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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1월 15일왜 교회에 가야 하는가?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기독교 제자도의 기초”의 열 한 번째 글입니다.
1. 성경이 그것을 명령하기 때문이다.
‘왜 교회에 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첫 번째 대답은, 가장 단순하고도 기본적인 측면이다. 즉, 성경이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10장에서 ‘당대의 독자들’에게 주어진 위대한 특권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그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성소에 들어갈 놀라운 특권을 얻었다. 본문에서는 구약을 언급하는데, 당시 하나님의 성전에 있는 지성소에는 오직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었고, 그것도 일 년에 단 한 번뿐이었다. 그런데 너무나 놀랍게도,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휘장이 찢어졌고,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께서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도록 길을 열어 주셨다.
이어서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가 ~하자’로 시작하는 적용점을 세 가지로 제시한다. 이 명령들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공동체적으로 주어졌다는 데 주목하라.
- “우리가……하나님께 나아가자”(22절). 나아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씻음을 받고 용서받아야 한다.
-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23절). 굳게 서서 포기하지 말고 이 소망의 메시지를 계속 믿어야 한다.
-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24절).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것은 자기 자신만의 힘으로, 또는 혼자서는 할 수 없으며,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교회에 나아갈 때는 다른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계속해서 저자는 이렇게 명령한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25절).
그는 우리의 교회 출석을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맥락 안에 둔다. 즉, 교회에 가는 것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행하는 일이다. 우리는 자신의 유익과 다른 이들의 유익을 위해 교회에 간다. 함께 모이는 것은 소망을 잃기 쉬운 세상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전진해 갈 수 있는 길이다. 당시 히브리서 수신인들과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에 속하여 참여하는 일을 소홀히 하는 위험에 처해 있다. 신약 시대에는 그리스도인이 교회에 가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2.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교회에 가는 것은 비단 성경의 명령 때문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더 깊은 이유가 있다. 우리가 교회에 가는 것은 하나님의 어떠하심, 곧 그분의 속성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의 경배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고 보존하며 구속하시는 주님이시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의 표현대로, 하나님은 “존재와 지혜와 권능과 거룩하심과 의로우심과 선하심과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이 무한하시며 무궁하시며 불변하시다”(문답 4). 이런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된 자들은 다른 이들과 함께 모여 그분 찬양하기를 원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지음 받았다.
우리가 교회에 가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 때문만이 아니라, 그분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 때문이기도 하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말한다.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벧전 2:10). 주님은 한 백성, 곧 각 나라에서 나온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계 7:9)를 불러 모으신다. 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은 함께 모여 그분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냈다. 창세기 4장의 마지막 절에서 이런 모습이 처음으로 나타났다.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26절). 그리고 성경의 맨 마지막 부분은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 모여 예배하는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요한계시록 21장은 사방으로 문이 있는 도성 같은 신부의 모습을 묘사한다. 이 놀라운 광경은 모든 시대, 모든 곳에서 온 하나님의 백성이 자기 백성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모여드는 모습을 보여 준다.
우리는 주일에 형제자매들과 함께 모여, 저 위대한 날을 미리 맛본다. 우리의 지역 교회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온 주님의 백성, 그리고 하늘에 있는 승리한 교회와 천사들의 무리와 함께 모일 때, 우리는 그런 실재를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이 땅에서 주일마다 모이는 것은 영원한 안식을 사모하는 마음을 길러 준다. 구약에서 안식일은 특히 쉼으로 특징 지어졌다. 물론 그런 측면이 주일에도 여전히 남아 있으며, 우리는 그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나 신약에 들어오면서, 주일은 점점 예배로 특징 지어지게 되었다.
3. 교회에 가는 것이 독특한 특권이자 복이기 때문이다.
교회로 모이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를 당신이 확신하게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백성과 더불어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보다 다른 것들을 우선하는 것은 전적으로 어리석은 행동이다. 주님의 백성과 함께 모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4계명을 지킬 수 있겠는가? 교회에 ‘가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교회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이 실로 놀라운 진리이다.
우리는 모든 죄책감과 두려움과 불안 가운데서도 교회로 나아가 함께 모일 수 있다. 당신의 짐과 문제들을 가지고 나아오라. 마귀는 종종 그런 것들로 사람들을 교회에서 멀어지게 만들지만, 교회야말로 당신이 있어야 할 바로 그 자리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교회에서 죄인들을 받아 주시고, 우리에게 안식할 자리를 마련하시며, 성례와 말씀 선포를 통해 우리를 새롭게 하신다. 그분은 우리를 부르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8–30).
예배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 그분을 찬송하며 노래하라.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사죄의 확증을 들으라. 형제자매들과 함께 기도하라. 시대를 거쳐 이어져 온 성도들과 더불어 신앙을 고백하라. 선포되는 복음을 듣고, 세례와 성찬의 성례를 통해 복음을 목도하라. 혼자서는 이 일들을 할 수 없다. 하나님의 백성은 함께 모이도록 지음 받았다. 그들은 늘 그래 왔고, 앞으로도 항상 그럴 것이다. 교회에 나아올 때, 주님께서 다른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복을 주신다.
하나님은 자신의 교회가 함께 모일 때, 홀로 있을 때와는 구별되는 방식으로 그들에게 복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예수님은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19,20)라고 약속하신다. 사도 바울은 외부인이 예배 자리에 들어오는 상황을 언급하면서, 그가 언제나 참된 사실, 곧 하나님이 참으로 우리 가운데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기도하라고 가르친다(고전 14:25 참고).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님께서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신다고 말씀하는데, 이 촛대는 주님의 교회를 의미한다(계 2:1 참고). 예수님은 자신의 교회가 모이는 주일마다 여전히 그렇게 행하신다.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한 지체가 되는 것보다 더 놀라운 일은 이 세상에 없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