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하나님의 영광 -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그리스도 안에서
2022년 02월 11일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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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하나님의 영광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그리스도와의 연합” 의 두 번째 글입니다.

전에 자궁암으로 죽어가는 한 여성을 병문안 한 적이 있다. 그녀는 매우 괴로워했다. 하지만 그녀가 괴로워했던 것은 단지 육체적인 병 때문은 아니었다. 그녀는 젊었을 때 낙태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자신의 병이 낙태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확신했다. 요컨대 그녀는 암이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믿었다.

죽음의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의 그런 괴로운 질문에 대한 일반적인 목양적 답변은 고통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솔직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모른다고 말했다. 어쩌면 하나님의 심판이었을지 모른다. 아마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경륜을 헤아리거나 하나님 섭리의 보이지 않는 손을 해석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녀가 고통 받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그녀의 죄책감에 대한 해결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자비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녀는 믿음을 가지고 죽었다.

고통을 겪는 사람들은 그녀가 했던 질문을 매일 한다. 이 질문은 신약 성경에서 가장 어려운 구절 중 하나로 여겨진다. 요한복음 9장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는다.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1-3절).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째서 이 사람이 실명한 근본 원인이 그의 죄 아니면 그의 부모의 죄라고 생각했을까? 그들의 이런 추측에는 확실히 어떤 근거가 있었다. 성경은 타락 이야기 이후에 계속해서 죄로 인해 고통, 질병, 죽음이 이 세계에 존재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죄가 어떻게든 이 사람의 고통에 연루되어 있다는 점에서 제자들은 옳았다. 또한 성경에는 특정한 죄가 고통을 가져오는 사례들이 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은 모세의 누이 미리암을 나병으로 치셨다. 왜냐하면 그녀는 하나님의 대변인으로서 모세가 가졌던 역할에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이다(민12:1-10).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다윗이 지었던 죄의 결과로 밧세바에게 태어난 아이의 목숨을 빼앗았다(삼하 12:14-18). 아이는 아이가 한 일 때문이 아니라 다윗에 내리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심판의 결과로써 벌을 받았다.

하지만 제자들은 죄와 고통의 일반적인 관계를 특정 사건에 직접적으로 적용하는 실수를 범했다. 그들은 맹인의 죄와 고통 사이에 직접적인 일치가 있다고 가정했다. 그들은 욥기를 안 읽어 봤나? 욥기에는 죄가 없었지만 하나님에게 심한 고통을 받은 사람 욥이 등장한다. 제자들은 또 다른 대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택을 두 개로 줄이는 실수를 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양자택일 방식으로 질문을 제기했다. 또한 그들은 그 사람의 죄나 부모의 죄 때문에 그가 맹인이 되었다고 가정하는 거짓 딜레마의 논리적 오류를 범했다.

제자들은 또한 고통을 겪는 사람은 누구든지 저질러진 죄에 직접적으로 비례하여 고통을 받는다고 가정했던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욥기는 그런 결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욥이 견디도록 요구 받는 고통의 정도는 그보다 더 많은 죄가 있는 다른 사람들의 고통과 비교할 때 매우 컸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특정한 고통의 발생이 어떤 사람의 특정한 죄에 대한 직접적인 결과이거나 직접적인 일치라고 성급하게 결론 내려서는 안 된다. 맹인으로 태어난 이 사람의 이야기는 이 점을 지적한다.

우리 주님은 이 사람이 맹인 된 것은 부모가 지었던 죄의 직접적인 결과라는 잘못된 가정을 바로잡음으로써 제자들의 질문에 답변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그 사람이나 그 사람의 부모를 벌주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은 장님으로 태어났음을 그들에게 확인시켜주었다.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이 경우 또 다른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인내하라고 요구하시는 고통에는 항상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제자들에게 답변하셨다(3절). 예수님이 의미하셨던 것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서 예수님은 자신의 권능과 신성에 대한 증거로서 정해진 때에 자신이 이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 이 사람은 장님으로 태어났다고 말씀하신 것이었다. 우리 주님은 맹인을 치유하심으로써 구세주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 주셨다.

우리가 고통을 겪을 때, 하나님은 자신이 하시는 것을 알고 계신다는 것을 신뢰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과 자기 백성의 성화를 위해 아픔과 고통을 통해 일하신다는 것을 신뢰해야 한다. 오랜 고통을 견디기는 어렵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기 아들의 영광을 위해 맹인으로 태어난 이 사람을 수년 동안 고통 가운데 부르셨다. 그리고 주님이 맹인으로 태어난 이 사람 안에 하나님이 계획하신 비밀을 설명하시는 것을 우리가 들을 때 이런 어려움은 크게 완화된다. 

이 글은 원래 테이블톡 매거진에 게재되었습니다.

R.C. 스프로울
R.C. 스프로울
R.C.스프로울 박사는 리고니어 미니스트리(Ligonier Ministries)의 창립자이자 플로리다주 샌포드(Sanford)에 있는 세인트 앤드류 채플(Saint Andrew's Chapel)의 초대 설교 및 강도 목사였고, 레포메이션 바이블 칼리지(Reformation Bible College)의 초대 총장이었다. 그는 을 포함하여 백권이 넘는 책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