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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1월 07일왜 기도는 은혜의 방편인가?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기독교 제자도의 기초”의 첫 번째 글입니다.
왜 기도는 은혜의 방편인가? 이것은 흥미로운 질문이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단순히 기도가 은혜의 방편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속의 유익을 전달하는 데 쓰시는 외적이고도 통상적인 방편들은 그분의 규례인데, 특히 말씀과 성례와 기도이다. 이 모든 것이 택함받은 사람들에게 구원을 위하여 효력을 가진다”(88문답). 왜 그럴까? 이 질문에 바르게 답하려면, ‘은혜의 방편’이 무엇인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신학자들은 은혜의 방편(media gratia)을 ‘하나님께서 자신의 은혜가 우리 마음에 역사하도록 사용하시는 통로’로 정의한다. 지역 저수지의 물이 수도관을 통해 집 안의 수도꼭지로 흘러 들어가듯이, 하나님은 요리문답에서 말하는 대로 “외적이고도 통상적인 방편들”을 통해 구원의 복을 베푸신다. 우리가 요리문답이 먼저 언급하는 두 방편인 하나님의 말씀과 성례를 살펴보면, 아마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사용하시는 방식을 가장 분명히 보고, 우리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은 말씀을 선포하심으로써 죄인들에게 구원을 베푸신다. 성령께서 그들에게 말씀을 듣고 믿도록 믿음을 주시기 때문이다(롬 10:17 참고). 이어서 주님은 말씀을 사용해 자기 백성을 거룩하게 하신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 20:32).
이와 마찬가지로, 세례와 주의 만찬(성찬)이라는 성례도 하나님의 백성이 구원의 유익을 온전히 누리도록 주께서 사용하시는 방편이다. 분명히 말하건대, 우리는 성례의 행위에 참여함으로써 구원을 받는다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주님은 이미 주어진 믿음과 칭의로 말미암은 구원의 모든 유익을, 성례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 주신다. 우리에게 베풀어지는 세례는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았다는 표와 인이다(행 2:38 참고). 또한 주의 만찬은 “축복의 잔”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하게 하며, “우리가 떼는 떡”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게 한다(고전 10:16). 이런 성례를 통해 우리는 거룩하게 하고 견고하게 하는 은혜를 경험한다.
이제 기도를 살펴보자. 성경은 기도 역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복 주시는 통로임을 보여 준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여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시 86:6).
시편 기자는 이 단순하고도 심오한 마음의 부르짖음에서, 앞서 언급한 요리문답과 마찬가지로, 기도를 은혜의 방편으로 전제한다. 그렇다면 다시 우리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왜 기도는 은혜의 방편인가?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는 분이며, 우리가 기도할 때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시는 분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그분이 앉아 계신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간다(히 4:15,16 참고). 바울은 에베소 교회가 하나님의 한량없는 사랑을 깨닫도록 능력으로 강건해지기를 기도했다(엡 3:14–19 참고). 기도는 성도들을 영적 공동체로 자라게 한다(행 2:42 참고). 또한 우리는 불신자들을 위해 기도할 때,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구원의 은혜 베푸시기를 간구한다(롬 10:1 참고).
기도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다. 우리는 설교를 듣거나 놀라운 진리의 말씀을 읽음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해진다. 그리고 우리는 기도함으로써, 성령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다시금 주님께로 돌려 드린다. 이런 기도야말로 은혜를 경험하게 하는 참으로 놀라운 방편이 아닌가!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