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는 머나먼 길 -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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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머나먼 길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모든 것을 기쁨으로 여김: 3세기의 그리스도 행전”의 다섯 번째 글입니다.

기원후 249년부터 260년 사이, 많은 그리스도인이 박해 앞에서 믿음을 져버렸다. 하지만 박해가 끝나자, 떠나간 자 중의 일부는 교회로 되돌아오길 원했다. 로마 교회의 노바티안은 변절자들의 복귀를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반면, 카르타고의 노바투스는 누구든지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카르타고의 키프리안은 참된 회개의 징표를 보인 자들만이 교회로 돌아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출교된 사람들이 교회로 돌아오고자 할 때, 우리는 믿음이 무엇인지 그들에게 물으며 “키프리안”적인 관점에서 그들의 회복을 고려해야 한다. 예수님께 순교는 믿음의 패러다임이였다. 주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초대교회 성도들에게는 믿음에 대한 유일한 이해였기에 죽음을 맞이 할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실제로 목숨을 잃을 각오가 된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신자에게 해당되는 사항이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바울의 기록처럼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빌3:8)” 훈련으로 순교자의 길을 가는 것이었다. 

예수님을 따른 순교자들의 믿음은 출교 이후, 다시 교회로 돌아오길 원하는 네 종류의 사람들을 향한 이 시대의 지침이 될 수 있다. 

1.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부도덕한 삶을 사는 사람들

최악의 상황이지만, 그래도 교회가 다루기에는 가장 쉽다. 이들은 예수님을 부정하는 대신 신앙을 고백해야 하고, 부도덕한 삶이 아닌 도덕적인 삶을 추구해야 한다. 이전이라도 그리스도를 고백했던 사람이라면 삶에서 무엇을 따라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신앙 고백이 즉각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믿음을 떠났던 사람이었기에 ‘믿음의 전형은 순교’라는 이해를 얻기 위한 일정 기간의 가르침은 필수적이다. 

물론,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섭리 속에서, 돌아온 자가 그리스도를 위해 필시 죽음을 맞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자신의 악행을 버려야 하고, 내려놓음이라는 마음의 동기가 십자가를 지려는 자기 부인에서 나와야 한다. 이전의 행동 양식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살고 있는지 관찰할 시간이 꼭 필요하다.

2. 그리스도를 부정하나, 도덕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

극복해야 할 부도덕한 삶의 모습이 없기에, 회복 기간은 빠를 것이다.

3. 부도덕한 삶을 살면서도 그리스도는 절대 부정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이 범주에서는 자신의 죄가 단지 연약함의 문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누가복음 17장 4절에 등장하는 형제이자 신자로 이해한다. 반복적으로 죄를 범하지만, 다시 회개하는 형제이기에 즉각적인 지위의 회복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교회가 이에 대해 머뭇거리거나, 시간을 더 요청하면, 이들은 대개 교회가 매정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이것은 각 개인의 관계와 교회 법정 사이의 관계를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누가복음 17장에 언급된 죄인의 회개는 교회 법정과 연결된 죄가 아니다. 이 상황은 마태복음 18장의 첫 단계처럼, 회개로 모든 사안이 종료되는 것과 유사하다. 유죄 여부를 묻기 위해 교회 법정에 제기된 사안이라면, (누가복음에 나오는 연약한) 형제로 자신을 이해해 달라는 범죄자의 주장은 무의미하다. 마태복음 18장의 어디에서도 죄를 지은 자의 신앙고백을 논하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고린도전서 5장에서 바울이 의붓어머니와 결혼한 남자의 출교를 요구할 때 역시, 피고인은 여전히 교회 내에서 신앙을 고백하는 자였다.

오늘날에도, 범죄했으나 결코 믿음은 버리지 않았다는 주장을 한다면, 이는 회복 과정에 일정 시간이 필요한 이유가 된다. 교회 법정과 죄인은 믿음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모든 것을 손해로 여기며 사자굴의 순교를 마주할 수 있는 믿음과 여전히 악행 가운데 만족하는 믿음의 차이를 말이다. 

4. 그리스도를 부정하지 않았으며 부도덕한 삶도 살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이들은 교회 법정이 자신들을 오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에게 주어진 처벌은 잘못되었기 때문에 다시 판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교회가 마태복음 18장의 원리를 따르지 않았다면, 이는 정말 좋지 않은 경우다. 이때는 책임을 지고 있는 교회 지도자들이 회개하고, 잘못 처벌된 당사자의 지위를 회복시켜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부정하거나 악행에 연루되어 기소된 자가 마태복음 18장의 과정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추후 이 사람은 그 과정의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하거나, 몸이 아팠다거나, 너무 바빴다거나, 자기는 유창하게 변호를 못 한다거나, 용서를 원했다거나, 실제로는 유죄 측에 있는 자신의 기소자를 보호하려고 했다거나, 기소자가 교회 지도자들에게 자신에 대한 편견을 갖게 했다는 등의 주장을 펼 수 있다. 이러한 각각의 변명이 합리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 사람이 주님께서 당신의 정의를 위해 교회에 주신 일련의 과정에 순종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마 18:17)”고 말씀하시며 마태복음 18장의 치리 과정을 지지하셨다. 출교의 이유는 단순히 처음 혐의 때문만이 아니라, 교회의 충고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회복이라는 사안 역시 그 당사자가 교회의 말에 순종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있다. 순교자의 말을 빌리자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졌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예수님께서 규정하신 바는 어째서 따르지 않았는지 의아스럽다. 

초대교회는 다른 박해가 찾아왔을 때 그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기 전까지, 어떻게 그 사람의 신앙을 확인할 것인가에 관해 고민했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에 대한 대답은 다음과 같다. “그 사람이 그리스도를 위해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보이시나요? 그렇다면, 이는 순교자의 믿음입니다. 이제 교회가 그를 맞이합시다.” 

이 글은 원래 테이블톡 매거진에 게재되었습니다.

로버트 드레이크
로버트 드레이크
로버트 드레이크 목사는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슈빌에 있는 언약장로교회를 담임 목사로 30년 이상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