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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서에 대해 알아야 할 세 가지


요나의 모험은 성경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 중 하나다. 교회에 있는 아이에게 그게 무엇에 관한 것인지 물어보면 적절한 대답을 들을 수 있다. 하박국 같은 다른 소선지자에 대해 묻는다면, 그렇지 못 할 것이다. 그러나 요나서는 기억에 남지만 반드시 잘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완고한 선지자와 큰 물고기가 초점이 아니다. 이 책은 물음표로 끝나며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에 비추어 우리의 삶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도록 초청한다.

1. 요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순종하며 따르도록 도울 수 있다.

요나서는 반드시 순종해야 하는 하나님께 어떻게 대응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관한 워크샵을 제공한다. 요나서는 주님을 주권자로 드러낸다. 주님은 제안하지 않고 명령한다. 심지어 이방인 선원들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인정하며 말한다, “여호와여, 주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다 행하셨나이다” (욘 1:14). 하나님은 단호하게 행동하신다. “여호와께서 바다 위에 큰 바람을 내리시매” (욘 1:4). “큰 물고기를 예비하셨다” (욘 1:17). 이 이야기는 확고히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다.

하나님의 명령은 분명하다. 그의 간단한 지시는 마치 어린아이에게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일어나라,” “가라,” “외치라.” 요나는 불순종했다. 정보가 부족해서도 아니고, 서둘러야 해서도 아니며, 외부의 압력 때문도 아니었다. 그는 단순히 순종하기를 원하지 않았고, 그의 반항은 재앙을 초래했다. 우리의 반역으로 인해 우리도 하나님의 축복을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그분의 무거운 손길을 초대한다.

그러나 순종이 참된 종교의 한 증거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요나는 자신의 종교적 자격을 자랑하고 훌륭한 신학을 떠들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과장하였다 (욘 1:9). 그는 마음과 행동으로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고 있었다 (욘 1:3, 10). 요나는 영적으로 병들었다. 그 큰 물고기 안에서의 경건해 보이지만 자기 자랑으로 가득 찬 기도에서부터 후반부에 나오는 그의 화난 성질까지, 요나는 니느웨의 부흥과 같은 마음의 변화를 필요로 했다.

바람, 파도, 식물, 동물, 심지어 이방인들의 순종은 자만한 예언자의 고집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그를 우리를 향한 경고로 삼으라.

2. 요나는 선교 지침서다.

이것은 명백하거나 놀라울 수 있다. 분명히 요나는 하나님의 사명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자들에 대한 연민 때문에 요나를 보내어 니느웨 사람들에게 다가올 진노를 경고하게 하셨다 (욘 4:2, 11). 그러나 하나님께서 선교사를 잘 못 선택하신 것처럼 보였다! 이 이야기에서 요나에 대해 본받을 만한 점은 거의 없지만, 그것이 요점인 것 같다. 선교에 대한 요나의 주저함은 그의 책을 읽는 이들로 하여금 “이방의 빛”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하여 부끄러움을 느끼게 했어야 한다 (사 49:6). 우리가 긍휼을 입은 자로서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이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기를 열심히 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요나의 실패가 그가 선교 영웅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교 영웅임을 증명한다. 전도에 대한 요나의 주저함은 기꺼이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할 더 큰 선지자를 기대하도록 이스라엘을 준비시켰다 (눅 19:10).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모든 민족을 복 주시겠다는 위대한 약속을 성취할 수 있다 (창 12:3). 니느웨의 부흥은 오순절과 사탄이 민족들에 대한 지배력을 잃는 것을 예견했다. 하나님의 형언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선물로 인해, 언젠가 “천천 만만”의 구속받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의 비할 데 없는 가치를 노래할 것이다 (계 5:11-12). 참으로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욘 2:9).

요나는 잃어버린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드러낸다. 선지자는 이를 자신의 덕으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모형으로서 보여준다. 요나를 주목하라, 그가 경건의 모범이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도 그와 같이 그가 묘사하는 그리스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3. 요나는 예수님에 관한 것이다.

예수님을 비난하던 자들이 그가 주장했던 자신의 정체성을 입증할 표적을 요구했을 때, 그는 그 세대에게 요나를 가리켰다 (마 12:39). 예수님은 요나 이야기의 핵심을 자신의 죽음과 부활의 그림으로 해석하셨다. 요나는 상징적으로 죽었다, 선원들이 그를 바다에 던짐으로써 그를 죽이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욘 1:14). 그는 배를 “깨뜨릴” 위협을 가한 “큰 폭풍”이나 물고기 뱃속에서의 삼일 동안의 체류에서 살아남지 못했어야 한다 (욘 1:4). 물고기는 요나의 물속 무덤이었다; 해변에 토해진 것은 그의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다. 옛 요나는 이방인을 미워하고 이기적인 안락함을 갈망했던 사람으로, “옛 사람”을 상징한다 (엡 4:22). 새로운 요나는 여전히 엄청 불완전하며, 더 거칠게 “새 사람”을 상징한다 (엡 4:23-24). 예수님도 죽으시고 부활하신다. 그와 연합하는 것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하나님의 상에 들어가는 유일한 길이다 (롬 6:8).

요나의 상징적인 죽음과 부활은 또한 니느웨 사람들에게 회개의 메시지를 확증했다. 우리가 예수님의 복음에 응답하지 않는다면 변명의 여지가 더욱 없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눅 11:32).

요나는 예수님에 관한 것이다 (눅 24:44–47). 그리스도 안에서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순종을 찾고, 우리의 경건한 삶을 시작할 수 있는 도움을 얻는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길 수 있도록 돋우는 하나님의 긍휼을 경험한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윌리엄 부케스타인
윌리엄 부케스타인
윌리엄 부케스타인 (William Boekestein) 목사는 미시간주 칼라마주에 있는 임마누엘 펠로우십 교회의 목사다. 그는 , , , 그리고 를 포함한 많은 책의 저자 또는 공동 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