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받는 증인 -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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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받는 증인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교회가 형성되다: 2세기의 그리스도 행전”의 세 번째 글입니다.

로마의 총독, 루스티쿠스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로마의 신을 순종하라고 끈질기게 강요했다. 이를 거부할 시에는 아주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선사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의 교사이며, 그 당시 로마에 살았던 순교자 저스틴은 총독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기독교의 진리를 차분하면서도 확고하게 전달했다. 끝내, 총독이 저스틴과 대면하며 최후의 질문을 던졌다. “너는 천국에 가서 상급을 받을 거로 생각(suppose)하는가?” 이에 대해 저스틴이 답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다(not suppose). 그렇게 알고(know) 있으며 그것을 확신한다.”

이렇듯, 저스틴은 기독교 신앙의 진리를 확신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담대하게 진술했다. “제정신을 가진 사람은 경건을 떠나 거짓 신앙으로 넘어지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그렇게 확신에 찬 것은 아니었다.

저스틴과 유대인 수행자인 트라이포와의 대화에서 우리가 배울 점이 있다. 트라이포는 팔레스타인에 위치한 사마리아의 도시 플라비아 니폴리스에서 이교도인 부모 밑에서 성장했다. 저스틴은 스토아, 페리파토스, 피타고라스, 플라톤 학파의 교사들로부터 깊이 있게 철학을 공부했다. 그는 다른 철학보다는 플라톤 철학에서 어느정도 만족을 찾긴 했으나 그가 찾고자 하는 진리의 확신은 얻지 못했다. 

기원후 130년, 저스틴은 한 명의 경험 많은 그리스도인과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이 대화로 진리에 대한 자신의 이해가 얼마나 피상적인지 알게 되었고,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에 대하여 보다 진지하게 고민하게 했다. 저스틴은 선지자들과 “그리스도의 친구들”을 알고 싶은 열정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스틴이 내린 결론은, 트라이포에게 전한 바와 같이, 예수님의 가르침이 “유일하고 참된 철학”이라는 것이었다.

트라이포와의 대화 이후, 저스틴은 로마에 학교를 설립했다. 그곳에서 저스틴은 기독교 신앙을 가르치고, 이교도들과 토론을 벌였다. 또한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전도사역에 힘을 기울였다. 로마의 지식 계층에서는 저스틴의 가르침에 대해 악평이 자자했는데, 이는 크레스켄스라는 냉소적 철학자와의 토론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 토론에서의 승리가 아마도 저스틴의 체포와 루스티쿠스 재판(165년)을 통한 처형으로 연결되었을 것이다. 

저스틴의 저작들은 대부분 남아있지 않다. 그렇기에 그의 현존하는 두 개의 작품인 ‘변증의 글’과 ‘트라이포와의 대화’를 통해 저스틴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작품들은 저스틴의 생각을 알 수 있는 소중한 입문서이자, 그가 이교도와 유대인을 향해 믿음의 양상과  정의를 전하며 어떻게 당시의 문화 속에서 복음을 증거했는지 우리에게 알려준다. 

세 가지 보편적 주제들

이교도와 유대인을 향한 저스틴의 증거 방식에는 세 가지의 특징이 있다. 모든 것의 기본은 믿음의 원칙, 또는 예수님의 구속 사역의 역사적 측면이다. 두 번째로, 구약 속 예언들에 대한 예수님의 성취를 그의 구별된 청중들에게 적절히 찾아 주고 기발하게 적용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 저스틴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이자, 예배의 대상이며, 성육신하신 참 인간이심을 분명하게 설명했다. 이러한 선포에 있어서, 저스틴은 성경을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으며 무오한 최고의 권위에 두었다. 목숨을 내어놓기까지 한, 저스틴의 기독교 교리에 대한 심오한 이해는 그에게 기독교를 변호할 능력을 제공한 것이다. 

가령, 저스틴은 그리스도의 삶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그분이 메시아 되심을 증거한다고 트라이포에게 반복적으로 언급했다. “만약 세례 요한이 주님보다 앞서 온 자로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였다면, 그 후에 실제로 그리스도가 오시어 복음을 설교하시며 하늘나라가 임박했다는 것을 확증하시고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손에서 고난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예루살렘에 다시 나타나셔서 제자들과 먹고 마시셨다면” 그 자체로 예수님이 구약의 예언과 모형들을 성취한 것이라고 저스틴은 강조했다. 그는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가르침, 치유, 고난과 죽음, 부활과 승천, 재림에 대한 약속 안에서 그리스도만이 홀로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점을 드러내고자 많은 분량의 선지서들을 해석하고 인용했다.

