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논증 -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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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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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 논증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N.T. 라이트는 뭐라고 말했나?의 두번째 글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믿음으로써(believing in justification by faith)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복음 자체를 믿음으로써(by believing in the gospel itself), 다시 말해 예수님은 주이시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는 것을 믿음으로써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칭의의 관점』(원제: Justification in Perspective), N. T. 라이트, “바울에 관한 새 관점,” 261쪽.

지난 몇 년간 영국의 주교이자 신약학자인 N. T. 라이트가 성경 신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인물로 부각되었다. 영국의 저명한 철학자로 과거에 무신론자에서 이신론자로 개종한 앤서니 플루(Antony Flew)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다룬 라이트의 탁월한 작품에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라이트는 소위 바울에 관한 새 관점의 주요 개척자로서도 유명하다. 라이트는 바울에 관한 새 관점에 따라 로마 가톨릭과 종교개혁 개신교 사이의 역사적인 칭의 논쟁을 초월하여 칭의 교리를 새롭게 제시한다. 라이트는 로마 가톨릭 교회와 종교개혁 개신교는 둘 다 성경의 칭의 교리를 오해하고 왜곡시켰다고 주장하면서, 어떤 면에서 “두 집 모두 역병에 걸렸다”(A pox[plague] on both your houses.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유명한 말로, “파멸을 자초하는 경쟁”을 저주하는 의미로 사용된다-옮긴이)고 말한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존 파이퍼의 비평에 답하면서 라이트는 파이퍼와 전통적인 개신교 칭의 견해를 받아들이는 자들을 업신여긴다. 라이트는 자신의 눈에 성경의 요점을 놓치고 있어 보이는 신학 전통들을 비판한다. 

논쟁할 때 종종 사용되는 아주 효과적이지만 잘못된 논증 가운데 하나가 “허수아비 논증의 오류(strawman fallacy)”로 불리는 것이다. 허수아비는 까마귀들을 쫓아버리기 위하여 만든 가짜 인간이다. 허수아비는 효과적인 장치이지만 새총을 들고 밭을 지키는 실제 농부만큼의 효과는 없다. 짚으로 만들어진 농부는 실제 농부만큼 무섭지 않다. 이것이 대체로 진짜와 가짜 사이의 차이다. 허수아비 논증의 오류는 자신의 반대자의 입장을 왜곡시켜 거짓 견해를 만들어낸 다음 그 견해를 철저히 논박함으로써 반대자의 입장을 쉽게 무너뜨리는 잘못된 논증 방법이다.

N. T. 라이트가 이와 동일한 허수아비 논증의 오류 전략을 사용하여 제시하는 진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것이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믿음으로써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개신교 정통주의는 이신칭의 교리를 믿음으로써 의롭게 된다고 믿는 것이 된다. 이러한 라이트의 주장은 허수아비 논증의 최고봉이다. 말하자면 허수아비 논증의 골리앗, 허수아비 논증의 킹콩이다. 다시 말하면 터무니없는 망언이다. 나는 개혁파 전통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믿음으로 얻는 칭의 교리를 믿음으로써 의롭게 될 수 있다고 믿거나 주장하는 신학자를 한 명도 보지 못했다. 라이트의 진술은 개혁파 전통을 완전히 왜곡시키는 망발에 불과하다. 

우리는 라이트의 진술에서 라이트가 스스로 만들어낸 허수아비 논증을 볼 수 있다. 라이트의 진술은 막대기로 만든 것보다 지탱할 수 있는 힘이 더 없는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오직 믿음으로 얻는 칭의” 교리는 “오직 믿음으로 얻는 칭의” 교리를 믿음으로써 의롭게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완전히 그 관념과 정반대로 가르친다. “오직 믿음으로 얻는 칭의”라는 말은 오직 그리스도만으로 얻는 칭의를 가리키는 데 사용하는 신학적 술어다. 오직 믿음으로 얻는 칭의 교리를 이해하고 옹호하는 사람은 누구나 칭의의 초점이 교리를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에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믿음으로 얻는 칭의”(justification by faith)라는 어구에서 핵심적인 단어는 으로(by)라는 말이다. 이 말은 믿음이 우리를 그리스도 및 그리스도의 유익과 연계시키는 수단 또는 도구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개념은 믿음이 우리의 칭의의 “도구적” 원인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개신교의 공식적 견해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도구적 원인에 대한 견해와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칭의의 도구적 원인으로 첫 번째는 세례성사를, 두 번째는 고해성사를 주장한다. 따라서 어떤 도구에 우리의 칭의의 기초가 놓여 있는지가 로마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 교회 간에 벌어진 전통적인 논쟁의 핵심 요소였고, 또 지금도 그렇게 남아 있다. 바울이 신약성경에서 제시한 가르침을 따르는 개신교의 견해는 믿음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계시키는 유일한 도구라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얻는 칭의의 근거에 관한 격론의 문제도 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여기서 성경적인 전가 개념이 매우 중요하게 된다. 전가를 우리의 칭의의 근거로 인정하지 않는 자는 전가를 법적 허구나 공의의 왜곡, 아니 심지어는 세계적인 아동 학대의 한 표지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동시에 전가는 우리의 구속의 근거를 성경적으로 설명해주는 개념이다. 이사야서 53장만큼 이 전가 또는 이전 개념을 명확히 가르치는 본문은 어디에도 없다. 신약 교회는 이 본문을 구속의 드라마를 설명하는 중대한 예언의 본문으로 취한다. 신약성경은 그리스도를 우리의 의로 선언하고, 믿음으로 얻는 칭의 교리의 초점은 엄밀히 말해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의 칭의의 근거로 신뢰하는 것에 있다. 우리는 오직 믿음(솔라 피데) 교리를 믿는 것으로는 한 사람도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교리를 믿는 믿음은 구원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 그러나 칭의 교리를 믿음으로써 구원받을 수는 없지만 우리가 이 교리를 부인하는 것은 확실히 치명적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지적한 것처럼 오직 믿음으로 얻는 칭의 교리를 부인하는 것은 복음을 거부하고 복음을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바울이 저주로 선언하는 일이 초래될 것이다. 복음은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절대로 허수아비 논증으로 일축될 수 없다. 

이 글은 원래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블로그에 게재되었습니다.

R.C. 스프로울
R.C. 스프로울
R.C.스프로울 박사는 리고니어 미니스트리(Ligonier Ministries)의 창립자이자 플로리다주 샌포드(Sanford)에 있는 세인트 앤드류 채플(Saint Andrew's Chapel)의 초대 설교 및 강도 목사였고, 레포메이션 바이블 칼리지(Reformation Bible College)의 초대 총장이었다. 그는 을 포함하여 백권이 넘는 책을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