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정복
2026년 03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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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골리앗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잘 알려진 성경 이야기 설명하기”의 네 번째 글입니다.

사무엘상 17장에 기록된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는 아마도 성경에서 가장 널리 알려지고 사랑받는 이야기로 꼽힐 것이다. 이 이야기는 박진감과 긴장감, 흥미진진한 전개와 예기치 않은 반전, 그리고 마침내 선이 악을 이기는 승리까지 모두 담고 있다. 이 이야기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의심할 여지 없이 대부분의 독자에게 익숙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숙적인 블레셋과 전투를 벌이기 위해 전열을 갖추고 있었다. 두 군대는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는 산에 진을 친다. 그때 블레셋의 용사인 가드 사람 골리앗이 골짜기로 성큼성큼 내려온다. 그러고는 이스라엘에게, 한 사람을 내보내 자신과 일대일로 싸워 이긴 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기로 하자면서 싸움을 돋운다. 그런데 본문은 히브리어 서사에서는 다소 이례적으로, 골리앗을 매우 상세하게 묘사한다.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요, 머리에는 놋 투구를 썼고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무게가 놋 오천 세겔이며, 그의 다리에는 놋 각반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놋 단창을 메었으니, 그 창 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 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가 앞서 행하더라”(4–7절).

골리앗의 거대한 체구와, 당시 이스라엘 왕들조차 완전히 갖추지 못했던 장엄한 갑옷을 상세히 열거해, 우리가 그 거인의 군사적 우월함과 힘에 압도되게 만들려는 것이다. 이런 자에게 누가 감히 도전하겠는가? 당연히 나섰어야 할 이스라엘의 왕 사울(삼상 8:20 참고)은 진영 뒤에서 움츠리고 있다. 그때 이 거인의 조롱을 듣게 된 목동 다윗이 이스라엘을 대표해 앞으로 나선다. 다윗은 물매와 돌 하나를 들고 당당히 나아가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린다. 그렇게 이스라엘은 승리하고, 그들의 하나님께서 참되심을 드러내신다.

놀라운 이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주는가? 흔히 하는 대답 중 하나는, 이 서사가 우리 삶에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골리앗을 물리쳐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아마 이런 말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관계에서든 건강 문제든, 당신이 지금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든, 다윗에게 역사하셨던 하나님께서 당신 역시 그 골리앗을 이기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해석에는 몇 가지 근본적인 오류가 있다. 그중 가장 심각한 것은 우리를 이 이야기의 주인공 자리에 앉힌다는 점이다. 어쩌면 이해할 법도 하다. 어느 누가 이야기 속 영웅이 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아무 비판 없이 자신을 다윗과 동일시하는 것은 성경의 거대한 서사를 외면하는 일이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를 구원자가 아니라 구원받는 자의 자리에 둔다. 우리는 성경의 영웅이 아니라, 구출되어야 할 악인이다. 우리는 강하고 존경받을 만한 존재가 아니라, 연약하며 도덕적으로 파산한 자들이다. 사실 이스라엘 군대의 모습에서 우리를 찾는 편이 훨씬 더 정확하다. 우리는 두려움과 절망과 무력감에 사로잡혀 전열 뒤에 웅크리고 있는, 큰 위험 속에서 위대한 용사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이와 더욱 닮아 있다.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싸우실 용사, 곧 그들을 노예로 삼고 멸망시키려는 모든 세력을 정복하실 구주이자 메시아를 예비하신다는 사실을 전한다.

다윗은 자기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이는 성령의 기름 부음 받으신 그리스도가 자기 백성을 위해 싸우러 나아가실 것을 예표한다. 여러 해가 지난 후, 예수님은 골리앗이나 블레셋보다 훨씬 큰 악의 세력과 맞서 싸우기 위해 광야로 가셨다(마 4:1-11 참고). 또한 다윗은 이스라엘을 정치적·육체적 속박에서 건져 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신 일’(골 2:15 참고)을 희미하게 비추는 그림자이다. 다윗은 기름 부음 받으신 메시아, 곧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을 위해 싸우시고, 그들을 노예로 삼고 멸하려는 악의 세력을 물리치신다.

이처럼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에 관해 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서사가 오로지 그리스도만을 가리킨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실제로 성경 저자는 다윗을 우리가 본받아야 할 믿음의 본으로 제시한다. 다윗은 전장을 살피며 거인 골리앗과 그의 신성 모독적인 조롱을 들었을 때, 사울과 이스라엘 군대가 본 것과는 다른 것을 보았다. 사실 다윗이었다면, 이 이야기를 ‘다윗과 골리앗’이라 부르지 않고, ‘하나님과 골리앗’이라 일컬었을 것이다. 자신 위로 우뚝 솟은 거대한 골리앗이 블레셋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자, 그는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신뢰를 담아 응수한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 17:45–47).

다윗은 믿음의 눈으로 현실을 바라본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을 신뢰한다. 곧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순종하며 나아갈 때,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신해 친히 싸우겠다고 하신 약속을 신뢰한다(신 28:7 참고).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행한다. 이처럼 다윗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 준다. 즉, ‘하나님과 골리앗’의 서사는 거대한 시련 앞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변함없이 신뢰하라고 우리를 일깨운다.

그런데 다윗은 이 장면에서는 위대한 믿음을 보였으나 다른 때에는 그렇게 하지 못했고, 참담한 결과를 맞이했다. 다윗이 옥상을 거닐다가 밧세바를 바라보고서 탐했을 때, 실상 그의 눈이 보는 바가 그를 무너뜨리는 원인이 되었다. 다윗은 메시아를 예표했으나, 결국 우리와 마찬가지로 구원이 필요한 죄인이었다. 그러하기에 이 서사를 이해할 때에는 예표론적이고도 그리스도 중심적인 메시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는 사무엘상 17장의 다윗보다 사무엘하 11장의 다윗과 더 닮은 이들에게 복된 소식을 전한다.

전장에서 다윗이 보여 준 것과 같은 믿음으로 살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에게 무슨 소망이 있을까? 하나님은 연약하고 죄 많고 믿음 없는 자들을 위해 싸우실 용사를 보내 주신다. 복음의 선언과 분리된 도덕적 명령은 우리를 아무것도 바랄 수 없는 절망의 막다른 골목으로 이끌 뿐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복음에 있는데, 그 복음은 바로 죄인들을 위해 주어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다. 우리가 자신의 힘으로 애쓴다고 해서 우리의 순종이 더욱 온전해지고, 다윗처럼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게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은, 오직 성령을 의지하여 다윗이 가리켰던 그리스도, 곧 다윗 자신도 신뢰했던 그리스도를 믿는 것뿐이다(시 110편 참고).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스티븐 콜만
스티븐 콜만
스티븐 콜만(Stephen M. Coleman) 박사는 필라델피아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의 구약학 조교수이자 앨런 그로브스 성경 연구 센터(J. Alan Groves Center for Advanced Biblical Research)의 선임 연구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