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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해란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는, 그 누구의 관점도 다른 관점보다 우월할 수 없고, 어느 누구도 진리를 독점할 수 없으며, 궁극적으로 모든 것이 의견의 문제일 뿐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런 견해는 성경에까지 적용되어, 성경의 의미를 아무나 제멋대로 다룰 수 있고 무한히 변형할 수 있는 것처럼 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개혁주의 전통은 이 견해를 일관되게 거부해 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이 어떻게 읽히는지를 중요하게 여기시기 때문이다. 결국 성경은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대로 읽어야 한다.

성경 본문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일은 주해의 영역이다. 주해는 해석학과 밀접하게 관련되는데, 해석학은 성경에 어떻게 접근하고 그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규정하는 원리를 다룬다. 그러므로 주해는 특정 본문에 해석학을 적용하는 일이다. 다음은 개혁주의 전통에 따른 성경 해석의 몇 가지 원칙이다.

우리는 겸손히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

성경은 평범한 책이 아니다. 성경은 독특한 책이며, 하나님의 말씀이고, 믿음과 행실의 유일무오한 규범이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지를 분별하기 위해 노력한다. 다른 모든 권위는 성경에 종속된다. 심지어 성경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가르치겠다고 나서는 권위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 저자들이 의도한 의미를 분별하려고 애쓰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신적 저자이신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의미를 분별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우리 자신을 성경보다 높은 자리가 아니라 성경 아래에 두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겉으로 드러난 의미가 우리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구절을 만날 때, 우리는 그것을 억지로 궁색하게 설명하여 넘기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자들을 믿음으로 이끄시는 데에 하나님의 택하시는 은혜가 우선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그 가르침을 너무 어렵게 여겨 떠나간다(요 6:66 참고). 그리고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성경에서 가르치는 선택에 관한 교리에 억지 설명을 늘어놓으면서 그것을 무효화하려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을 우리가 바라는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복종하려고 힘써야 한다.

우리는 성경을 신실하게 해석해야 한다.

성경을 신실하게 해석한다는 것은, 어떤 본문을 본래 의도된 방식대로 읽는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읽으려면, 장르와 수사적 표현 같은 것들에 유의하고, 해당 본문의 역사적·문학적 맥락을 고려하며, 거기에 사용된 단어들이 본문이 기록될 당시 어떻게 이해되었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이 방법을 흔히 역사-문법적 주해라고 부르며, 저자가 사용한 단어들과 그것들의 문맥적 의미에 집중함으로써 저자가 전달하려고 의도한 바를 밝혀내는 데에 목적이 있다.

성경을 신실하게 읽는 것은, 다음과 같이 본문에 대해 몇 가지 핵심 질문을 던지는 데서 시작한다. 저자는 누구인가? 그가 쓴 글의 맥락은 무엇이었는가? 그가 글을 쓴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본문의 장르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은 종종 본문 자체에서 찾을 수 있으나, 때로는 주석이나 성경 사전 같은 외부 자료에서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단어는 보통 하나 이상의 의미나 함의를 지니는데, 문맥은 그 단어의 의미 영역(semantic range), 곧 그 단어가 지니는 모든 의미 가운데 그것이 의도하는 특정한 의미를 판별하도록 도와준다(예를 들어, 신약에서 ‘세상’이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는 것을 보라: 마 4:8; 13:22; 25:34; 막 4:19; 눅 2:1; 요 1:29; 3:16; 행 17:6; 롬 3:6; 갈 6:14; 엡 2:2 참고). ‘그러므로’, ‘오히려’, ‘그러나’, ‘대신’, ‘그래서’와 같은 핵심 단어들은 저자의 사고 흐름을 나타내며, 본문의 문법은 강조점을 보여 줄 수 있다(예: 눅 12:5).

본문의 장르를 파악하는 것도 저자의 의도를 분별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성경에는 시, 예언, 묵시 문학, 교훈 등 여러 장르가 나타나며, 각 장르에는 본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고유한 관습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본문이 시라면, 거기에는 대개 문자적·구체적 차원을 넘어서는 의미를 가리키는 비유와 상징이 담겨 있다. 묵시 문학도 마찬가지다. 본문이 서사라면, 단순히 일련의 사건들을 서술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그 사건들이 훗날의 일들을 예고하거나 구속사적 역사 속에서 더 큰 의미를 띨 수도 있다.

본문의 이러한 측면들을 탐구하면, 그것이 기록될 당시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다음에 우리는 그 본문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전하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다. 이 과정에는 그리스도의 강림이라는 관점에서 본문의 의미를 규정하는 일이 포함된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오셨으니, 우리는 이 명령을 어떻게 이해하고 이 서사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신약 교회의 지체로서 우리는 믿어야 할 약속, 순종해야 할 명령, 귀 기울여야 할 경고, 깨달아야 할 진리, 또는 적용해야 할 위로를 보아야 하는가?

우리는 성경을 책임 있게 해석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성경의 궁극적인 저자이시므로, 그분이 성경의 최종적이고도 결정적인 해석을 규정하신다. 이 말은 곧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다는 뜻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이렇게 진술한다.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는 준칙은 성경 자체입니다. 따라서 성경 어느 부분의 참되고 온전한 의미에 관하여(이것은 여러 가지가 아니고 하나밖에 없습니다) 의문이 있을 때에는 더 분명하게 말하는 다른 구절들로 상고하여 깨달을 것입니다”(1.9). 그러므로 우리는 종종 난해한 본문에 빛을 비추기 위해 성경의 다른 부분들을 찾아보아야 한다. 성경의 최종적인 해석은 전통이나 교회 지도자들이나 개인의 견해와 같은 다른 권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자체 안에서 발견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또한 “통상적인 수단을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성경의 메시지를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한다(1.7). 성경은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문법 규칙 등을 사용하여 통상적인 방식으로 읽어야 하며, 그것을 추측과 알레고리적 해석과 기발한 상상을 펼치는 발판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또한 ‘통상적 수단들을 적절히 사용하는 것’과 더불어, 성경을 진지하게 읽어야 한다. 성경을 경솔하게 대하고는 그것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단언해 버릴 수는 없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지에 관해 성경이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는지를 알고자 한다. 성경의 어떤 본문이든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의미로 가득 차 있지만, 이런 적용들이 어떻게 믿음을 통한 그리스도와의 연합에서 흘러나오는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번영하는 삶을 무조건적으로 약속받은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예레미야 29장 11절에서, 하나님은 원래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간 이스라엘에게 복에 대한 소망을 주셨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완전하게 순종하신 아들이요 참 이스라엘로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상속받고, 모든 상급을 공로로 얻으셨으며, 우리는 그분과 연합함으로 말미암아 헤아릴 수 없는 복을 받게 된다(엡 1:3–11 참고). 이것이 성경의 모든 페이지에서 펼쳐지는 복음이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케빈 가드너

케빈 가드너

케빈 가드너(Kevin D. Gardner) 목사는 테이블톡(Tabletalk) 잡지의 부편집장이며 플로리다주 샌포드에 있는 레포메이션 성경 대학(Reformation Bible College)의 상주 부교수이자 미국 장로교(PCA)의 교역 장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