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치료자 

2026년 09월 25일

노예의지론 

2026년 10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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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한 논쟁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의지의 속박”의 첫 번째 글입니다.

‘인간에게 자유 의지가 있는가?’라는 질문만큼 많은 저술을 낳고,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든 질문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 논쟁은 고대 아테네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스토아학파는 필연을 역설했고, 에피쿠로스학파는 우연을 주장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자유 의지를 철학적인 추상 개념으로 다루는 데 결코 만족하지 않았다. 우리는 의지가 구원과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인간이 하나님을 선택하는가? 하나님께서 인간을 선택하시는가? 아니면 두 가지가 결합되어 있는가?

16세기는 이런 질문들에 대해 아직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은 시기였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인간의 의지와 하나님의 은혜가 협력해 구원을 이룬다고 가르쳤다. 이 교리는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를 깊은 절망에 빠뜨렸다. 그는 자신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원을 얻기에 충분할 정도로 행한다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어떻게 인간이 영생을 위해 하나님과 충분히 협력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오랫동안 고심한 끝에, 특히 로마서를 연구하면서, 자신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행위로 천국을 얻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깨달음은 그의 삶을 변화시켰고, 개신교 종교개혁의 불씨를 지폈다. 구원이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다면, 인간의 의지는 하나님을 선택했다는 공로를 내세울 수 없다. 다시 말해, 구원은 여호와께 속해 있다(시 3:8 참고).

네덜란드의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는 루터의 견해가 숙명론에 가까우며 도덕적 노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자유의지론』(On the Freedom of the Will)을 통해 반론을 제기했다. 에라스무스는, 몇몇 일들은 신비에 속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의지가 어떻게 함께 작용하는지가 여전히 분명하지 않더라도, 구원을 이루는 데 각자의 역할이 마땅히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루터는 자신의 가장 위대한 저작으로 꼽는『노예의지론』(The Bondage of the Will)을 통해 답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류는 너무나 심각하게 타락하여 의지가 죄에 속박된 까닭에 자신의 영적 선을 추구할 수가 없다. 성경은 우리가 “허물과 죄로 죽었던”(엡 2:1) 자들이라고 분명히 밝힌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마음을 거듭나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그리스도를 신뢰하게 하며,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요 3:1–15 참고). 이와 같이 에라스무스와 루터는 둘 다 인간의 의지가 실재함을 인정했지만, 인간이 얼마나 깊이 타락했는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가 어디까지 미쳐야 하는지를 두고는 견해가 첨예하게 갈렸다. 즉, 에라스무스는 “어느 정도는”이라고 말했고, 루터는 “전적으로”라고 말했다.

올해(2025년)는 『노예의지론』이 출간된 지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 책은 오래되었지만, 그 질문들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의지는 속박되어 있는가, 아니면 자유로운가? 죄인들이 자신의 구원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그 공로를 나누시는가, 아니면 전부를 주장하시는가? 이런 질문들에 뭐라고 답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마음과 기도와 교회의 모습이 빚어진다. 우리는 시편 기자와 더불어 이렇게 선언한다.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시 115:1).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토마스 브루어

토마스 브루어

토마스 브루어(Thomas Brewer) 목사는 리고니어 미니스트리에서 편집 담당 부사장이자 「테이블톡」 매거진의 편집장이다. 또한 그는 미국 장로교회(PCA)의 강도 장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