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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멋진 신세계”의 다섯 번째 글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로 들려 올라가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예수님이 무엇을 가르치셨는지에 관한 증언은 이문화간(Cross-cultural) 활동이었다. 제자들은 새로운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직면했을 때, 온 세상에 증언하는 밝은 빛이 되기 위해 진리와 의를 굳게 고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오늘날은 우리가 지상 명령을 수행해야 할 장소인 세상 도처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세상은 계속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딤후 3장). 그러나 부패한 인간 본성의 이런 경향 때문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각 사회에서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찾아낸다. 예수님의 증언이 죄로 가득 차 있는 문화를 반대한다는 것은 결정적인 요청으로 남아 있다.
미국 사회는 변화가 너무 빨라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에 주어지는 급격한 압박을 의식하는 자가 거의 없다. 지난 50년 사이에 심지어는 공동체 의식도 크게 사라졌다. 그리스도인들은 단란한 가정을 이루기 위하여 근처 벌판이나 개울 옆에 아름다운 집을 짓고 살고 싶은 마음 때문에 시골 지역에 매력을 느꼈다. 하지만 직장은 때때로 이런 집에서 몇 시간을 가야 하는 곳에서 찾아야 한다. 동시에 “좋은” 교회도 일터와 다른 방향으로 한 시간 이상 가야 하는 곳에서나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종종 미리 계획을 세운 것이 예상했던 결과와 맞아떨어지지 않아서 정기적으로 교회 예배에 참석할 수 있는 신자들이 훨씬 더 줄어들고 있다. 예배에 참석하려면 성도들과 모임을 갖는 시간보다 오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더 많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들이 기도회를 없애는 이유는 실제로 많은 신자가 참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매주 2, 3회에 걸쳐 가졌던 성경 공부 시간도 지금은 1회로 축소되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설교를 덜 필요로 할 때가 아니라 더 필요로 할 때다. 그런데 자녀들은 늘 경험과 부모의 본보기를 통해 훈련받고, 교회에서는 매주 한 시간 남짓 시간을 갖는 것이 통상적이다.
어떤 이들은 CD나 아이패드 또는 온라인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설교자의 설교를 들음으로써 영적 양식을 보충할 것이다. 그들이 다른 신자들과 생각을 서로 나누는 일은 자주 블로그나 다른 얼굴 없는 컴퓨터 접촉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런 습관들이 성경이 명령하는 대로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않는”(히 10:25) 것을 대신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이런 식의 전자 교제는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맛보는 성령의 임재를 재현할 수 없다. 게다가 목회의 중요한 요소인 목양과 권면은 여전히 무시될 것이다.
교회 공동체의 이런 고립화와 증언 부재는 50년 전에는 흔한 일이 아니었다. 침실과 컴퓨터실이나 마찬가지인 집에서 증인의 삶을 사는 것은 더 어렵다. 도로를 달리면서 무수히 많은 시간을 여기저기 통근하는 데 쓰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컴퓨터를 하는데 허비할 것이다.
우리에게 스며들고 있으나 많은 이들이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또 다른 변화는 복음주의 진영 안에 엄청나게 다양한 가르침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양한 교리가 가르쳐지고 있기 때문에 종종 우리는 교리 체계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줄어들고 있는 그리스도인들 간의 연합을 원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사이에 다툼을 일으키는 가르침은 되도록 거론하지 않기를 바란다. 포용적이 되어서 교인 수를 늘리는 것은 너무나 만족스러운 일이다. 이런 자유방임적인 태도 때문에 우리는 그동안 보배같이 지켜온 참된 교리들을 너무 쉽게 잃고 말았다. 교회들은 “복음주의자들” 사이에 유행하는 새로운 풍조를 따라감으로써 증인의 지위를 상실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상과 타협함으로써 변질되고 있다.
교회들 안팎에서 끊임없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자유주의 신학이 대다수 개혁파 교회를 집어삼켜버린 것과 같이, 1875년과 1930년 사이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1950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는 “오직 성경으로, 오직 그리스도만으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를 모토로 하는 가르침이 되살아났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 이 입장을 굳게 지키고 있을까? 아니다. 이미 양보가 일어나고 있다.
그러면 미래에는 어떻게 될까? 여러분은 과연 증인이 될까? 예수님의 인격, 사역, 가르침이 얼마나 여러분에게—여러분의 교회에서— 생생할 것인가?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8-19) 때때로 교회들도 여러분의 입장을 멸시한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