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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1월 28일역사 가운데 나타난 성령의 사역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성령”의 첫 번째 글입니다.
8세기에 작곡된 ‘오소서 창조주 성령이여(Veni Creator Spiritus)’는 로마 성무일도의 저녁 기도에 포함된 찬송으로, 성령을 찬미한다. 존 드라이든(John Dryden)은 이 찬송의 첫 구절을 훌륭하게 번역한다. “창조주 성령이여, 당신은 세상의 기초가 처음 놓이도록 도우셨나이다.”
성경의 두 번째 절에는 창조주로서 행하시는 성령의 활동이 나타난다. 창세기의 저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피조 세계를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 속에 있는 것으로 묘사하면서,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창 1:2)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와 대칭적으로 인간 창조를 선언함으로써 성경의 첫 장을 갈무리한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26절). 여기서 ‘우리’라는 대명사는 종종 성령을 포함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겨진다. 성령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행하셨다. 세상을 창조하는 것뿐만 아니라, 특히 인간을 창조하는 데서도 성령은 특별하게 드러나신다.
오순절
새 언약의 시대가 동틀 무렵, 오순절은 창조와 유사한 사역, 더 정확히 말하면 재창조 사역을 분명히 보여 준다. 성령은 타락한 인류를, 옛 언약 아래서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정도로 변화시키신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을 향해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요 20:22)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오순절의 의의를 설명하신다. 이 행동은 창세기의 첫머리를 떠올리게 한다. 곧 하나님의 숨결인 성령은 “생기”(창 2:7; 요 20:22 참고)를 부여하는 분이시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셨듯이,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은 자기 백성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으셨다. 바울의 표현을 빌리자면, 예수님은 성령을 보내심으로써 “살려 주는 영”(고전 15:45)이 되셨다. 오순절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창조와 만물의 궁극적인 재창조 사이에 있는 오순절은, “말세”(고전 10:11)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는 중요한 시점이다. 성령은 제자들에게 구속과 완성에서 예수님의 역할을 명확히 깨닫게 하여, 예수님을 전하는 데 비범한 담대함을 불어넣어 주셨다. 성령이 부어질 때 함께 나타난 방언의 은사는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자신의 언어로 복음을 알아듣게 해 주었다. 한순간에 바벨의 저주가 뒤집혔다(창 11:7-9 참고). 성령으로 능력을 입은 제자들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루시리라 확신하면서, 세상 민족들에게 화목의 메시지를 전할 동기와 능력을 얻게 되었다(눅 24:48; 행 1:4 참고). 한편 이방인에게 복으로 임한 이 사건은, 자신들의 메시아를 거부한 이스라엘에게는 도리어 심판으로 드러났다. 그들의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선포되는 복음은 이사야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언약적 위협을 확증했다. “그러므로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가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사 28:11). 세상 민족들에게 복이 된 사건이,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롬 11:25) 이스라엘을 완악하게 만드는 도구가 되었다.
오순절을 이렇게 해석하면, 이 사건이 반복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역사 가운데 놀랍게 나타난 부흥을 성령의 수많은 ‘부어 주심’으로 기록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중 어느 것도 오순절이 반복된 것은 아니다. 오순절은 옛 언약과 새 언약의 경륜을 가르는 중대한 전환점이다. 예표와 그림자의 시대가 지나고, 성취와 실체의 시대가 도래했다. 오순절은 (배타적이지는 않을지라도) 주로 혈통적 이스라엘에 초점을 맞추었던 구속의 경륜이 종결되고, 대신 구약에서 강하게 암시되었으나 결코 실현되지 않았던, 모든 민족으로 이루어진 언약 공동체가 움튼 것을 알렸다. 오순절에 동반된 기적적인 현상 자체가 그 순간의 유일성을 시사한다. 그것은 지속적인 직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터로서 사도들이 등장한 것을 알렸다(엡 2:20 참고).
