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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19일
호세아에 대해 알아야 할 세 가지
2025년 10월 19일스가랴에 대해 알아야 할 세가지
1. 스가랴에 대해 알아야 할 첫 번째는 그 사람의 정체다.
스가랴는 구약에서 흔한 이름이었지만, 첫 번째 구절은 그를 “잇도의 손자요 브레갸의 아들”이라고 구체적으로 밝힌다. 느헤미야 12:1-4에 따르면, 잇도는 바벨론 포로 생활 후 스룹바벨과 함께 블레셋으로 돌아온 제사장 중 한 명이었다. 유배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벨론에 의해 파괴된 성전을 재건하는 것이었다. 스룹바벨의 지도 아래, 처음에는 일이 번창하였으나 외부의 압력과 내부의 무관심으로 인해 좌초되었다 (스 4, 5). 스가랴의 할아버지 잇도는 성전 초기 작업에 관여했을 것이다. 스가랴는 그 일을 완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예수님에 따르면(마 23:35-37), 스가랴는 그가 재건하는 데 관여했던 바로 그 성전에서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암살되기 전에 스가랴는 오래 동안 사역을 했다. 그는 그의 첫 번째 메시지(슥 1-6)를 다리오 왕 제 2년에 적힌 것으로 하는데, 이는 기원전 520년으로 계산된다. 그는 그의 두 번째 시리즈(슥 7-8)를 2년 후인 다리오 왕 제 4년(기원전 518년)에 적혔다고 한다. 9장에서 14장은 날짜가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헬라에 대한 언급(슥 9:13)이 있어 후대를 가리키는데,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기는 기원전 480년에서 470년 사이로 추정된다. 스가랴는 약 오십 년 동안 예언하였다.
2. 스가랴에 대해 알아야 할 두 번째는 그의 메시지에 관한 것이다.
바벨론 포로 생활이 끝났지만, 사람들은 기대했던 축복이나 번영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사마리아인들의 반대, 땅의 황폐함, 힘든 일과 고난에 직면했다. 상황이 절망적으로 보였다; 마치 주님께서 그들을 잊으신 것처럼 보였다. 스가랴의 이름은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는 뜻이다. 그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여호와께서 그들을 잊지 않으셨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상기시켰을 것이다.
스가랴의 설교의 주된 주제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계획에 대한 희망이다. 소망은 믿음의 미래적 관점이다. 모든 참된 믿음처럼, 소망은 객관적이며 그 대상이 그 가치를 결정한다. 소망은 초조하고 망설이며 손가락을 꼬는 소원이 아니다. 반대로, 소망은 하나님의 약속이 참될 수밖에 없다는 확신 있는 기대다. 하나님을 향한 시선이 소망의 비결이다. 그래서 스가랴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능력, 권위, 언약의 신실함, 그리고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이러한 소망에 대한 초점에서, 스가랴가 구약 전체에서 가장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메시아적인 책 중 하나로 평가 받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저주를 되돌리려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집중하는 것이, 그 시대의 절망 속에서 여러모로 희망을 잃은 사람들 안에 소망을 키우고 다시 불러일으키는 데 중요했다. 그리스도를 보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중심을 보는 것이며, 다른 모든 말씀에 대한 확신을 얻는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고 아멘이 된다 (고후 1:20).
스가랴는 오실 그리스도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그리스도가 이상적인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서의 중보자적 기능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그의 선지자직은 스가랴 13:7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메시야를 “내 목자”라고 부르시며, 그와 동등한 능력 있는 자로서 자신을 직접 치신다. 마태복음 26:31은 이것을 직접적으로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연결한다. 그것은 또한 선한 목자에 대한 그리스도의 설명과 평행을 이루며, 그가 양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준다고 선언하고 그와 아버지가 하나라고 말씀하신다 (요 10:30). 제사장직은 스가랴 3:8과 스가랴 6:12에서 대제사장 여호수아와의 비유로 나타나는 중요한 메시아적 칭호인 “가지”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 게다가 여호수아가 하늘 법정 앞에 서 있는 전체 비전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용서하고 의롭다 하시는 아름다운 그림이다: 칭의의 필요성은 크고, 칭의의 행위는 은혜로우며, 칭의의 근거(가지)는 확고하고, 칭의의 요구는 논리적이다. 그리스도의 왕직은 슥 10:4(모퉁이 돌, 못, 전쟁 활, 절대 통치자)과 슥 9:9, 종려 주일에 구체적으로 성취된 예언에서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된 왕권의 측면도 소망의 일부이다 (슥 14). 이 예언을 “스가랴에 따른 복음”이라고 부르는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3. 스가랴에 대해 알아야 할 세 번째는 그의 방법에 관한 것이다.
슥 1:1: “다리오 왕 이년 팔월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베레가의 아들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말씀이 온 방법 중 하나는 환상을 통해서였다. 첫 여섯 장은 그날의 즉각적인 상황에서부터 최종적인 완성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주는 일련의 환상을 기록한다.
스가랴는 계시된 메시지 외에도 하나님께서 환상을 통해 자신의 말씀을 어떻게 드러내셨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집이다. 먼저, 환상은 개인적이고 내면적이었다. 오직 선지자만이 그들을 볼 수 있었다. 둘째로, 환상을 받은 사람은 적극적인 참여자였다. 스가랴는 해석을 해 주는 천사와 대화하여 그 환상의 의미에 대한 지시를 받았다. 셋째, 환상은 매우 상징적이었다. 색깔 있는 말들, 네 명의 장인들, 등잔대와 감람 나무들, 날아다니는 두루마리들, 그리고 말들이 달린 병거들은 모두 어떤 영적 실체를 가리킨다.
스가랴의 방법의 또 다른 특징은 묵시록적 어조였고, 이는 먼 미래, 최종 완성을 포함한 예언을 다루었다. 그러므로 스가랴의 메시지는 포로기 이후의 이스라엘을 넘어선다. 그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과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이 진행 중임을 교회에 확신시킨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