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그림자 

2026년 06월 06일

참된 기독교 

2026년 06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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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에서의 의견 차이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기독교 성윤리”의 열 번째 글입니다.

오늘날 공적 담론과 논쟁은 기본적으로 타협할 여지를 전혀 두지 않은 채 시끄럽고도 날 선 대립을 보이는 양상을 띠는 듯하다. 우리는 정치인들이 얼마나 자주 ‘반대편’과 싸우는가에 따라 그들을 평가한다. 온라인 공간에서의 소통은 점점 더 날카롭게 변해 간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신학적·성경적 논쟁에서도 그런 양상이 자주 드러난다. 그러나 성경은, 교회 내 신자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의견 차이는 세속 정치 논쟁에서 볼 법한 적개심과 반목을 답습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이 우리의 지적인 일관성이나 설득력이 아니라 서로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가 자신의 제자인 줄을 알게 된다고 말씀하셨다(요 13:35 참고). 우리의 의견이 갈리는 사안이 무엇이냐도 중요하지만, 서로 다른 의견을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야고보는 혀에 관해 가르치면서 이 점을 강조한다.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약 3:9,10). 그러나 동시에 신자들은 수많은 성경적 문제를 두고 의견이 갈려 왔고, 신학적 주제들을 올바르게 해석하기 위해 애썼다. 그렇다면 신자들은 성경의 진리를 명확히 드러내는 일과,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라는 부르심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몇 가지를 생각해 보자.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구별해야 한다

서로 의견이 다를 때는 본질적인 문제와 비본질적인 문제(이차적이거나 심지어 삼차적인 문제)를 구별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신가’, ‘예수 그리스도는 참으로 하나님이신가’, ‘예수님은 육체적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는가’에 관한 견해 차이는, 교회의 올바른 정치 형태나 세례의 합당한 대상에 관한 논의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하나님에 관한 교리와 그리스도의 인격 및 사역에 관한 가르침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삼위일체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다. 이런 문제에서 그릇된 편에 서는 사람은 더 이상 신자로 여겨질 수 없으며, 교회도 그런 입장을 용납하면 자신의 증언을 온전히 유지할 수 없다. 본질적인 문제에서는 서로 다른 입장에 예의를 갖출 여지가 없다. 그러나 수 세기 동안 교회 안에서 의견 차이를 보여 왔던 이차적이거나 삼차적인 문제들을 논의할 때는, 그리스도인의 사랑으로 토론하는 가운데 서로 다른 의견을 주장할 수 있다. 특히 교회 안에서 교육 철학이나 전도 활동처럼 성경에 기반하면서도 교회의 신앙고백에는 속하지 않는 사안을 두고 의견이 갈릴 때는 더욱 그러하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신자들은 성경으로 돌아가 그 가르침에 가장 부합하는 성경적 결론에 이르기 위해 힘쓰되, 반드시 사랑과 이해의 정신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런 것들은 교회를 세우거나 무너뜨리는 문제가 아니다.

의견 차이를 인정하더라도 진리를 포기할 수는 없다

물론 본질적인 문제와 비본질적인 문제가 시급성과 중요성에서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자들이 진리를 포기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다시 말해, 삼차적인 문제마저도, 우리는 언제나 최대한 성경적인 견해와 결론에 이르기 위해 힘써야 한다. 기독교 신앙에서 핵심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며, 의견이 갈릴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사실 의견 차이는 우리가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딤전 2:4) 위해 힘쓰는 일에 종종 유익한 도구가 된다. 다른 신자들을 존중하며 그들의 논증과 입장을 주의 깊게 들을 때, 우리는 자신의 견해를 검증하고 그 사안을 더욱 명확하게 이해할 기회를 얻게 된다. 이차적·삼차적인 문제들에서, 우리는 불쾌하게 굴지 않고도 얼마든지 다른 의견을 낼 수 있으며, 진리와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할 수 있다. 죄는 우리의 생각과 이해에도 영향을 미치므로, 우리는 기꺼이 그것을 바로잡는 일을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이 점은 의견이 다른 상대방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신자들은 너무나 자주 그저 두 가지 방침밖에 모르는 듯 행동한다. 의견이 갈리는 모든 사안을 신앙의 본질적인 문제인 양 취급하고, 서로 다른 의견이 진리를 더 잘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을 아예 배제하는 것이다. 이차적·삼차적인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관점을 마주할 때 우리가 존중과 사랑으로 대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얼마든지 유익하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연합을 위해 교리나 진리를 희생할 필요가 없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신앙을 이해하는 일에 성숙해지라고 권면하면서 바로 이 점을 말한다. “이는 우리가……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 4:14,15). 우리는 이 말씀대로 살아가야 한다.

의견 차이는 복음을 증언할 기회가 된다

마지막으로, 신자들은 교회 안에서 의견이 갈리는 것을 인내로 감당해야 한다. 그것이 참된 연합과 사랑이 어떤 모습인지를 세상에 증언할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가 되려면, 반드시 모두가 같은 견해를 지지하고 정확히 같은 우선순위를 가지며, 모든 문제에서 발을 맞추어 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차이나 이견도 용납되지 않으며, 다른 의견을 내면 집단에서 배제되고 만다. 반면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 위에 세워진다. 물론 그리스도인 됨이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본질적인 문제들이 있으며, 교회는 그런 근본 원리들을 두고 토론할 의무가 없다. 그러나 신자들이 진실하게 성경으로 나아가는데도, 성경이 핵심 교리만큼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서로 견해가 갈릴 수 있다. 바로 그때 우리는 의견이 달라도 서로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과, 성경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든 그 권위에 복종한다는 사실을 세상에 보여 줄 기회를 얻게 된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프레드 그레코

프레드 그레코

프레드 그레코(Fred Greco) 목사는 텍사스주 케이티에 있는 그리스도 교회(Christ Church)의 담임목사이자 휴스턴에 있는 리폼드 신학교(Reformed Theological Seminary)의 목회신학 객원 강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