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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5월 04일성령님에 대한 다섯 가지 진리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 16:7)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다시 설명하는 것은 시간 낭비일 것 같아 이 구절에 대한 배경을 간략하게 설명하려 한다. 여기서 “보혜사”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파라클레토스(parakletos)인데 이 단어는 원래 법률 용어로 변호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더 넓은 맥락에서는 위로, 보호, 권고, 인도하심을 말한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에서 성령님을 보혜사로 말씀하셨고, “진리의 영”으로 소개하셨다(요 14:17; 16:13).
이 보혜사의 정체성에 대해 조금 윤색하여 간단히 말해보려 한다.
1. 성령님은 유일무이한 인격이시다.
첫째, 성령님은 어떤 힘이나 영향력이 아니라 유일무이한 인격이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령님을 가리킬 때는 “그것(it)”이 아니라 “그분(he)”으로 언급한다. 이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교회 회중을 포함한 사람들의 대화를 주의 깊게 들어볼 때, 성령님을 중성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것을 종종 듣게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리 자신도 그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다. 혹시나 당신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려고 할 땐 즉시 입을 다물어야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번째 위격이신 성령 하나님은 인격적이신 분임을 기억해야 한다. 인격체이신 성령은 근심하시고(엡 4:30), 성령의 뜻을 행사하는 면에서 소멸할 수 있으며(살전 5:19), 성령을 거스를 수도 있다(행 7:51).
2. 성령님은 성자와 성부와 하나이시다.
둘째, 성령님은 성부와 성자와 하나이시다. 신학적 용어로 함께 동등(co-equal)하시며, 함께 영원(co-eternal)하시다고 표현한다. 예수님의 다락방 강화 전체를 읽어보면 성령을 보내신 분은 성부와 성자이시다(요 14:16; 16:7). 말하자면 성령님은 성부와 성자를 위해 오셨고, 일하신다. 따라서 성경에서 보여지는 성령님의 활동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서 분리되거나 아버지 하나님의 영원한 뜻과 분리된 적이 없다. 성령님을 성경에서 분리하거나 신비적으로 보려는 모든 노력은, 우리를 온갖 종류의 샛길로 빠지게 하여 결국 막다른 길로 인도할 것이다.
3. 성령님은 창조주이시다.
셋째, 성령님은 창조주이시다. 성경 제일 처음에 나오는 창조 기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창 1:1~2)”. 여기서 “영”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루아흐(ruach)는 “호흡”이란 의미도 있다. 루아흐 엘로힘(하나님의 영) “전능자의 숨결”은 곧 창조주이시다. 여기서 보여주는 것은 성령님의 비물질성이 아니라 성령님의 능력과 에너지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에너지가 피조물에 불어넣어져 세상이 존재하게 되었고, 우주에 별이 생긴 것이다. 이사야 40장 26절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는 질문의 답은 창세기 1장 2절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시는, 저항할 수 없는 힘이 성령님이시다.
이와 관련하여, 구약학 학자들은 구약 성경에서 성령 하나님의 구별된 인격을 발견할 수 있는가를 질문한다. 다시 말해 구약 성경만을 가지고 성령님의 위격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답은 창세기 1장 2절 말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후에 계시된 모든 것에 비추어 볼 때 삼위일체 성령의 위격에 대해 분명히 구별하여 언급하고 있다.
싱클레어 퍼거슨의 저서 『성령(The Holy Spirit)』에서는 우리가 창세기 1장 2절에 있는 하나님의 영을 인식한다면 창세기 1장 26절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를 이해하게 된다고 말한다. 퍼거슨은 이것이 창세기 1장 1~2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영에 대한 분명한 언급이라고 말한다.
이 문제는 성경을 거꾸로 읽어 나가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성경을 뒤에서부터 앞으로 읽어 나간다면 어거스틴이 말한 “신약은 구약에 감추어져 있고, 구약은 신약으로 계시된다”는 고전적 해석 원리의 진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성경의 앞 부분에 있는 가르침과 사건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4. 성령님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다.
넷째, 성령님은 창조주이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 피조물을 만드신다. 바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것이다. 요한복음 3장은 예수님과 니고데모가 대화하는 장면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물론 이 진리는 성경의 나머지 부분에도 해당된다.
5. 성령님은 성경의 저자이시다.
다섯째, 성령님은 성경의 저자이시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 표현은 헬라어 테오프뉴스토스(theopneustos)를 번역한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숨결”이라는 뜻이다. 성령님은 에너지를 불어넣어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구속 역사에서도 성경의 기록을 우리에게 주시는 신성한 사역을 보게 된다. 영감 교리는 전적으로 성령 하나님의 사역에 대한 것이다. 베드로는 이를 단언하며 이렇게 기록했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 1:21) 성경의 저자들은 자신의 발상을 기록한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로봇처럼 받아 적은 것도 아니다. 그들은 실제 역사 속에서, 실제 유전자를 가진, 실제 사람들로서 역사적 배경과 성격에 따라 성경을 기록했다. 하지만 성경의 저자는 둘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선택하셨기 때문에 예레미야와 하나님, 둘 다 저자인 것이다. 사실 예레미야의 경우 하나님은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렘 1:9)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인격을 존중하셨고,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였다. 성경을 공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성경은 성령님의 숨결로, 성령의 감동을 받아 존재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보혜사의 정체성에 대한 설명은 무한히 늘어놓을 수 있지만 모든 것을 다 밝히기보다는 선별적으로 설명해야한다. “또 다른 보혜사”라는 것이 그분의 정체성이다. “또 다른”으로 번역된 이 단어는 헤터로스(heteros)가 아니라 알로스(allos)이다. 예수님과 다른 종류가 아닌 같은 종류의 보혜사를 약속하신 것이다. 성령님은 파라클레토스, 즉 옆에 계시는 분이다. 예수님은, 성령님이 “너희와 영원히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 14:16~17)고 말씀하셨다. 성령님의 사역은 영구적이며 인격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