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제하는 율법 -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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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제하는 율법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섭리“의 여섯 번째 글입니다.

우리는 대부분이 다음과 같은 것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즉 제한속도를 초과하여 도로를 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앞쪽 도로에 경찰차가 서 있는 것이 보여, 즉시, 제한속도로 속도를 줄였는데 경찰차 안에 아무도 없었던 경험 말이다. 이렇게, 비어 있는 경찰차는 그 존재만으로도 우리의 무법성을 적어도 잠시나마 억제할 수 있다.

16세기 개신교 종교 개혁자들은 율법의 세 가지 “용도”를 확인했다. 즉 시민적 용도(우리의 타락을 억제하는 끈), 교육적 용도(우리의 죄성을 드러내고 우리를 죄인들의 유일한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향하게 하는 거울), 규범적 용도(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을 지도하는 직선 자)가 그것이다. 교회는 때때로 율법의 이런 제지 기능을 중생하지 못한 자들에게 국한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형벌의 위협 또는 수치심에 대한 두려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형벌의 위협과 수치심에 대한 두려움은 그들이 자신들의 부패한 마음에 내버려 진다면 그들이 악할 수 있는 만큼 악해지는 것을 막는다. 하지만 하나님의 율법은 또한 중생한 자들 안에 내주하는 죄를 억제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율법의 이런 기능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언덕 위의 도시(the city on a hill)가 되게 하실 방법 가운데 하나인데 하나님은 우리가 이 도시가 되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구원하셨다(마 5:14).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9:6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직접 언급한다. 예수님을 믿는 신자를 위한 하나님의 계명이 견지하는 목적이 종종 무시되고 있다. 신앙고백서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행위 언약으로서 율법 아래 매여서 행위로 의롭다함을 입거나 정죄를 받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런 후에 신앙고백서는 율법의 규범적 용도와 교육적 용도가 성도의 삶에서 계속 작동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작성자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증한다. 율법은 또한 그리스도인에게서 불경건함이 나오는 것을 막는 댐의 역할을 한다. “마찬가지로 율법은 거듭난 자들에게도 그들의 부패를 제어하기에 유익한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이 어떻게 믿는 자를 제어하는가?

첫째, 율법은 직접 죄를 금한다. 회심하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이 죄를 금지한다는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는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하지 말라고 하신다는 단순한 사실이 우리를 불법으로부터 차단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순종은 우리 아버지의 뜻을 어기는 것이라는 사실이 우리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다(약 2:11). 시편 기자와 함께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길 갈망한다.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시 119:101) 율법이 우리 죄를 제어해야 하며 또한 제어하고 있다는 인식은 우리를 겸손하게 하는 실체이다.

둘째, 율법의 경고는 우리에게 죄의 대가가 무엇인지 상기 시켜 준다. 하지만 예수님의 피와 의가 우리의 죄를 덮는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을 받았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을 때 우리는 죄를 피하게 된다. 에스라의 다음과 같은 기도를 보자. “우리의 악한 행실과 큰 죄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당하였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 죄악보다 형벌을 가볍게 하시고… 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에 9:13-14) 마찬가지로 우리가 우리의 죄를 정죄 받지는 않지만, 우리의 하늘 아버지는 우리를 징계하긴 하신다. 또한 아버지의 손에서 나오는 위협의 결과는 불의에 대한 강한 억제력이 된다(시 89:30-33; 고전 11:32; 히 12:5-11).

마지막으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표현에서 율법의 약속들은 “하나님께서 순종을 기뻐하신다는 사실과 율법을 행함으로써 기대할 수 있는 복이 무엇인지를 그들에게 알려 준다.”(19.6) 성령은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큰 상급을 약속하신다. 이것은 우리가 거룩함을 향해 나아가도록 격려하시기 위함이다(시 19:11; 34:12-16; 엡 6:2; 벧전 3:8-12). 바울은 고후 7:1절에서 이런 목적을 분명하게 표현한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구원하는 믿음은 “명령에는 순종하며 위협에는 두려워 떨고 현세와 내세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한다(WCF 14.2).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율법은 그리스도인의 남아 있는 부패를 효과적으로 억제한다. 또는 칼빈의 언어를 사용하자면 율법은 “육체에게 마치 게으른 나귀를 때리는 채찍과도 같아서, 육체를 일깨워서 행하게 한다. 신령한 사람이라도 아직 육체의 무게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있지 않음으로, 율법이 그 사람을 끊임없이 찔러서 그냥 나태하게 있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다”(기독교 강요, 2.7.12). 율법의 억제 효과가 신자의 삶에서 유일하거나 심지어 가장 중요한 힘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구속하는 사랑이 모든 것 가운데 가장 달콤한 동기이다(고후 5:14). 하지만 하나님의 율법은 고삐처럼 우리를 악한 길에서 멀어지게 하고 그분의 이름을 위해 의의 길에 서게 한다. 

율법은 또한 세상을 위해 우리를 억제한다. 어째서 그런가? 첫째, 율법은 우리의 불경건을 억제하기 때문에 우리는 더 짠 소금과 더 밝은 빛이 된다(마 5:13-14). 따라서 잃어버린 자들(믿지 않는 자들) 가운데 우리의 현존은 종종 그들의 타락을 강력하게 억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둘째, 율법이 우리 죄를 억제해야 하며 또한 억제하고 있다는 의식은 우리를 겸손하게 하는 실체이다. 이런 겸손은 우리가 잃어버린 자들과 관계하는 방식을 변화시킨다. 바리새인의 마음으로 그들에게 접근하기보다는 오히려 세리의 마음으로 접근해야 한다(눅 18:9-14). 오직 하나님의 은혜(그분의 율법을 통해서도)만이 우리 죄를 억제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의 복음 증거는 온유하고 은혜로워야 한다.

다음에 우리가 빈 경찰차를 본다면 우리의 삶에서 율법의 억제하는 힘을 기억하자. 그리고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한 은혜를 비추자.

이 글은 원래 테이블톡 매거진에 게재되었습니다.

켈럽 칸겔로시
켈럽 칸겔로시
켈럽 칸겔로시(Caleb Cangelosi) 목사는 미시건 주 릿지랜드(Ridgeland)에 있는 페어 올키드 장로교회(Pear Orchard Presbyterian Church)의 담임목사이며 Log College Press의 설립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