이교도나 그리스 철학이 지닌 모호성과는 반대로, 복음서의 통일성 있는 사실들은 저스틴이 기독교 진리의 명료성과 역사성을 논하는 데 도움이 됐다. 저스틴은 몇몇 그리스 철학자들을 포함하여 “이성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란 점을 인정했다. 그들이 발견한 진리는 그리스도의 인성과 가르침과 사역 안에서 더 분명해진다는 것이 저스틴의 요점이었다. “지각이 있는 자라면 하나님의 뜻에 따라, 말씀의 능력으로, 왜 만물의 아버지이자 주님께서 동정녀에게서 태어났고, 예수라고 불리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가 다시 일어나서, 승천 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고 저스틴은 주장했다(변증, 46). 이 땅에 나신 예수님은 아버지가 그에게 전한 말씀을 전하셨고, 아버지가 맡기신 구속 사역을 행하셨다. 또한 선지자들이 그리스도에 관하여 말한 모든 것들을 성취하셨다. 이렇게 예수님은 기독교의 모든 가르침의 신뢰성을 최대한으로 높이셨다. 

이교도와의 논쟁

저스틴은 이교도들과 맞선 논쟁에서 몇 가지의 주장들을 앞세웠다. 첫 번째는 기독교의 도덕적 우월성이다. 저스틴은 수많은 이교도 문화의 천박함을 예로 들고나왔다. 이교도들이 가증스러운 문제들을 부당하게 변명하며, 실제로는 자신들이 도덕적 범죄의 가해자이면서 위선적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 혐의를 뒤집어씌운 것에 관해 설명했다. “선하시고 지존하신 하나님께 우리를 드림으로 이전에는 불순한 것에 집착하던 우리가 이제는 순수한 것을 고수한다.”고 저스틴은 기록했다(변증, 14). 어떤 숙련된 기술자는 이방의 신을 “모든 악행을 저지르며, 하녀로 일하는 어린 소녀까지 음탕한 사람으로” 조각했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저스틴이 수없이 인용한 그리스도의 말씀들은 기독교의 도덕적 우월성과 그리스도인들에게 뒤집어씌운 거짓 혐의들의 불합리성을 분명하게 나타낸다. 세속적 오염에서 벗어나고, 용인된 잔혹함의 기준을 뒤집으며 세상을 무시하려는 그리스도인들의 단호함은, 그 과정 중에 세상의 분노가 발생한다고 해도,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도덕적 이해가 영원한 진리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저스틴은 기독교가 진리의 명료함에 있어서 탁월하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검증 없이 무조건 수용하며 잘 속아 넘어가는 헬라인의 모순을 비평하고 비웃었다. 그러면서 그들이 터무니없다고 말하는 그리스도의 위대한 완전성과 역사적 실증을 가르쳤다. 또한 진리는 예수님께 속하였으며 불합리성은 이교도들에게 남아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저스틴의 주장에 있어서 증명이란 역사적 실재, 예언의 성취, 그리고 우수한 논거라는 세 가지의 요소로 구성된다. 먼저, 기독교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사건들의 실재이다. 제우스, 쥬피터, 미네르바 등의 놀라운 그리스 신화들은 어떠한 역사적 증거나 자료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 역사적 증거가 설사 존재 하더라도, 그리스의 이방 신들은 사람을 구속하지도 영감을 주지도 못한다. 오히려 인간을 잔인하게 다루고, 모독한다. 이와는 반대로, 예수님의 행위와 말씀의 확실성은 자료를 통해서나 기독 공동체 안에 남겨진 사안들을 볼 때 의심할 여지가 없다. 

