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고백서와 교회의 사명 -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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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고백서와 교회의 사명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고백하는 교회”의 일곱 번째 글입니다.

신앙고백서는 오늘날 좋지 않은 평을 듣고 있다. 고대 교회와 종교 개혁 교회는 우리에게 검증된 신조와 신앙 고백서를 물려주었다. 신조와 신앙 고백서에서 교회는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에 관한 권위 있는 요약을 발견했다(유 1:3). 하지만 오늘날 스스럼없이 신앙 고백서를 고수하는 교회들은 신앙 고백적이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지상 명령을 정확하게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의견이 광범위하고 격렬하게 주장되고 있다. 그들의 신앙 고백적 표준서가 그들이 복음을 전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한편, 그들의 표준서는 분명하고 단순한 복음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려는 진정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관찰에는 어느 정도의 진실이 있다. 고백적인 교회들은 당연히 이 세상에 열렬히 복음을 전해야 하지만 종종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 각각의 신앙 고백서에 대한 논쟁은 외부인에게는 경미하고 난해한 신학적인 부분에 대한 단순한 교회 내의 논쟁으로만 보인다. 따라서 많은 사람은, 종교 개혁의 알찬 신앙 고백 표준서 그 자체가 교회의 참된 선교 사역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탈 기독교 시대(post-Christian)에 독일에서 개척 교회 목사로 사역하면서 나는 선의의 기독교인들로부터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하고 새로 회심한 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 신앙 고백서를 사용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불신의 세상에 진리의 말씀으로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것은 교회의 선교적 임무에 결코 방해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은 교회가 지상 명령을 완수하는 방법의 일환이다. 

하지만 고백적 교회가 종종 복음주의적 열정이 부족하다는 개탄스러운 사실은 신앙 고백서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일까? 선교적 맥락에서 신앙 고백서는 전혀 “역할을 하지 않는가?” 그와는 정반대이다. 신앙 고백적 교회가 지상 사명을 완수하는 데 있어서 종종 느슨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신앙 고백서 자체에 있지 않다.

신앙 고백서의 진정한 의도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소명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것이다. 선교적 맥락에서 오늘날 세계 많은 지역의 신앙 고백서들은 하나이며 동일하다.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것은 많은 곳에서 신자의 삶에 즉각적인 위협이 될 수 있고 실제로 지금도 그런 일이 종종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우리들을 한 동지가 되게 한다. 예수님은 자신의 고백에 대해 기꺼이 죽으셨던 첫 번째 순교자였다. 그의 제자들은 틀림없이 그들의 주인보다 뛰어날 것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요 13:16). 그분은 제자들에게 그가 누구인지 고백하기를 요구하셨다(마 10:32; 16:15). 또한 그들이 그렇게 하기 전에 비용을 계산하고 그 결과로, 죽음까지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10:27-28). 하나의 신앙 고백서는 성경이 실제로 가르치는 것에 대한 우리의 진심 어린 확신이다. 이런 확신은 너무 강해서 성경의 진리에 대해 타협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게 한다. 어떤 기독교인도 “어느 정도 가능성 있는 진리를 위해 기꺼이 화형을 받으려고 한 적은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절대적으로 참되다고 주장하는 신앙 고백서 때문에 예외나 조건 없이 화형당해 죽었다.

교회의 대부분의 신앙 고백서의 기원을 보면, 그런 고백서들이 안락한 연구 속에서 기록된 것이 아니라 박해의 불 속에서 단련하여 만들어지고 피로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앙 고백서는 순교의 피가 교회의 씨앗이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다. 하나의 예만으로도 충분하다. 귀도 드 브레(Guido de Brespenned)가 1561년에 벨직 신앙 고백서(the Belgic Confession)를 작성했을 때, 그는 또한 스페인 국왕 필립 2세(Philip II)에게 신앙 고백서 이면에 놓인 근거를 제시한 편지를 제출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추방, 감옥, 참수대, 망명, 고문, 수많은 다른 박해는 우리의 소망과 확신이 세속적이지 않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왜냐하면 만약 우리가 이 교리를 받아들이고 유지하지 않으면 훨씬 더 편안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앞에 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면 예수님 자신도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저버릴 것이라고 경고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두려워한다면, 등을 맞고, 혀가 잘리고, 입에 재갈이 물리고, 온몸이 불태워지는 고난을 감내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부인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드 브레(DeBres)와 수많은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신앙 고백서로 인해 기꺼이 순교하려고 했고 실제로 순교했다. 왜 그래야 했는가? 그들은 신앙 고백서에 담긴 진리를 부정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것은 영혼에 치명적이며 사람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을 빼앗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기꺼이 신앙을 고백하고 죽으려 했을 때, 그들에게는 복음이 전해져야 한다는 것 외에는 다른 이유가 없었다. 옥에 갇히면서까지 그리스도를 명료한 말로 기꺼이 고백하려고 한 것은 그들의 모든 위대하고 신실한 선교적 노력 이면에 놓여 있는 마음의 태도이다.

