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4세기 교부들 -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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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4세기 교부들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결정적 시대: 4세기 교회사”의 여덟 번째 글입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처럼, 교부들이 자주 언급되지만 실제로 그들의 작품을 읽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들의 글은 자주 언급되지만 실제로 인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들은 전통주의적 구호의 핵심에 있다. 하지만 그들이 영감을 주었다고 여겨지는 전통에 실제로 기여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들은 오늘날 알려지지 않은 위대한 사람들, 바로 교회 교부들이다.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 콥트 교도(이집트의 기독교도)와 같이 사도 계승을 크게 강조하는 종교 단체에서도 사도를 계승한 교부들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 그들의 말과 작품은 일화로 사용되는 것 말고는 존경받는 경우가 좀처럼 없었다. 

이런 사실은 정말 아이러니하다. 사실 교부의 저작은 즉시 읽을 수 있고 광범위하게 이용 가능하기 때문이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글을 읽을 수 있었고 문학에 조예가 깊었다. 그들은 성경(the Book)과 책의 사람들이었다. 그 결과 그들의 세련된 편지, 설교, 소책자, 주석, 선언문, 신조, 대화, 잠언, 비문, 모험담이 수 세기에 걸쳐 신중하게 보존되고 문집으로 편찬되었다. 제국 시대에 곤란을 겪고 박해받은 신자들은 교부들의 목회적 지혜에서 위안을 얻었고, 선구적인 중세주의자들은 기독교 시대 전반에 걸쳐 그들의 세계관을 교부주의 토대에 기초를 두었다. 격동적인 종교 개혁 시대의 개혁주의 개신교인들은 교부들의 교훈을 주의 깊게 연구했다. 사실 19세기 말까지 거의 모든 세대의 기독교인이 고전 교육의 기초로서 교부들의 생각을 연구했다.

모든 실질적인 글쓰기가 그러한 것처럼 유감스럽게도 그들의 저작을 읽으려면 어느 정도의 근면성과 주의 깊음 및 분별력이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20세기 후반에 위대한 교부들의 작품을 읽고 연구하는 것이 인기가 없어진 듯하다. 

이론상으로 교부들(Patristics)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호소한다. 우리는 경건한 개혁주의 연도(連禱)(선창자를 따라 회중이 제창하는 기도 형식)를 반복한다. ‘초대 교회 양식으로 돌아가자. 초기 예배의 온전함을 회복하자. 그리고 겹겹이 쌓인 전통적 관행과 의례, 그리고 의식을 제거하자.’라고 말이다. 어떻게든 우리는 교부들이 이런 것에서 우리를 지지한다고 상상한다. 우리는 교부들을 단순하고, 예스럽고, 원시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실제로는 복잡하고 세련되고 성숙했다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곤 한다. 현대 교회가 반대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깊이, 정교함, 통찰력이다. 그 결과 우리는 “이런 사실로 나를 혼란스럽게 하지 말라”는 분별없는 태도로 계속해서 삶을 살아간다. 

일반적으로 서방 교회에서 교부 시대는 그리스도 이후 첫 5세기를 말한다. 동방 교회의 교부 시대는 이보다 확장하여 8세기 중반에 다마스쿠스의 요한(John of Damascus)을 포함할 수도 있다. 학자들은 전통적으로 저자들을 자연스럽게 네 그룹으로 분류했다. 첫 번째 그룹에는 사도적 교부와 변증가, 또는 신약성경 정경의 형성과 거의 동시대 저술가들이 있다. 이들은 모두 헬라어로 글을 썼다. 두 번째 그룹에는 대략 이레니우스 시대부터 니케아 공의회까지 3세기 저술가들이 있다. 그들은 부분적으로는 헬라어로, 부분적으로는 라틴어로 저술했다. 세 번째 그룹에는 니케아 이후의 라틴 교부들이 있다. 이들은 위대한 에큐메니컬 공의회 시대의 저술가들이다. 네 번째 그룹에는 니케아 이후의 헬라 교부들이다. 이들은 비잔티움 황금시대의 저술가들이다. 

교부들에 관한 대부분의 현대 모음집은 단지 첫 번째 그룹 교부들의 저술만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교부 시대의 정점은 실제로 4세기였기 때문이다. 4세기는 이 세상과 맞섰던(contra mundum) 아타나시우스(296-373)로 시작하여 서구 문명이 세워질 수 있도록 토대를 놓았던 아우구스티누스(354-430)로 끝나는 놀라운 100년의 기간이다. 그 사이에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더(Alexander of Alexandria, 267~328), 로마의 율리우스(Julius of Rome, 337~352), 푸아티에의 힐라리오(Hilary of Poitiers, 315~368), 가이사랴의 바질(Basil of Caesarea, 330~379),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Gregory of Nazianzus, 330~390), 투르의 마르티노(Martin of Tours, 335~397), 니사의 그레고리(Gregory of Nyssa, 335~394)는 아리우스파에 대항하여 성경적 정통을 위한 대투쟁을 벌이고 승리했다. 그리고 일찍이 이들은 아폴리나리우스파(the Appolinarians)와 단성론(Monophysites) 이단에 대해 공격을 퍼부었다. 4세기에 요한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344~407)은 교회의 설교와 예배의 전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4세기에 베들레헴의 제롬(Jerome of Bethlehem, 347~420)은 4세기 이후 교회가 천 년 이상 의존하게 될 중요한 성경 번역 작업을 했다. 4세기에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 도나티스주의(Donatism), 천상주의(Celestianism)의 오류가 폭로되었다. 

4세기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복음이 공격받는 시기에 그 시대 영웅들의 모범적인 신실함을 보는 것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마땅히 그들의 삶과 사역을 배워야 한다. 그들이 보여주었던 위대한 전투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과의 싸움을 준비하는 데 확실히 도움이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교부들의 글을 읽고, 그들에게서 배우고, 그들을 본받는 것은 단지 옛것에 대한 호기심이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이상주의를 연습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성경 자체를 연구하는 것을 제외하고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제자 활동 중 가장 적절한 일일 것이다. 

이 글은 원래 테이블톡 매거진에 게재되었습니다.

조지 그랜트
조지 그랜트
조지 그랜트(George Grant) 박사는 Parish Presbyterian Church의 목사이며 New College Franklin의 설립자이며 King's Meadow Study Center의 회장이며 테네시 주 Franklin에 있는 Franklin Classical School의 설립자입니다. 그는 The Micah Mandate: Balancing을 포함한 수많은 책의 저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