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갈등의 원인 -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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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갈등의 원인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교회 갈등”의 두 번째 글입니다.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평화를 소중히 여긴다. 하나님을 배제한 인간관계는 잔혹하고 힘들다. 그러나 복음은 더 나은 관계에 대해 말해준다. 복음으로 인해 누리는 하나님과의 평화, 또한 성도들간의 평화를 고려해본다면 교회 갈등이라는 개념 조차도 놀랍게 느껴진다. 이런 갈등의 경험은 너무 충격적이어서 어떤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기도 하고, 심지어 복음의 능력을 의심하기까지 하는 사람들도 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에게 교회 갈등의 원인과 해결책을 실질적으로 이해하는 일은 중요한 문제이다. 성령님께서 주시는 그 이해는 야고보서 1장 1~6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야고보 사도가 갈등의 원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 것을 보면 교회 속에 갈등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약 4:1) 주님께서 서로 사랑하라고 만드신 공동체(요 13:35) 안에서 다툼이 일어난 원인은 무엇인가? 사도의 질문과 대답은 교회 갈등에 대처하기 위한 다음 네 가지의 교훈을 준다.

첫째, 야고보가 이 질문을 했다는 것은 교회에서 일어나는 의견 차이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 초기부터 교회 내의 갈등은 매우 현실적으로 드러났다. 신약성경은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바울과 베드로 사이에 갈등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빌립보 교회의 유오디아와 순두게도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지 못했다. 고린도 교회는 거의 모든 문제에 대해 논쟁하는 듯했다. 사탄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지속적으로 공격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 안의 분쟁이나 그로 인한 고통을  이상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벧전 4:12~13).

갈등은 이미 잠재되어 있던 죄악된 욕망, 세속적인 사고와 행동 방식이 표면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둘째, 야고보의 질문이,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약 3:18)라는 말씀 바로 뒤에 나오고, 질문에 이어 갈등에 대한 책망이 이어지는 이런 맥락을 보면, 갈등은 교회의 목적과 고백에 어긋난다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하나됨은 교회의 표식인데, 성도들 간의 갈등은 교회를 하나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에 어긋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7~10)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바로 전에도 하나됨을 위해 기도하셨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한복음 17:20~23)

셋째, 사도는 갈등의 원인이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약 4:1)이라고 지적한다. 이것은 내재하는 죄의 실상을 보여준다. 참된 그리스도인일지라도 여전히 이기적인 쾌락의 욕구를 가지고 있다. 야고보는 이것을 생생한 용어로 설명해 준다.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2~3절)

우리 안에 있는 갈등은 이미 잠재 되어있던 죄악된 욕망, 세속적인 사고와 행동 방식이 표면으로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를 겸허하게 만든다. 야고보는 이것이 기도를 부패하게 하고(“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잘못 구하기 때문”), 우리의 목표를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유익을 구하는 것에서 세상적인 쾌락과 영향력(“세상과 벗된 것”)을 구하는 것으로 옮겨 가게 한다고 경고한다. 그러한 욕망은 갈등에 불을 지피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 우리를 세운다.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언약을 배반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야고보는 이것을 영적 간음이라고 부른다.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4절)

이러한 갈등이 죄악된 욕망과 세상적인 생각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해결책을 제시해 준다. 스스로에게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부터 화평으로 가는 길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왜 이렇게 열심을 내는 걸까? 성령님의 인도를 받고 있는가 아니면 내 고집인가? 형제의 티를 보기 전에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를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가(마 7:3)? 사랑으로 기꺼이 허다한 죄를 덮고 있는가?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막 7:20~23) 분열 가운데 우리의 역할과 반응을 평가해 봐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갈등을 통해 죄를 드러내시고 교회를 정결케 하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마지막 교훈은, 교회의 갈등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의존하는 새로운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성령님께서는 초대 교회의 갈등을 통해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깊이 이해하도록 하셨다. 야고보는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6절)라는 짧은 진술로 결론짓는다.

흔히들 은혜를 그리스도인으로서 생활을 시작할 때 필요한 일회적인 것으로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은혜는 그 이상의 것이다. 은혜는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으로 인도하고, 그 생명 안에서 우리를 지키며, 우리를 본향으로 데려가는 하나님의 지속적인 능력이다. 하나님께서 더 많은 은혜를 주시는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더욱 큰 은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주 절실하고도 명백한 사실이다. 우리는 이 은혜를 통하여  자신의 죄를 보고, 그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께 의지하여 살 수 있다. 야고보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7~8절).

교회의 갈등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해도 우리가 성경적으로 대응한다면 원망하거나 교만해질 일은 없을 것이다. 교회의 유익을 더하기 위한 하나님의 크신 목적대로, 더욱 큰 은혜를 주시려고 우리를 준비시키시고 우리 마음에서 일하고 계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갈등으로 힘든 날들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라. 그러면 그분은 더욱 큰 은혜를 부어주실 것이다.

이 글은 원래 테이블톡 매거진에 게재되었습니다.

피터 밴두드왈드
피터 밴두드왈드
피터 밴두드왈드(Rev. Peter VanDoodewaard) 목사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그린빌에 위치한 언약 공동체 교회(Covenant Community Church)의 담임 목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