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가운데 나타난 성령의 사역
2026년 01월 28일
성령의 은사
2026년 01월 28일구속 가운데 나타난 성령의 사역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성령”의 두 번째 글입니다.
크리스티나 로세티(Christina G. Rossetti)가 어린이를 위해 쓴 한 편의 시는 바람의 경이로움과 그 구체적인 작용을 동시에 포착한다.
누가 바람을 보았나?
당신도, 나도 보지 못했네.
하지만 나무들이 고개를 숙일 때,
바람이 그 곁을 지나가고 있네.
바람은 결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작용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다.
예수님은 바람이 임의로 부는 것을 하나님의 영이 행하시는 일에 비유한다(요 3:8 참고). 성령의 사역을 본 사람은 그분이 실재하심을 안다.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은 대부분 성령의 사역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 결과 성령의 실재가 지닌 더 넓은 차원보다는, 성령에 대한 주관적 경험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기서는 성령의 객관적인 사역을 먼저 살펴보고 나서, 그분의 주관적인 사역을 고찰해 보자.
신자의 외부에서 행하시는 성령의 경이로운 사역
먼저, 성령은 모든 생명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그것을 보존하신다. 성부와 성자와 동등하게, 성령은 이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의 근원이시다. 창세기의 창조 기사는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창 1:2)라고 말한다. 즉, 독수리가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둥지에서 알을 품듯이, 하나님의 영은 창조의 때에 생명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셨다(창 1:2; 신 32:11 참고). 시편 104편은 ‘땅에는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가득하며, 바다에는 생물들이 무수하다’고 말한 후에(24,25절 참고),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30절)라고 선언한다. 이 땅의 모든 것을 구성하는 분자와 원자, 세상을 하나로 묶는 중력은 모두 주권적으로 창조하고 보존하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작용하게 된다.
다음으로, 창조뿐만 아니라 구속을 성취하는 데도 하나님의 영은 주요한 역할을 하신다. 그분의 놀랍고도 신비로운 사역이 없었더라면,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성령은 동정녀의 태 안에 예수님을 잉태시키셨다. 누가복음 1장 35절은 성령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그를 덮었다고 기록한다. 성령이 없었더라면, 성육신한 구세주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창조와 구속에 나타난 성령의 객관적인 사역에 주의 깊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위대한 하나님이신 성령, 곧 삼위일체 하나님의 전능한 위격이신 그분이 누구이며 무슨 일을 행하시는지를 제대로 인식하고 인정해야 한다. 그분은 구속사가 전개되는 과정에 하나님께서 뒤늦게 생각하신 유약하고도 실체 없는 존재가 아니다. 창조부터 완성에 이르기까지, 성령은 끊임없이 기사를 행하는 위대하신 분이다.
신자의 내부에서 행하시는 성령의 경이로운 사역
그와 마찬가지로, 구속받은 자의 삶에서 나타나는 성령의 사역의 범위도 그 모든 충만함 가운데 올바로 인식되어야 한다. 주님의 은총을 입은 택함받은 자들 가운데서 성령께서 행하시는 일곱 가지 사역에 주목하라.
첫째, 성령은 거듭나게 하신다. 예수님의 명확한 말씀이 얼마나 자주 오해를 받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너희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You must be born again)’는 말씀을 ‘너희가 스스로(를) 다시 태어나야 한다(You must born yourself again)’로 바꾸어 읽는다. 이런 오해는 문법적으로 성립되지 않을 뿐 아니라(자동사[born]는 목적어[yourself]를 가질 수 없다), 심오한 영적 진리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우리가 이 타락한 세상에 태어나는 데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듯이, 하나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속의 세계로 들어가는 데도 우리는 단연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는 “성령으로”(요 3:5,8) 태어나야만 한다. 우리는 우리를 거듭나게 하도록 하나님의 성령을 강제할 수 없다. 바람이 임의로 부는 것처럼, 사람을 ‘위로부터’(3절 난외주 참고) 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성령의 의지이다. 참으로 성령의 거듭나게 하심으로 우리의 의지가 새로워지면, 우리는 갓 태어난 아기가 울음을 터뜨리듯 구원받기 위해 하나님께 울부짖는 편을 선택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 하나님께 마땅히 받으셔야 할 영광을 돌려 드리라. 구원을 향한 부르짖음은 새로 태어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지, 결코 거듭남의 원인이 될 수 없다. 성령은 전인이 새로워지는 이 위대한 사역을 친히 주권적으로 행하신다.
둘째, 성령은 확신을 주신다. 우리는 거듭난 후에도 계속 죄를 짓지 않는가?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어떻게 그토록 확신할 수 있을까?
성령께서 확신을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토록 담대할 수 있다. 가장 놀라운 이 사역 가운데, 성령은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롬 8:16)하신다. 성령의 끊임없는 역사 외에는 그 어느 것도 죄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구원을 확신하게 할 수 없다. 과연 하나님의 성령께서 친히 증언하신 것을 어느 누가 반박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영 안에 있는 그분의 인격적인 증언으로 인해, 우리는 평안을 누릴 수 있다. 그분의 증언이 있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이것을 확신하라.
