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루살렘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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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사도들의 행적”의 아홉 번째 글입니다.
교회의 사명(mission)이란 교회가 할 일을 말한다. 최근에는 교회의 임무를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많은 교회들이 그 부르심에 신실하고 교회로서 감당해야 할 일들에 있어 열매 맺기를 바라는 열망을 피력하는 일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것은 좋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사명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교회 사명을 어떻게 성취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파악하기 어렵고, 종종 명확성보다는 애매성을 일으키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 애매성은 최근에 해당 주제에 관한 책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독특한 목적과 독특한 사명 선언서(mission statement)를 채택하는 교회들이 점차 증가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심지어는 교회의 거룩한 임무를 묘사하기 위하여 “선교적”이나 “성육신적”이라는 말이 새로운 은어로 사용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교회의 사명에 접근하는 데 있어 흥미로운 다양성이 나타나고 있음을 증명한다.
누가의 두 번째 책인 사도행전은 이런 다양성에 통일성을 제공하고, 이런 애매성에 명확성을 부여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그 책은 우리에게 우리의 소명(부르심)에 관해 알려주기 때문이다. 이 누가의 책에 사도행전이라는 제목이 붙은 것은 이 점에 관해 무척 시사적이다. 이 제목은 데니스 존슨이 언급한 것처럼 “누가는 자신의 묘사가 ‘좋은 옛날’에 대한 향수적인 회고가 아니라 오히려 현재를 위한 모범으로 작용하기를 바라는 의도를 갖고 있다”(『사도행전의 메시지』). 따라서 이 점에서 사도행전은 교육적이고 규범적이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일어난 일에 대하여 말해줄 뿐만 아니라 그토록 오래 전에 시작된 불길이 어떻게 오늘날까지 타오를 수 있는지도 말해주기 때문이다. 누가복음이 예수님이 시작하신 사역에 대한 설명이므로(행 1:1), 이 자매편(사도행전)은 예수님이 계속하셨고 또 계속하고 계신 사역에 대한 설명이다.
누가를 통해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이 자신의 교회를 통해 땅 끝까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심으로써(행 1:8) 자신의 사역을 계속하고 계시는 이야기를 듣는다. 사도들은 성령의 권능을 받아 담대히 예수님이 그리스도였다는 것(행 17:3) 곧 구약성경이 말한 약속된 구주였다는 것(행 10:43, 26:22, 28:23) 그리고 어쩌면 가장 핵심적으로, 죽음과 무덤이 가두어둘 수 없는 분이었다는 것(행 1:22, 2:31, 3:15, 4:2, 10, 33, 5:30, 10:40, 13:30, 33~34, 37, 17:3, 18, 31, 26:8, 23)을 선포했다. 사도행전의 주제로 등장하는 것은 교회가 선포하는 메시지의 핵심이 예수님의 부활이었다는 것이다. 이 단순한 메시지를 통해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복을 베풀고, 자신의 교회를 세우고, 그리하여 그 수가 날마다 더하게 하셨으며(행 2:47, 5:14, 6:7, 9:31, 11:24, 12:24), 그들을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셨다(행 26:18, 23).
따라서 사도들은 복음을 구현해 내는 것 이상의 사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심오하고 객관적이고 세상을 놀라게 했던 실제 사건들을 입증하는 전령과 증인이에요.(행 1:8, 2:32, 8:12, 25, 20:24, 22:15, 26:16) 사도들이 “증언한다”는 표현이 사용된 본문(4:33)에서 발견되는 것도 그들이 증언하는 것이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사실이다. 일관되게 그리고 끊임없이 사도들은 듣는 자들로 하여금 사도들 자신을 향하게 하지 않고 부활하신 왕으로 말미암아 허락된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를 향하게 했다.
물론 가이사가 아니라 예수님이 진정한 주와 왕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행 17:7), 참된 회개를 촉구하는 것(행 20:21)은 항상 위험이 따르는 문화적 사역이고, 때때로 목숨이 걸린 일이다. 돌에 맞고 체포되고 투옥되고 욕을 먹고 고난을 당하며 심각한 박해에 시달리는 것은 초대 교회 성도들이 감수해야 하는 삶의 운명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이 바라신다면(행 21:14) 기꺼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13절). 왜냐하면 그들의 생명은 자기들 자신을 위해서는 귀하거나 소중하거나 어떤 가치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행 20:24). 대신 그들의 소망은 자기들을 위하여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분에게 두어져 있었다. 그들의 소망은 마지막 날에 있을 부활에 있었다(행 23:6, 24:15). 곧 그들은 안식 후 첫째 날에 있었던 예수님의 부활로 확신하게 된 최종적 부활에 소망을 두었다(행 17:31). 그들의 메시지는 그들의 사명에 기름을 끼얹었다.
실제적으로 말하면 사도행전은, 교회가 그 메시지에 신실할 때 교회의 사명은 반드시 성공할 것(올바른 의미에서의 성공)이라는 하나님의 격려를 제공한다. 그 메시지를 증언하기 위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인지나 그 메시지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으로 여겨질지는(행 26:24)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 말이 과신(過信)처럼 들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과신이 아니라 믿을 수 있도록 듣는 자의 눈을 열고(행 26:18) 마음을 여시는(행 16:14) 하나님에 대한 믿음일 뿐이다. 이처럼 마음을 열고 눈을 여는 사역은 어떤 프로그램이나 창조적으로 고안된 방법이나 새로운 운동을 통해 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신적 능력은 기쁜 소식인 복음 메시지와 결부되어 있다(행 8:12, 35). 옛말을 사용하여 말한다면 ‘메시지가 곧 선교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본질상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관한 순전하고 온전한 복음을 전파하는 데 종사하는 모든 목사, 교회, 그리스도인에게 기쁜 소식이다.
그러나 이처럼 단순한 메시지에서 벗어나도록 유혹하는 것이 굉장히 많다. 결코 부르심 받지 않은 일을 행하고 부르심 받지 않은 메시지를 전하도록 하나님의 백성을 유혹하는 사이렌이 사방에서 울리고 있다. 종종 나는 자기들이 크게 존경하는 목사들의 방식을 모방하고 싶어 하는 젊은 설교자들을 본다. 그들의 버릇, 말, 어조, 적용이 다른 사람들과 소름끼칠 정도로 비슷하고, 필사적으로 자신이 아닌 어떤 사람이 되어보려고 기를 쓰는 인상을 준다. 이런 사람들에게 주는 나의 조언은 항상 똑같다. 당신답게 하라. 이 똑같은 경향이 교회도 위협하고 있다. 교회에 주는 나의 조언은 젊은 설교자들에게 주는 조언과 똑같다. 교회답게 메시지를 고수하라.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승리를 선포하고, 결과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온전히 맡기자.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