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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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고뇌와 황홀감: 1세기 그리스도 행전”의 두 번째 글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그리스도의 성육신, 십자가 처형, 부활, 승천이라는 유례없는 구속사적 사건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오순절에 승리의 성령을 교회에 부어주신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주후 70년 예루살렘에 쏟아진 그리스도의 거룩한 진노의 중요성을 깨닫는 신자는 적다. 

하지만 주후 70년의 사건들은 신약 성경의 예언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첫 번째 강림의 극적인 결과가 된다. 단지 눅 13:32~33, 19:41~44, 21:20~24, 23:28~31절과 같은 누가복음의 몇몇 예언에서 언급한, 주후 70년의 이 대참사는 우리를 놀라게 한다. 이것은 주님이 하신 많은 비유의 주제이다(마 21:33~45, 22:1~14). 이것은 심지어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대해 눈물 흘리며 애통하게 한다(마 23:38). 예수님의 이런 애통함은 그분의 가장 긴 담화 중 하나이다. 이 담화의 첫머리는 그 해의 비참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마 24~25).

주후 70년의 중요성을 네 영역에서 살펴보자.

그리스도의 권위를 확증함

주후 70년의 대참사는 그리스도의 예언의 말씀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는 그분의 메시아적 권위를 극적인 방식으로 확증한다. 이것은 그분의 예언이 하나님의 참된 말씀일 뿐 아니라(신 18:22)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심판임을 증명한다.

“세상 끝”(마 24:3)에 나타내는 “징조”를 말해달라는 제자들의 요청으로 마태복음 24장과 25장에서 감람산 담화를 시작하신다. 예수님은 24:34절에서 계속 예루살렘의 멸망에 초점을 맞추신다. 즉 거룩한 성의 파괴와 성전의 대화재는 “하늘에서(의) 인자의 징조가” 된다(30절, KJV). 따라서 1세기의 이런 대참사가 이스라엘을 강타할 때 이것은 분명히 하늘에 계신 분의 신적 권위를 의미한다(참고. 마 26:59~64, 눅 23:20~31).

너무 많은 그리스도인이 마태복음 24:30절에 나오는 구름을 타고 오시는 예수님의 의미를 두 가지로 이유로 놓치고 있다. 첫째,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구름을 타고 임하는 것처럼 보이는 구약의 묵시 구절에 익숙하지 않다(사 19:1). 둘째, 그들은 마태복음 24장의 해석적 단서를 간과한다. 즉 성전 멸망에 대한 언급(2절), 유대에 있는 자들에게 초점을 맞춘 것(16절), 4절과 34절 사이에 있는 모든 사건의 시간적 근접성(34절)이 그것이다. 사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심판하는 자리에 앉아 있는 바로 그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이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마 26:64).

이것은 확실히 고대 교회가 마태복음 24장을 읽는 방법이다. 유세비우스(Eusebius)는 주후 70년을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우리 구주의 무오한 이 예언에서 그는 바로 이런 일들을 예언적으로 상세히 설명하셨다.”(교회사, 3:7:1)

옛 경륜을 마무리하기

구약성경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하는 표적과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이런 모형론적 시대가 담고 있는 본질적인 의미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완전한 구속사적 결론을 향한 일시적인 단계이며 웅대한 절정으로 나아가는 과정이었다. 사실 새 언약의 생명력은 한 민족, 지리적 땅, 모형적 성전을 담고 있는 옛 언약의 틀 안에 포함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마 9:17a).

신약성경은 언약적 경륜이 곧 닥칠 이 변화를 자주 가리킨다. 예를 들어, 히브리서 8:13절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사실 히브리서는 특별히 유대인 개종자들에게 “그날이 가까움(주후 70년)”을 보면 유대교로 다시 돌아가지 말라고 경고한다(히 10:25). 그런 배도는 그들을 물질적이고 곧 사라질 참된 것의 그림자로 돌아가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백성을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인도하셨기 때문이다(히 9:11; 9:24). 옛 언약 구조를 제쳐두면서 주후 70년은 최종적인 새 언약 계획을 확보한다.

이방인 사역을 확증하기

초대 교회는 유대인 선교에 만족하고 싶어 했다(행10-11장에서 베드로의 경험을 보라). 바울의 사역이 성장함에 따라 이러한 생각은 변화하기 시작한다.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는 유대인 선교에서 세계 전역에 걸친 이방인 선교라는 이 놀라운 초점의 전환은 마침내 주후 70년에 확정되었다. 

마태복음 24장으로 돌아가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된다. 성전이 무너진 결과 그리스도께서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자신의 “천사들(헬라어 앙겔로이(angeloi), 여기서 그들은 인간 사자(使者)들이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 24:31a) 따라서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마지막 희년(레 25장)-영원한 구원-이 온 세상에 선포될 것이다. 이제 옛 언약의 제약이 영원히 제거되어 세상이 교회의 선교지가 된다. 

사실 바울은 예언적으로 이방인 선교의 궁극적인 성공을 이스라엘의 “넘어짐”, 즉 그리스도로 인해 걸려 넘어지는 이스라엘과, 그 결과로 이어지는 주후 70년의 파괴를 연관시킨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넘어짐은 “세상의 풍성함”이고 이스라엘의 실패는 “이방인의 풍성함”이기 때문이다(롬 11:12). 사실 이스라엘이 “버림을 받는 것은 세상이 화목하게 되는 것”이다(롬 11:15).

그분의 준엄함에 직면함

주후 70년은 하나님의 선하심뿐만 아니라 그분의 준엄함의 현실성을 강조한다. 바울은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라 부르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롬 11:22)

주후 70년에 유대인들에게 닥친 이런 “준엄함”은 그들의 불신앙과 반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준다. 이스라엘은 영광스러운 유산을 가지고 있었다(롬 9:3~5). 또한 이스라엘의 “뿌리가 거룩하다.”(롬 11:16) 하지만 이스라엘은 거룩한 책임을 다하지 못한 비극적인 결과를 보여준다. 우리는 모두 다음 말씀에서 드러나는 교훈을 배워야 한다.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눅 12:48) 주후 70년에 내려진 이스라엘의 심판은 신성한 소명에서 나오는 두려운 의무를 강조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준엄하고 맹렬한 진노 아래서 시들어가듯이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선하신 자비의 시원한 물에서 번성한다(롬11:12, 15, 행 13:46~47). 이것이 하나님의 선하심이다. 그런데 이방인들도 이 교훈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다(롬 11:22). 

주후 70년의 공포는 신약성경에 자주 등장한다(빈번하고 강하게 예언되어 있다). 주후 70년에 일어났던 사건은 1세기 역사에 극적으로 영향을 미친다(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파국적인 사건 중 하나이다). 또한 이것은 중요한 구속사적 진리(그리스도의 최고 권위, 구약시대 경륜의 종결, 세계를 아우르는 복음의 본질, 이스라엘의 심판)를 확증하고 우리에게 중요하고 실제적인 교훈을 준다(우리의 고귀한 소명에는 거룩한 의무가 포함된다). 인류의 발자취에서 하나님의 방법을 배우는 것은 현명한 것이다. 

 

이 글은 원래 테이블톡 매거진에 게재되었습니다.

케네스 젠트리 주니어
케네스 젠트리 주니어
케네스 젠트리 주니어(Kenneth L. Gentry Jr.) 박사는 캘리포니아 코스타 메사(Costa Mesa, CA)에 있는 은혜 장로 교회(Grace Presbyterian Church)의 목사이다. 그는 The Divorce of Israel, a commentary on Revelation from American Vision의 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