 참으로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당연하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만이 교회를 개혁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개혁이 우리 시대에 올 수 있도록 신실하게 기도하고 노력해야 한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