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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경외하라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히 12:28,29). 여기서 “경건함”으로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로 ‘율라베이아(eulabeia)’이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느끼는 경건한 두려움’을 의미하며,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두려움을 묘사할 때 사용된다. 히브리서 기자는 새 언약의 신자인 우리도 하나님께 예배할 때 이와 같은 경건함을 뚜렷이 나타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히브리서 5장 7절에서 이 단어를 한 번 더 사용한다. 여기서 이 단어가 등장하는 것은 참으로 놀랍다. 히브리서 기자가 이 단어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행동을 묘사하기 때문이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율라베이아]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시다. 그분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계셨으며, 그분과 아버지는 하나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그런데도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는 동안 아버지께 ‘경건하게’ 나아가셨다고 말한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교제하시는 모든 모습 가운데서 하나님을 향한 그분의 경건함이 분명하게 나타났다. 그분은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으셨다. 이 사실은 주 예수님께서 어떤 태도로 사셨는지를 깊이 깨닫게 해 준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장엄하심을 바라보면서 ‘코람 데오(coram Deo)’, 곧 하나님 앞에서 사셨다. 그분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그 시선을 결코 놓치지 않으셨다. 그것은 결코 흐려지지 않았고, 그 어떤 장애물도 그것을 가리지 못했다.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도 그것을 방해하지 못했다. 마귀도 그것을 약화시키지 못했다. 하나님을 향한 그 시선이 예수님을 온전히 사로잡고 있었다.

주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이렇게 나아가셨다면, 우리 역시 그와 같은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히 12:28 참고). “두려움”은 하나님의 경외로우심 앞에서 떠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두렵다’는 말을 너무나 자주 사용하지만, 참으로 그 말이 합당한 대상은 가장 두려운 분, 곧 하나님뿐이시다.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히 12:29)이시기 때문이다. 설교에서나 제자훈련 모임에서 하나님을 “소멸하는 불”로 묘사하는 말을 마지막으로 들었던 때가 언제인가? 우리는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께만 초점을 맞추는 데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하나님의 초월성과 거룩하심을 잊어버리기 쉽다. 하나님은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시는 분이다. 그분은 거룩하고, 전능하며, 영원하고, 의로우며, 모든 권능을 지니신 분이다. 그분은 “소멸하는 불”이시다.

어쩌면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큰 산인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출애굽기 24장 12,13절은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네가 그들을 가르치도록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 모세가 그의 부하 여호수아와 함께 일어나 모세가 하나님의 산으로 올라가며.”

나머지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 산에 올라갈 수 없었다. 그 산의 사방에는 사실상 ‘진입 금지’ 표지판과 같은 경계선이 쳐져 있었다. 장로들도 어느 지점까지는 올라갈 수 있었지만, 산 위로 더 올라가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누구든지 이 경계선을 넘어서면, 하나님께 죽임을 당하게 된다.

본문은 이렇게 말한다. “모세가 산에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리고, 여호와의 영광[카보드, kabod]이 시내산 위에 머무르고”(출 24:15,16).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무겁고 장엄한 임재가 그 산 위에 머물렀다. 그 영광은 너무나 초월적이고도 거룩해서, 그것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가리더니 일곱째 날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16절). 본문은 이어서 말한다.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같이 보였고”(17절).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모습은 소멸하는 불, 곧 산꼭대기를 태우는 불과 같았다. 놀랍게도 모세는 그 불의 구름 속으로 들어가 사십 일 사십 야를 머물렀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가 바로 그 하나님을 떠올리기를 바란다. 곧 거룩하신 하나님과 마주한 이 두려운 만남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우리의 크신 대제사장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로 나아가되, 여전히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그분께 나아간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그랜트 캐슬베리

그랜트 캐슬베리

그랜트 캐슬베리(Grant R. Castleberry) 목사는 노스캐롤라이나주 롤리에 있는 캐피털 커뮤니티 교회(Capital Community Church)의 담임목사이며, 켄터키주 루이빌에 있는 서던 뱁티스트 신학교(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교회사 및 조직신학으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