둘째, 위에서 언급한 예언의 성취는 편만하고 정확하며, 날조가 불가능하다. 예수님의 오심은 구약 성경을 통하여 면밀히 준비되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오시기 직전에 그분의 오심을 선포했다. 그리고 예수님이 모든 예언의 성취가 되심을 주장하셨다. 이러한 사실들은 예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자의 참지식을 우리에게 주시어 보전하시고, 모든 것을 깨닫고, 형언할 수 없는 정의의 원리에 따라 영원한 상급 또는 형벌을 내리심을 보여준다. 

셋째, 예수님이 진리의 역사적 현현(顯顯)이시므로, 그분으로부터 비롯되지 않은 진리는 존재할 수 없다. 모든 진리는 그리스도 안에 기초를 둔다. 저스틴은 철학자가 제대로 전한 내용들은 “로고스의 일부”를 심사숙고한 결과 정도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철학자들이 훌륭한 가르침을 전할 때도 여전히 “전체 (하나님의) 말씀”은 사색할 수가 없기에, 그들은 모순적일 때가 많았고, 하나님은 어려운 주제라고만 인식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완전성과 절대적인 정확성, 그리고 순전한 신뢰를 가지고 가르치신다. 그 누구도 소크라테스나 헤라클레이토스를 위해 죽고자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위해서는 지식인과 철학자뿐 아니라, 일반 노동자나 노예같이 교육을 못 받은 사람들도 모든 세상 영광을 내려놓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저스틴은 여러 철학 사상의 중요한 원리들에 대하여 그들이 지닌 부조리를 드러내며 설득력 있게 반박했다. 냉소주의나 스토아학파뿐 아니라 쾌락주의와 음란한 시인들이 지닌 문제들을 꺼내 보였다. 저스틴은 그가 존중하던 플라톤학파 역시 불충분한 것으로 보았다. “무언가의 근원과 모방은 한 가지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 공유되고 모방된 것은 그 자체로 전혀 다른 무언가가 된다”고 간주했기 때문이다.

저스틴의 목표는 단지 이교도의 공격을 방어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가능한 한 그들을 회심하게 만드는 것”이 그의 목적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두 번째 변증을 다음과 같은 기도로 마무리한다. “온 땅의 사람들은 진리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유대인과의 논쟁

유대인을 향한 그의 논박은 유사한 신학적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논박의 맥락과 취지는 결을 달리한다. 특히, 증명을 위한 저스틴의 열의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가 트라이포에게 말했다. “우리의 믿는 바는 근거 없는 신화나 사유 없는 가르침이 아니라, 성령으로 감동 받고, 능력이 차고 넘치며 풍성한 은혜가 있는 교리들을 근거로 한다는 사실을 바로 이 자리에서 증명해 보이겠네.”

저스틴은 하나님의 계시, 구약 성경의 영감, 하나님의 단일성, 메시아에 대한 약속과 같은 신앙(교리)들을 유대인 청중들에게 전했다. 몇 가지 아주 중요한 측면에 있어서, 저스틴은 기독교를 최상위로 여겼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로 성취되는 모형론을 인지하고 있기에 구약 성경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출애굽, 광야의 놋 뱀, 희생 제사, 라합의 구원 등을 모형론의 예로 들 수 있다). 그들은 할례가 마음의 할례로 완성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그리스도의 삶과 사건들을 통해 구약의 예언을 보기에, 예언을 명확하게 이해한다. 그들이 구약 성경에서 말하는 새 언약의 수취자들이기에, 언약에 대한 더 완전한 지식을 갖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참된 아들이면서 본질적으로 아버지와 동일하시며 예배받기에 합당하신, 기름 부음 받은 그분을 알기에,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더욱 성숙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다. 

죄인을 위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진리로 트라이포와 그의 친구들을 간절하고 집요하게 설득한 이후에, 저스틴은 다음과 같은 말로 그의 대화를 끝낸다. “저는 여러분이 여러분의 구원을 위해, 여러분의 선생들보다 월등히 전능하신 하나님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도록 모든 노력을 쏟으시기를 간청합니다.” 

진리를 위한 우리의 열정은 영혼들을 위한 관심에까지 이어져야 한다. 

이 글은 원래 테이블톡 매거진에 게재되었습니다.

토마스 J. 네틀스
토마스 J. 네틀스
토마스 J. 네틀스(Thomas J. Nettles) 박사는 켄터키주 루이빌에 있는 남침례교 신학교의 역사 신학 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