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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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7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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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7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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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기독교와 자유주의”의 일곱 번째 글입니다.

J. 그레샴 메이첸이 『기독교와 자유주의』에서 강조한 것 가운데 하나는 예수에 대한 올바른 이해였다. 메이첸은 헌신적인 성직자이자 예리한 학자로서 예수에 대한 교회와 학계의 비정통적인 견해에 대해 잘 인지하고 있었으며, 오늘날에도 이와 동일한 오류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오늘날 학술 문헌에서 언급되는 예수는, 나사렛 출신의 유대인 선지자로 어떤 면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신성한 아들의 의미는 아니다. 나사렛 예수의 인간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하나님의 신성한 아들이라는 측면은 추측일 뿐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정통 기독론은 예수를 단순히 나사렛  출신의 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은 상당히 잘못된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같은 맥락에서, 예수의 참 인성을 부정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정통 기독론은 이런 오류와 타협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교리를 적절하게 설명하려면 이 까다로운 물길을 헤쳐 나가야 한다.

교회는 지난 수백 년간 위대한 신조들을 성경적으로 성실히 심사숙고해왔고, 감사하게도 이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도움을 주고 있다. 먼저, 그리스도는 삼위일체의 제2 위격이신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분은 바로 성육신하신 신성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따라서 우리가 보통 나사렛 사람을 만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잘못이다. 또한 성육신을 두 인격으로 생각하는 것도 잘못이다. 우리는 신성한 인격과 성육신하신 사람의 인격, 두 인격을 만난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한 인격, 즉 인간의 본성을 취하신 신성한 인격이시다. 그분은 인간으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나사렛에서 자라셨지만(마 1:18~23; 눅 2:1~14),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그분 또한 영원하시다(미 5:2). 

메이첸은 헌신적인 성직자이자 예리한 학자로서 교회와 학계의 예수에 대한 비정통적인 견해에 대해 잘 인지하고 있었으며, 오늘날에도 이와 동일한 오류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우리는 ‘위격적 연합’을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8.2). 위격적 연합은 성육신에서 두 본성(신성과 인성)이 한 아들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하였다고 가르친다. ‘위격적(hypostatic)’이라는 용어는 신성한 인격을 뜻하는 후포스타시스(hypostasis)에서 유래했으며, ‘연합’은 신성과 인성이 한 위격 안에서 결합되었음을 뜻한다. 이는 성육신 안에서 그리스도가 신성한 본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인성을 취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본성은 어떤 식으로든 전환이나 합성이나 혼합되지 않고 그리스도의 한 위격 안에서 결합되었다. 이 본성은 따로 분리되지 않으므로 행동하시는 분은 언제나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이는 중요한 기독론적 원리를 반영하는데, 행동하는 것은 인격이지 본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욱이 한 그리스도의 위격은 각 본성에 맞게 행동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은 항상 신성하지만, 우리의 구원을 위해 성육신 안에서 참된 인간의 본성을 취하신 것이다. 위격적 연합은 참 하나님이시요, 참 사람이시지만, 그럼에도 한 분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위격적 연합이 올바르게 이해되지 않았던 일은 종종 있었고, 이는 그리스도를 잘못 이해하는 이단들로 나타났다. 아리우스주의는 성자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처럼 완전히 신성한 것은 아니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이것은 예수님의 온전한 신성에 대한 분명한 성경적 가르침을 놓치고 있다( 요 1:1; 20:28; 히 1:8; 요일 5:20). 신성은 중간이 될 수 없다. 예수는 신성하든지 아니든지 둘 중 하나다. 예수가 완전한 인성이 아니라고 가르친 이단들도 있다. 예를 들어, 아폴리나리우스주의는 예수는 인간의 정신이 없다고 가르쳤다. 하지만 이는 예수를 인간보다 못한 존재로 만들며, 그렇다면 그는 인류의 구원자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속죄가 필요한 악한 심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유티키우스주의는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혼합된 제3의 본성을 가졌다고 주장했다. 이 또한 예수께서 우리와 같은 인성을 가지지 않으셨음을 의미하며, 따라서 이 견해도 잘못된 것이다(히 2:14~18). 계속해서 출몰하는 또 다른 이단은 네스토리우스주의다. AD 431년 알렉산드리아의 시릴과 에베소 공의회가 반박한 이 잘못된 견해는 그리스도가 두 인격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정통 기독론은 그리스도는 한 인격이라고 가르친다.

메이첸은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군중의 추측과는 달리 제자들이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을 염려하셨다(마 16:13~17).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사람이심을 분명히 알았지만, 동시에 그분이 메시아이시며 하나님의 신성한 아들이심을 알아야 했다. 바울도 우리가 예수님을 바르게 고백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빌 2:6~11, 딤전 3:16). 그리스도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고 말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성경적 관심사이지, 신학자들만의 추상적인 추측이 아니다. 메이첸은 이렇게 말한다. “예수님이 신약성서에서 묘사하고 있는 존재라면, 우리가 그분께 우리 영혼의 영원한 운명을 맡기는 것은 안전하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우리의 구원자는 참 하나님이시자 참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견디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실 수 있다(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38,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7). 또한 우리와 동일한 본성을 지닌 사람만이 태초에 죄를 지은 사람과 동일한 본성으로 우리의 죄에 대한 저주를 감당할 수 있다(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39,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6). 오직 예수님만이 첫 아담의 불순종을 이기시고 온전히 순종하신 둘째 아담이시며, 동시에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 오직 예수님만이 부활하시고 영광을 받으신 만유의 주님이시며, 참 하나님이시요 참 사람이시다.

교회의 위대한 신조들은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삼위일체의 제2 위격이시라고 말한다. 사람이 하나님이 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이다. 이 결정적 차이는 엄청난 의미를 지닌다. 예수님을 보통사람으로, 또는 마치 단순히 인간이었던 것처럼 말한다고 해서, 신조가 복음의 핵심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메이첸은 대속적 속죄가 그리스도의 인격의 유일성을 전제로 한다는 점을 논했다. 우리의 죄악은 너무 커서 어떤 평범한 사람도 우리를 그 깊은 수렁에서 꺼낼 수가 없다. 우리에게는 단순한 모범이나 스승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구세주가 필요하다. 메이첸은 이렇게 표현했다. “예수님은 단순한 믿음의 모범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시다.” 우리를 구원하려면 평범한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참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는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분이 필요하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메이첸 시대에도 마찬가지였고,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그렇다.

이 글은 원래 테이블톡 매거진에 게재되었습니다.

브랜든 D. 크로
브랜든 D. 크로
브랜든 D. 크로 박사는 필라델피아에 소재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신약학 부교수이다. "마지막 아담과 일상의 문제들: 생산에 대한 성경적 접근 (The Last Adam and Every Day Matters: A Biblical Approach to Productivity)"을 비롯한 여러 책의 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