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할 때에 강함
2024년 05월 14일
아브라함의 시험
2024년 05월 14일시련, 유혹, 시험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목적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시련, 유혹, 그리고 믿음의 시험”의 두 번째 글입니다.
때때로 죄는 우리에게 시련과 유혹, 믿음의 시험을 불러일으킨다(시 106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8.4절은 우리의 죄가 구원의 확신을 약화시킬 수 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죄가 항상 시련, 유혹, 시험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시련과 유혹, 믿음의 시험을 이해하는 데 있어 우리에게 가장 뼈아픈 도전은, 우리의 개인적인 경험이 도덕적 일관성과 정의에 대한 관습적인 기대와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때때로 우리 자신의 시련은 단순히 개인적인 죄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닐 때가 있다. 전도서와 욥기는 이 점을 밝히 보여준다. 악인이 심판을 받지 않고, 의인이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할 때 사람들은 하늘을 향해 외친다. “지혜자의 죽음이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로다”(전 2:16) “악인들의 행위에 따라 벌을 받는 의인들도 있고 의인들의 행위에 따라 상을 받는 악인들도 있는”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가?(전 8:14) 욥의 “친구들”은, 욥이 고통 당하는 것을 보고 그가 죄를 지었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들은 의인은 형통하고 악인은 고통받는다는 원칙을 적용했을 때, 욥이 악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잘못된 추론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인생이 항상 그렇게 흑백으로 나뉘는 것은 아니다. 야고보, 바울, 베드로는 이러한 어려움에 대해 우리에게 도움을 준다.
야고보서는 시련과 유혹,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시험하는 것에 대해 성경에서 가장 적절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그는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1:2)라고 썼다. 야고보가 염두에 두고 있는 “시험”은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을 모두 포함하는데, 12절과 그 다음 구절에서 야고보가 내적인 유혹을 언급하기 위해 동일한 헬라어 단어를 사용한다는 사실에서 이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야고보는 “여러 가지” 시험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하라. 요컨대, 야고보는 시험과 유혹을 겪는 모든 사람에게 말하고 있다.
야고보는 우리가 시험에 대해 올바른 태도를 갖기를 원한다. 시험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때, 그의 대답은 간단하고 놀랍다. 시험은 우리의 믿음을 강화하고 그리스도인의 성품을 완성하기 때문에 시험을 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시험은 경건한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특별히 야고보는 이러한 다양한 시련을 겪을 때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우리에게 이 기쁨은 아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정의 내리게 했다. 그것은 최종적인 관점, 즉 하늘의 관점을 가진 사람의 기쁨이다.
야고보는 그리스도인이 시험과 고난 중에 그러한 자세를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세상이 알지 못하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선언한다. 이러한 시험이 우리 인격에 반드시 있어야 인내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기뻐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시험과 고난의 능동적인 특성이다.
시험은 우리 인격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것, 즉 인내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사도는 여기서 생각의 끈을 멈추지 않는다. 이 인내라는 성품의 특성은 더 나아가 다른 무언가로 이어진다. 야고보는 단순히 한 가지 덕목의 발전이 아니라, 인격 자체의 발전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는 계속해서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한다(1:4). 신약성경은 완벽주의나, 그저 단순하게 인간이 완벽해질 수 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우리의 미덕의 성취는 항상 불안정하고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야고보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야고보가 우리의 주의를 그리스도께로 돌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독자들은 히브리서 기자가 한 말을 기억할 것이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 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 5:8-9)
히브리서에서 이 구절은 우리를 대신하여 대제사장이 되시기 위한 예수님의 준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기서 히브리서의 초점은 유혹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온전하게”라는 말은 긍정적인 의를 행사하여 대제사장 직분에 “적합”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주님은 우리 모두가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고통에 대한 자연스러운 성향을 극복하셨다. 우리의 구주이시자 긍휼이 많으신 대제사장은 편안함을 선택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시험과 유혹에 직면했을 때 “온전히 기쁘게 여길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 순종하심으로 고난에 동참하셨다. 그분은 우리 안에서 인내의 성품을 만들어 가신다.
야고보가 편지를 쓰고 있던 교회의 일부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주권자이시므로 그분이 그들의 시험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지셔야 한다고 잘못 생각한 것 같다(약 1:13). 그러나 야고보는 시험의 기원이 우리 자신의 내면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기를 원했다. 더욱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선물만 주시기를 원하신다(17-18절).
이러한 진리는 사도 바울에게도 지속적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것 같다. 그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환상과 계시, 육체의 가시와 같은 자신의 고난을 묘사한 후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라고 열정적으로 선포했다(고후 12:10). 바울과 그의 동료들은 고난을 겪으며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였고”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라고 선언했다. 그런데도 바울은 그들이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확언했다(1:8-9).
베드로는 또한, 첫 번째 서신의 시작 부분에서 야고보서의 주장과 매우 유사한, 시험에 대한 흥미로운 주장을 하고 있다(벧전 1:6-7). 베드로는 어떻게 그렇게 용감하고 대담한 주장을 할 수 있는가? 그 답은 두 가지 큰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새로운 선택된 백성이라고 주장한다(2:9-10). 둘째, 베드로는, 하나님의 백성이 애굽에서 탈출한 최초의 출애굽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그것을 넘어 죄의 속박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구출하는, 우리 삶의 궁극적인 이야기인 그리스도 안에서의 해방, 즉, 주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위해 마련한 두 번째 출애굽에 주목한다.
확실히 베드로전서의 처음 두 장에는 출애굽의 은유가 지배적이다. 애굽에서의 탈출 이미지가 전반에 걸쳐 깔려 있다(특히 1:3-2:10). 이러한 암시에는 유월절, 거룩에 대한 요구, 금송아지, 대속된(즉, 구속된) 생명, 흠 없는 어린 양 등이 포함된다(출 12; 15:13; 32; 레 11:44; 19:2). 베드로가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뒤를 돌아보지 말고 “썩지 않는 기업”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벧전 1:4). 베드로는 왜 이렇게 출애굽기의 색채로 캔버스를 칠했을까? 아마도 원래 청중이 히브리어 성경을 통해 교리 교육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거룩함과 사랑으로 특징지어지는 윤리적 적합성에 대한 관점을 가지고, 옛 하나님의 백성과 새로 택함 받은 그리스도인 공동체 사이의 비유를 그릴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13-25절).
베드로전서의 이 구절들에서 중요한 원칙이 드러나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에 대한 명시가, 우리가 그에 대한 응답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령보다 앞선다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1장 13-21절에서, 베드로는 이야기의 마지막을 시작하는데, 13절의 “나타나실 때”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가리킬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17-21절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을 중심으로 한 내용은 14-16절의 거룩함에 대한 명령과 권면의 기초가 된다. 다른 예로 22절의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라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23절). “거듭나다”로 번역된 동사는 의도적으로 3절을 반영한다.
요컨대, 베드로는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기를 바라며 이를 위해 강력한 은유, 즉 이 경우에는 출애굽이라는 비유를 사용한다. 그러나 그는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나그네라는 새로운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기를 원한다. 우리의 믿음의 지표에 근거하여 독자에게 더 큰 거룩함을 추구하도록 권면할 수 있다. 그가 서신의 서두에서 이러한 것을 행하는 방법 중 하나는 그리스도인들이 시험에 대해 올바르게 생각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6-7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