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한 속죄란 무엇인가? -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2023년 03월 29일
죄에도 등급이 있는가?
2023년 04월 01일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2023년 03월 29일
죄에도 등급이 있는가?
2023년 04월 01일

제한 속죄란 무엇인가?

“확정적 속죄 (definite atonement)” 또는 “특정 구속(particular redemption)”으로 알려지기도 한 제한 속죄 교리는 그리스도의 속죄가 (그 범위와 목적에 있어서) 선택된 자들에게만 국한되었다고 말한다. 예수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의 죄를 속죄하지 않으셨다. 내가 속한 교단에서 목회 사역을 시작하는 젊은 사람들을 시취할 때 꼭 누군가가 학생에게 “당신은 제한 속죄를 믿습니까?”라고 물으면 그 학생은 다음과 같이 대답할 것이다. “예, 저는 그리스도의 속죄가 모든 사람에게 충분하고 어떤 사람에게 효력이 있다고 믿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사람의 모든 죄를 덮을 만큼 큰 가치가 있지만, 그 가치가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만 적용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런 진술은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목적과 관련된 논쟁의 진정한 핵심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이해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한 가지 이해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은 타락한 인류로부터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어 타락한 백성의 죄를 짊어지게 하심으로 세상을 구원할 계획을 세우셨다. 예수님은 어느 시점에 자기를 믿는 모든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가셔서 죽으실 것이었다. 따라서 이 계획은 잠정적이었다. 즉 하나님은 이런 계획을 활용하는 모든 사람, 즉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을 위해 속죄를 마련하셨다. 그 개념은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위해 잠재적으로 죽으셨지만, 세상의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사역을 거부하고 자신의 허물과 죄 가운데 죽은 채로 남아 있길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모든 것이 허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계획을 아무도 활용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은 좌절될 수 있다.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위해 잠정적으로 죽으셨다는 것이 오늘날 교회에 널리 퍼진 견해이다. 결국 구원의 사건은 각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개혁주의는 하나님의 계획을 다르게 이해한다. 개혁주의 관점에 의하면, 영원 전부터 하나님은 잠정적이지 않은 계획을 마련하셨다. 이 계획은, 혹시라도 이 계획이 작동하지 않았을 때 실행할 수 있는 다른 어떤 대안 (plan B)이 없는, 계획 제1 안(plan A)이었다. 이 계획 아래서 하나님은 타락한 인류로부터 성경이 택한 자들이라고 부르는 일정 수의 사람들을 구원하겠다고 작정하셨다. 하나님은 이런 선택의 계획이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도록 택한 자들의 구속을 성취하기 위해 구체적인 목적과 계획을 세우고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 이 계획은 그리스도의 피가 한 방울도 낭비되지 않고 완벽하게 성취되었다. 아버지께서 구원하시기로 택하신 모든 사람은 속죄를 통하여 구원받을 것이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자기 양을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주신 양으로 언급하신다. 

비개혁주의 견해가 함축하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즉 하나님은 누가 구원받을지 미리 알지 못한다. 이것을 근거로 오늘날 신학자들은 “하나님은 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을 구원하신다.”라고 한다. 하나님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원하실 수 있는가? 그분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원할 능력이 있는가? 그분이 정말 하나님이라면 그분은 모든 사람을 구원할 능력이 있다. 그분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원할 권세가 있는가? 하나님이 모세의 삶, 아브라함의 삶, 사도 바울의 삶에 개입하셨던 것처럼, 누군가의 삶에 개입하셔서 그들을 당신과의 구원 관계로 인도하실 수는 없는가? 하나님은 확실히 그렇게 할 권리가 있다.

예수님이 “이 세상”을 위해 죽으셨다고 말하는 성경을 부정할 수 없다. 요한복음 3:16은 이런 언어를 사용하는 구절의 첫 번째 예이다. 하지만 요한복음을 비롯한 신약성경은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셨다고 말하는데, 이것이 균형 잡힌 관점이다. 여기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자기 양을 아버지께서 주신 자들이라고 말씀하신다.

요한복음 6장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요 6:44)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이끌지(draws)”로 번역된 단어는 엄밀하게 말하면 “몰아 모으다(compel)”를 의미한다. 또한 예수님은 이 장에서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요 6:37)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요점은 아버지께서 자기 아들에게 오도록 계획하신 모든 사람은 올 것이며 다른 사람은 오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은혜 가운데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기로 하셨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무언가를 보셨기 때문이 아니라, 아들의 사랑 때문이다. 내가 어째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유일한 이유는 내가 한 일이나 할 수 있었던 일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를 아들에게 선물로 주셨기 때문이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R.C. 스프로울
R.C. 스프로울
R.C.스프로울 박사는 리고니어 미니스트리(Ligonier Ministries)의 창립자이자 플로리다주 샌포드(Sanford)에 있는 세인트 앤드류 채플(Saint Andrew's Chapel)의 초대 설교 및 강도 목사였고, 레포메이션 바이블 칼리지(Reformation Bible College)의 초대 총장이었다. 그는 을 포함하여 백권이 넘는 책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