성경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나고, 그분이 내주하시며 그분을 통해 거룩하게 되는 성도로서 새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간다. 이 순례의 길에 우리에게는 여전히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고 성령께서 바로 그 지혜를 우리에게 주신다. 성령은 하늘을 향해 나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확실한 안내자로 주어지리라 보증된 분이시다. 베드로는 구약을 언급하면서, 그것의 어떤 부분도 사람이 고안한 것이 아니며,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벧후 1:21)이라고 선언한다. 또한 바울도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딤후 3:16)이라고 말한다. 성령께서 어떻게 이 일을 이루셨는지는 여전히 신비로 남아 있다. 성경 전반에는 인간 저자의 흔적이 분명히 나타난다. 동시에 성경의 모든 부분은, 일점일획까지도 하나님께서 숨을 내쉬심으로 말미암은 결과물이다(마 5:18 참고). 성령은 성경을 기록하는 이들에게 지혜와 진리를 드러내고 숨을 불어넣는 두 과정을 통해 성경을 무오하게 영감하는 주권을 행사하신다. 성경을 완성해 가시는 성령의 사역에 응답하여, 교회는 성경을 정경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보존하고, 번역하는 세 가지 과정을 수행한다.
성경은 성령의 규범이자 지침으로, 그리스도인의 거룩함과 최종적 구속을 위해서는 성경이 필요하다. 성령은 기록된 말씀을 조명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명확히 드러내신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현재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벧후 3:13) 바라보고 있다. 네덜란드 신학자인 게할더스 보스(Geerhardus Vos)가 지적한 대로, 영화의 상태에서 성령은 “부활 생명의 영원한 기초”가 되실 것이다. 성부를 섬기고 성자에게 영광을 돌리신 성령은, 그때 성도들의 영원한 생명을 붙드실 것이다.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실 그날까지(고전 15:28 참고), 우리는 장애물과 역경이 가득한 땅을 통과하며, 세상과 육신과 마귀라는 세 가지 적과 맞선다. 그때 우리 마음속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인으로 일하시는 성령께서 확실한 승리를 보증하신다. 그분은 아담의 타락을 통해 세상에 들어온 속박과 좌절이 뒤집힐 것을 보증하신다.
새로운 창조
성경의 다른 한 끝인 요한계시록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일곱 영”(계 5:6; 1:4 참고)을 묘사한다. 이 영은 하나님의 목적을 수행하는 내재적 존재로서 성령을 상징한다. 혼돈했던 피조 세계를 살피며 그 위를 운행하시던 성령은 이제 온 우주를 감싸 안고 새 창조를 이루심으로써, 만물이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을 따라 형성되도록 확실히 이끄신다.
신적 예술가이신 성령은 에덴뿐 아니라 피조 세계 전체를 “심히 좋았더라”(창 1:31)라고 할 만큼 아름답게 이끌어 가신다. 출애굽기 31장 3절에 나타나는 모세의 기록에 주목하라. 그는 성막(구속받은 백성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함)을 설계할 때, 그것을 건축하는 브살렐과 오홀리압이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졌다고 말한다. 모세는 그들이 아름다움과 질서에 관심을 두는 것을 흡족해한 것 같다. 성막에는 분명 미적 즐거움이 있었고, 이는 성령의 설계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출 35:30-35 참고). 마찬가지로, 모든 예술적 성취의 배후에는 성령이 계신다. 존 칼빈은 이를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탁월한 모든 것에 관한 지식은 하나님의 영을 통해 우리에게로 전달된다.”
성령께서 바라보시는 목적지는 영광, 곧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이루지 못한 영광이다. 성령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은 성령의 사역을 묘사할 때, 장차 그 영광이 회복되는 것을 마음속에 그렸다.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
그때 정의가 광야에 거하며
공의가 아름다운 밭에 거하리니,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사 32:15-17).
태초에 창조의 수면 위를 운행하셨던 하나님의 성령은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통해 말씀하셨으며, 또 다른 보혜사(위로자, 지지자, 준비자, 상담자)를 보내시겠다는 그리스도의 약속을 확증하기 위해 오순절에 강림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위격적 대리자인 성령을 통해 제자들을 향한 사역을 계속하신다. 성령의 사역은 언제나 그리스도께 주목하게 만든다. 예수님은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요 16:14)라고 말씀하셨다.
처음부터 끝까지, 성령의 목표는 하나님의 사역 가운데 영광이 온전히 드러나는 새 창조를 성취하는 것이다.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의 찬송시는 주로 성령의 사역을 노래한다.
“그러므로 새 창조를 완성하소서.
우리를 순결하고 흠 없게 하소서.
주의 위대한 구원을 보게 하시고,
그 안에서 온전히 회복시키소서.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화되어,
천국에서 우리의 자리에 이를 때까지,
주의 보좌 앞에 면류관을 벗어 드릴 때까지,
오로지 감격과 사랑과 찬양에 빠져들게 하소서.”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