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느냐?
2025년 08월 10일
현 시대를 위한 모범
2025년 08월 10일예루살렘 회의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사도들의 행적”의 여덟 번째 글입니다.
사도행전은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감당한 사역을 통해 복음의 확장이 이루어진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사도행전은 갈등 없는 복음의 확장을 전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도행전 15장에 나오는 예루살렘 회의에 관한 이야기는 초대 교회가 직면한 갈등 이야기를 상세히 전하고 있으며, 하나님이 교회의 권위 있는 지도자들로 하여금 결국은 논쟁과 토의 과정을 거쳐 복음의 확장에 큰 도움을 주는 결정을 하도록 어떻게 인도하셨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친다.
논쟁
예루살렘 회의가 개최된 것은 구원의 본질에 관한 심각한 논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 논쟁은 유대에서 내려온 어떤 자격 없는 선생들(행 15:24)이 안디옥에 새로 세워진 이방인 교회에서 할례와 모세 율법에 대한 순종이 구원에 필수적이라고 가르쳤을 때 시작되었다(1, 5절). 바울과 바나바는 이런 가르침이 복음의 진리와 모순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즉각 반대했다. 그 결과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났다”고 누가는 우리에게 알려준다(2절). 안디옥 교회는 문제의 비중과 논란의 크기를 감안할 때 바울과 바나바를 예루살렘으로 보내 사도와 장로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다.
회의
도움을 바라는 안디옥 교회의 요청에 반응하여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였다”(6절). 여기서 “이 일”에 관해 그들이 의논했던 방법과 관련하여 세 가지를 질문해보면 예루살렘 회의에 대한 누가의 설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질문은 다음과 같다. 누가 결정하는가? 어떻게 결정하는가? 무엇을 결정하는가?
누가 결정하는가?
첫째, 이 일을 결정하는 데 누가 책임을 지는지 주목해 보라. “사도와 장로들이” 책임을 진다. 누가는 (5회나) 반복해서 예루살렘 회의에서 사도와 장로들이 맡은 역할에 우리의 주의를 집중시킨다(2, 4, 6, 22~23절). 물론 사도들이 중요한 역할을 맡은 것은 그리 주목할 만한 일이 아니다. 원래부터 사도들은 예루살렘 교회를 인도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었다(행 2:42~43, 4:33, 35, 37, 5:29, 6:1~6, 8:1, 14, 9:27, 11:1). 오히려 주목할 만한 일은 사도행전 11:30에서 처음 언급된 집단인 장로들의 역할에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장로들의 역할이 갖는 중요성은 무엇인가? 누가는 지도권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교회를 세우는 사도들의 근본적인 역할이 끝났기 때문에(행 15장 이후에 전개되는 누가의 내러티브에서 베드로가 사라지고 없다는 점을 유념하라.) 초대 교회의 지도권이 장로들의 손으로 넘어가는 과정 속에 있다(행 20:17~38). 사도들과 함께 장로들도 이제 당면 문제를 결정하는 데 있어 책임을 짊어진다.
어떻게 결정하는가?
둘째, 사도들과 장로들이 어떻게 이 일을 결정하는지 주목해 보라. 하나님의 말씀 속에 계시된 대로 하나님의 펼쳐진 구원 계획에 관해 돌아보는 것으로 이 일을 처리한다.
베드로가 주장하는 것처럼 이 일에 관한 예루살렘 교회의 결정은 하나님이 자신의 구원 계획을 성취하기 위하여 행하신 일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베드로는 예루살렘 회의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입을 통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자신을 택하신 것과 하나님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듣고 믿도록 하신 것(행 15:7) 그리고 하나님이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호의와 복의 확실한 표지로서 “성령을 주심으로써”(8절) 그들의 회심의 진정성을 증명하신 것을 상기시킨다. 따라서 베드로에 따르면 구원을 얻는 데 (할례와 율법 준수 같은) 추가 조건을 덧붙이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으로(10절), 하나님이 이방인을 구원하실 때 행하신 일에서 벗어난다.
나아가 앞 문단에서 암시하는 것처럼, 예루살렘 회의에서 이방인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다룰 때 누가 하나님을 대신해서 말할 권세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하나님은 직접 자신의 권위 있는 대변자들, 즉 사도와 선지자들을 통해 자신의 계획을 계시하셨다. 하나님의 사도적인 말씀은 예루살렘 회의에서 베드로의 음성을 통해 주어진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말했다(14절). 게다가 하나님의 예언적인 말씀은 예루살렘 회의에서 발언할 때 아모스 9:11~12를 인용하고 다른 많은 구약 본문들도 인용하는 야고보의 음성을 통해 주어진다(행 15:13~21을 보라). 야고보가 주장하는 것처럼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목적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예언적인 말씀과 사도적인 말씀은 서로 “일치한다”(15절).