셋째, 성령은 인치신다. 오늘날 우리는 일상적인 편지를 풀로 붙여 봉인한다. 이것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으며, 쉽게 무시되거나 훼손될 수 있다. 그러나 옛날에는 녹인 밀랍에 왕의 공식적인 도장을 찍어 봉인했으며, 이런 왕의 인장을 훼손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이와 같이 성령은 왕의 위엄으로 모든 신자가 구속의 모든 복을 소유하도록 인치신다. 이것은 결코 깨뜨릴 수 없는 만왕의 왕의 인장이다. 성령은 우리가 받은 구속을 현재 확신하게 하는 것을 넘어, 그 구원을 영구히 소유하도록 우리를 인치신다. 다시 말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 성령이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엡 1:13,14)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우리를 지키신다. 이것은 확정된 사실이다. 그분의 인치심은 취소될 수 없다. 이 모든 것이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14절)이다.
넷째, 성령은 거룩하게 하신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거룩하게 하시는 사역을 설명하기 위해 독특한 비교와 대조를 사용한다. “술 취하지 말라……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 사람이 술에 취하면 어떻게 될까? 술이라는 ‘영’의 알코올 성분이 혈류로 들어가 사람의 모든 부분에 스며든다. 술에 취한 사람은 평소와 다르게 걷고, 다르게 말하며, 다르게 보고 듣고 행동한다. 성령으로 ‘충만한’ 모든 사람의 경험도 그와 같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곧 성령의 거룩하심이 그 사람의 모든 부분에 스며든다. 그는 그 전에는 가지 않았을 예배와 찬양의 자리, 기도의 자리로 기쁘게 나아간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담대하게 말한다. 또한 그는 부당함에 사랑으로 응답한다.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는 이 경험은 단 한 번 일어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 구절의 문자적인 의미는 ‘계속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것이다. 바울은, 성령 하나님의 지속적인 영향력이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영역에 끊임없이, 계속해서, 점점 더 널리 스며들게 하라고 권면한다. 이것은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경험이다.
다섯째, 성령은 모든 신자의 삶에서 열매를 맺게 하신다. 성령께서 맺게 하시는 열매는 참으로 놀랍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구체적으로 나열되어 있다. 그 열매들 중 처음 세 가지, ‘사랑, 희락, 화평’만으로도 세상은 기꺼이 모든 것을 내놓을 것이다. 그러나 오직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성령만이 죄인의 마음속에 참된 사랑과 희락과 화평을 불어넣으실 수 있다는 사실을, 세상은 거의 알지 못한다. 그분은 어느 누구도, 그 무엇도 할 수 없을 때 그 일을 하실 수 있으며, 반드시 그렇게 하실 것이다.
여섯째, 성령은 은사를 나누어 주신다. 모든 신자가 모든 은사를 다 받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모든 신자는 다른 이들을 섬기기 위해 일부 은사를 받는다(고전 12:7-11 참고). 어떤 사람들은 ‘방언’의 은사가 나타나지 않으면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바울은, 모든 신자가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의 한 몸이 되었으나, 모두가 방언의 은사를 받은 것은 아니라고 매우 분명히 말한다(고전 12:13,29,30 참고). 사도 시대를 지나는 동안, 하나님은 방언과 예언 같은 계시적 은사들을 주셨다. 이것은 모든 세대에 걸쳐 교회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무오한 지침을 확립하고, 계시된 진리의 견고한 기초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엡 2:19,20 참고). 이 은사들은 견고하고도 흔들리지 않는 계시된 진리 위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세대마다 이런 기초를 다시 놓을 필요는 없으므로, 사도 시대 이후로는 새로운 계시와 관련된 이런 특정 은사들이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성령은 그리스도의 몸 된 모든 지체에게 다른 이들을 섬기기 위한 영적 능력을 주신다.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거나 가르치는 은사가 주어진다(엡 4:11 참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권면하는 은사가 주어지고, 또 다른 이들에게는 다스리는 은사가 주어지기도 한다(롬 12:8 참고). 우리의 삶에서 영적 은사를 최대한 활용할 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가장 큰 성취감을 얻는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이 될 때, 우리는 가장 충만한 복을 받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런 가장 만족스러운 경험은 오직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사가 삶에서 나타날 때만 누릴 수 있다.
일곱째, 성령은 전 세계 가운데 증인이 되도록 능력을 주신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라고 약속하셨다.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신 이후로, 세상을 향해 증언하게 하시는 그분의 능력이 줄곧 함께해 왔다. 이천 년 동안 기독교 복음은 모든 대륙과 나라로 끊임없이 전파되고 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삶에 임하시면, 우리는 기도하고 증언하며 우리의 것을 바치고 직접 찾아감으로써, 우리 지역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나아가는 증인이 될 수 있는 권능을 받는다.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온 세상에 증언하는 도구가 되는 것은 얼마나 큰 특권인지 모른다.실로 성령은 우리 밖에서도, 안에서도 위대한 일을 행하신다. 그분의 강력한 행하심을 올바르게 인식하면, 순종하고 찬양하는 마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성령은 신자들이 특별하게 모일 때 즉흥적으로 발언하도록 이끄시는 것을 넘어 훨씬 큰 일을 행하신다. 창조와 구속, 완성은 모두 성령의 놀라운 사역에 속한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