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에도 등급이 있는가? -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제한 속죄란 무엇인가?
2023년 03월 30일
청지기 직분이란 무엇인가?
2023년 04월 04일
제한 속죄란 무엇인가?
2023년 03월 30일
청지기 직분이란 무엇인가?
2023년 04월 04일

죄에도 등급이 있는가?

역사적으로,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는 죄에 등급이 있다고 보았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대죄(mortal sin)와 소죄(venial sin)를 구별한다. 즉 어떤 죄는 너무 중하고 가증스러우며 심각해서 그런 죄를 실제로 짓는 것은 신자의 영혼 안에 거하는 칭의의 은혜를 죽일 정도로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모든 죄가 그 정도로 파괴적인 것은 아니다. 실제로 소죄인 죄들이 있다. 이런 죄는 결과적인 측면에서 덜 심각한 죄이다. 이런 죄는 대죄와 같이 칭의를 죽이는 능력은 없다.

많은 복음주의 개신교인은 죄의 등급이라는 개념을 거부했다. 왜냐하면 개신교 종교개혁이 로마 가톨릭의 대죄와 소죄 사이의 구별을 거부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개신교에서는 결과적으로 죄는 어떠한 것이든 구분이 없다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개혁자들의 견해로 돌아가야 한다. 존 칼빈(John Calvin)은 대죄와 소죄를 구분하는 로마 가톨릭교회를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칼빈은 모든 죄는 죽어 마땅하다는 의미에서 치명적이라고 언급했다. 야고보서는 우리에게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약 2:10)라고 상기시킨다. 그것이 아주 작은 죄라도 어마어마한 반역 행위이다. 우리는 이 정도로 우리 행동의 중대함을 느끼지 못하지만 이것은 사실이다.

내가 죄를 지을 때,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보다 내 뜻을 선택한다. 그 이면에는 내가 본질적으로 하나님보다 더 총명하고, 지혜롭고, 의롭고, 강력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칼빈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지은 가장 작은 죄로 인해 우리를 멸망시키신다고 해도 그것은 정당하다는 의미에서 모든 죄는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사실, 죄에 대한 형벌은 인간을 창조한 첫날에 주어졌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7). 하지만 하나님은 항상 공의를 따라 우리를 다루시지만은 않는다. 그분은 은혜에 따라 우리를 다루신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살게 하시고,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 일하신다. 칼빈은 우리가 죄로 인해 죽어 마땅하다는 점에서 모든 죄는 치명적이지만, 구원의 은혜를 파괴할 수 있을 만큼 치명적인 죄는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 우리는 회개해야 한다. 하지만 성령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칭의의 은혜는 우리의 죄로 인해 없어지지 않는다. 칼빈과 모든 종교 개혁자는 덜 중요한 작은 죄와 중대하고 극악무도한 죄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런 구별을 이해하는 것은 기독교인들에게 중요한 문제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서로 자비롭게 사는 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 안에서 사람들이 하찮은 죄에 얽매이기 시작할 때 그리스도의 몸을 찢을 수 있다. 지체에 대한 험담과 비방의 불길은 큰 피해를 가져온다. 우리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분투하다 실패했을 때 인내하고 관용하도록 부름 받았다. 이것은 우리가 죄에 대해 해이해져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왜냐하면 교회에서 허용해서는 안 되는 심각한 특정 죄들이 신약성경에 나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간음은 심각하다. 근친상간은 교회의 징계를 요구한다. 술 취함, 살인, 음행은 반복적으로 언급된다. 이런 죄는 너무나 파괴적이어서 그런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나면 교회의 권징이 요구된다. 

하나님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에 기초할 것이지만, 일단 우리가 천국에 가면 상급은 행위에 따라 주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성경의 경고를 살펴보면 죄의 등급이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신약성경은 하늘에 있는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상급의 등급에 대해 22번 언급한다. 하늘에는 다른 수준의 다른 보상, 다른 역할이 있다. 성경은 우리가 받을 심판에 가혹함을 더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예수님은 본디오 빌라도에게 “나를 네게 넘겨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요 19:11)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죄를 측정하고 평가하신다. 또한 더 큰 심판은 더 큰 죄책과 더 큰 책임을 가지고 온다. 이것이 신약성경에 스며 있는 주제이다.

죄와 보상의 등급이라는 개념은 하나님의 공의에 근거한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두 배나 많은 죄를 지었다면 공의는 그 범죄에 합당한 형벌을 요구한다. 정의는, 내가 다른 사람보다 두 배 더 많이 덕행을 쌓았다면 더 많은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요구한다. 하나님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에 기초할 것이지만, 일단 우리가 천국에 가면 상급은 행위에 따라 주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선한 행위를 많이 한 사람들은 풍성한 상을 받을 것이다. 선한 행위를 등한히 하고 태만했던 사람들은 하늘에서 작은 상을 받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극악무도한 원수였던 사람들은 지옥에서 심한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덜 적대적이었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손에서 더 적은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분은 완전하게 공의로우셔서, 심판하실 때 정상 참작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고려하실 것이다. 예수님은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마 12:36)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이 점을 강조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나는 음욕과 싸우고 있는 남자들과 여러 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스스로에게나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이미 음욕의 죄를 지었기 때문에 간음하는 것이 낫지 않나요? 나는 하나님 보시기에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없기 때문에 차라리 간음하는 것 낫습니다.” 그러면 나는 항상 이렇게 대답한다.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이보다 더 나빠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간음하는 것에 대한 심판이, 음욕에 대한 심판보다 훨씬 더 가혹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단계에 따라 다루실 것이다. 그러므로 경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나는 이미 죄를 지었습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나의 죄를 중죄로 만드는 것이 낫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처럼 생각하는 것을 금하신다.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기독교적 양심과 성품을 계발하려고 노력함에 있어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R.C. 스프로울
R.C. 스프로울
R.C.스프로울 박사는 리고니어 미니스트리(Ligonier Ministries)의 창립자이자 플로리다주 샌포드(Sanford)에 있는 세인트 앤드류 채플(Saint Andrew's Chapel)의 초대 설교 및 강도 목사였고, 레포메이션 바이블 칼리지(Reformation Bible College)의 초대 총장이었다. 그는 을 포함하여 백권이 넘는 책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