따라서 예루살렘 회의에서 권위적인 결정을 내리는 자는 교회 지도자들이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결정을 “모든 종교적 논쟁”과 “모든 교회 회의 판결”을 좌우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최고권위에 기초하여 판단한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 10항).
무엇을 결정하는가?
셋째, 사도들과 장로들이 예루살렘 회의에서 무엇을 결정하는가를 주목해 보라. 이 일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다음, 예루살렘 회의가 취한 조치는 명확했다. 옛날 격언과 같다. “성경이 말씀하니 일이 결정된다”(sacra scriptura locuta, res decisa est). 하나님이 모세 율법에 대한 순종과 상관없이 자신의 은혜로 이방인을 구원하셨기 때문에, 예루살렘 회의는 할례와 율법 준수를 구원의 필수 조건으로 결정하여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혼란시킬 권한이 없었다(행 15:19, 24). 대신 예루살렘 회의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기로 결정했다(20절). 그렇게 한 이유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었기” 때문이다(21절).
그런데 여기서 당혹스러운 문제가 등장한다. 우리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모세 율법을 준수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허용하는(19절) 이 결정을 최소한 모세 율법의 일부 요구(어쨌든 레위기 17~18장에서 이끌어내는 행 15:20의 네 가지 금지 항목)를 준수할 의무가 있다고 보는 결정과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한 가지 답변을 신약학자인 리처드 보컴이 제시한다. 보컴에 따르면 레위기 17~18장에서 이끌어낸 이 네 가지 금지 항목은 특별히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살지만” 반드시 완전한 유대교 개종자(모세 율법 전체를 준수할 의무가 있는 할례 받은 이방인들)는 아닌 이방인들을 위하여 마련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야고보는 모세 율법을 행해야 할 의무가 없는 이방인들이 유대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 지켜야 할 지침을 모세 율법에서 찾아내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 추론이 정확하다면,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은 복음의 본질에 관해 그리고 복음이 제공하는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에 관해 깊이 있는 신학적 관점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예루살렘 회의는 이방인이 선행을 기초로 해서가 아니라 오직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인정하므로(엡 2:8~9), 이방인에게 모세 율법의 짐을 구원의 필수 조건으로 부여하는 것을 금한다. 다른 한편으로 예루살렘 회의는 이방인도 선한 일을 위하여 구원받는다는 것을 인정하므로(엡 2:10),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의 자유를 “각 성에서” 그들과 함께 사는 유대인 이웃을 섬길 기회로 사용할 것을 요청한다(행 15:21).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사도행전 15:20에서 금지된 일들을 삼감으로써 유대인 이웃과의 불필요한 충돌을 피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에게 “몇 사람을 인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고전 9:19~23을 보라).
따라서 예루살렘 회의는 율법과 복음의 관계와 관련하여 두 가지 중대한 오류를 피한다. 먼저 예루살렘 회의는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구원의 필수 조건으로 만드는 율법주의를 피한다. 그리고 다음에는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 구원의 필수 결과임을 부인하는 율법폐기주의를 피한다.
사도 규례
사도행전 15:22~29에서 보내진 편지, 소위 “사도 규례”(Apostolic Decree)는 예루살렘 회의가 내린 결정을 요약하고 있다. 이 규례는 권위 있는 교회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구원 목적에 따라 그리고 최고 권위인 하나님의 말씀 아래 발한 것이므로, 예루살렘 밖에 있는 교회들에게 결정적인—사실은 교의적인— 권위를 갖고 있었다(행 16:4를 보라. 거기서 “규례”는 문자적으로 ‘도그마타’[헬라어]를 가리킨다). 안디옥 교회의 수신자에게 편지가 전해졌을 때 이 규례는 그들에게 기쁨, 위로, 힘, 평안을 주었다(행 15:31~33). 궁극적으로 이 규례는 안디옥을 넘어 다른 이방인 교회들에게도 전해졌다. 사도행전 16:5는 그 결과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행 16:5)
결론
거짓 가르침은 교회를 “괴롭게 하고” “혼란하게 한다”(행 15:24). 사도행전 15장은 거짓 가르침이 일으킨 괴롭힘이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때 교회가 의지할 수 있는 한 가지 사례를 보여준다. 교회 역사 전체에 걸쳐 교회는 많은 경우에 있어 사도행전 15장의 사례를 따랐다. 이런 사례로는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에베소, 칼케돈 등의 교회 회의뿐만 아니라 웨스트민스터 총회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교회가 예루살렘 회의의 사례를 따라 개최한 교회 회의는 교회의 평안과 순결 그리고 복음의 확장을 촉진시켜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리도록 하나님이 정하신 수단으로 확인되었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