교회의 첫 번째 신앙 고백서는 정통성, 즉 신학적 진리를 진술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그것들은 결코 교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항상 세상의 잘못된 믿음 체계와 교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교회의 신앙 고백서에는 죽은 정통성이란 없다. 신앙 고백서는 우리에게 항상 도전할 뿐만 아니라 세상을 향해서도 항상 도전하기 때문이다.

신앙 고백서는 또한 복음 전파를 위한 지침이 되도록 만들어졌다. 단순한 옛 “복음 설교”가 아니라 오직 교회의 고백에 요약된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와 일치하는 복음으로만 세상을 충실히 복음화 할 수 있다. 신앙 고백서는 말 그대로의 말씀을 우리 입에 넣어준다. 이 말씀은 우리가 믿음을 체험하는 가운데 이해되는 성경적 말씀이요,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한 증인으로 세상에 나갈 때 사용할 수 있고, 또한 사용해야 하는 성경의 말씀이다. 신앙 고백서는 새로운 회심자들과 제자들을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독교 신앙의 완전한 범위와 그 내용으로 가르치기 위해 오랜 세월에 걸쳐 유효성이 입증된 도구이다(마 28:20). 신앙 고백서는 젊은 사람에게나 나이 든 사람에게나 신앙의 내용을 소유할 수 있도록 말씀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 중 신앙 고백서의 가장 순수한 의도는, 참된 신앙과 복음을 적극적으로 선포함으로 사람들을 설득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이 목적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고백 행위

우리는 종종 신앙 고백서를 고풍스럽고 정적인 것으로 오해한다. 우리는 신앙 고백서를 “정통”에 따라 정리하고 그것이 필요할 때까지 서랍 속에 보관해야 할 문서로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매우 힘있고 역동적인 사건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교회에, 세상에 일어나는 일이다. 도로시 세이어스(Dorothy Sayers)가 언급하는 것처럼 “교리는 드라마이다.” 성경적으로 근거가 확실한 신앙 고백서는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서, 그리고 자기 아들에 의해 한 백성, 즉 교회를 창조하고 구속하기 위해 이 세상에 개입하신 드라마이다. 우리가 신앙을 고백하는 즉시 그것은 우리에게 온전하고, 실존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신자가 진심 어린 신앙 고백으로 입을 열 때, 교회가 오랜 세월에 걸쳐 유효성이 증명된 신앙 고백서를 가지고 공동체적으로 입을 열 때, 그것은 성령의 이끄심 속에서 하나님의 진리의 양날검으로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가 대항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 자신이 오셔서 심판하시고 잃어버린 자들을구원하시는 사건이다. 복음을 전하는 것과 신앙을 고백하는 것 사이에는 모순이 없다. 전자는 후자의 역할이자 그 결과이다.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문화대항적인 행위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삼지 않고 그냥 넘어갈지도 모르는 세상의 불신앙적 가정에 대해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다. 

신앙을 고백하자

신앙 고백서는 교회의 확성기이다. 교회가 신앙을 고백하지 않을 때, 교회는 벙어리가 된다. 그렇게 되면 교회는 믿지 않는 세상에 아무말 도 할 수 없다. 하지만 교회가 신앙을 고백할 때 하나님은 자신의 구원 사역에 그 신앙 고백을 강력하게 사용하신다. 그렇다면 선택받은 자들을 위해서 믿음의 고백을 굳게 붙잡자. 사소한 교회 내의 논쟁에 참여하지 말고, 신앙 고백서를 소유하고 그것을 사용하도록 의도된 방식, 즉 마귀와 세상의 거짓말을 삼켜버리는 확성기로, 진리의 안내자이자 방패막이로, 잃어버린 자들을 회심시키는 수단으로 신앙 고백서를 사용하자.

진정한 고백주의(confessionalism)는 항상 외부 지향적이다. 그것은 우리를 영적 전쟁과 순교로 이끌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회심이 일어나고 교회가 성장하는 토양이 된다. 이것은 내가 선교 현장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불신앙의 세상에 진리의 말씀으로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것은 교회의 선교적 명령에 결코 방해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교회가 지상 명령을 완수하는 방법의 일환이다.

이 글은 원래 테이블톡 매거진에 게재되었습니다.

세바스찬 헥
세바스찬 헥
세바스찬 헥(Sebastian Heck)은 독일 하이델베르크에 소재한 the Selbstandige Evangelish-Reformierte Kirche의 개척 교회 목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