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3:13 - 리고니어 미니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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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3:13

편집자 노트: 이 글은 테이블톡 매거진 시리즈: “그 구절이 정말 무엇을 의미하나요?”의 일곱 번째 글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라는 말은 분명한 성경적 가르침을 약화하기 위해 제기되는 반대의견이다. “사랑의 하나님은 아무도 영원한 심판으로 벌하지 않으실 것입니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공의를 파괴하려고 하는 악한 해석이다. 성경적 기초에서 벗어난 사랑은 문화 속에 표류하며 이제는 문화적 훌륭함이라는 새로운 종교로 통하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문화에서 벗어나 성경 안으로 들어갈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사랑이 내포하는 성경적 의미를 잘못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잘못된 해석 가운데 하나는 성경에서 사랑에 관한 가장 인기 있는 장인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나온다. 

고린도전서 13:13절에서 바울은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라고 기록한다.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이 말씀이 믿음이나 소망보다 사랑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라고 결론짓는다. 만약 하나님께서 믿음, 소망, 사랑, 세 가지 속성이 서로 강화하도록 설계하셔서, 셋 중 어느 하나가 약화된다면 셋 모두의 완전성이 훼손하는 방식으로 구축된 것이라면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제빵사는 빵의 중요한 요소가 효모균, 물, 밀가루, 소금이라고 말할 것이다. 소금을 넣지 않은 빵이 다소 싱겁다는 데 동의하고 소금이 이 네 가지 중 가장 중요하다고 결론짓는다면 빵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 왜냐하면 밀가루, 효모, 물을 첨가하는 데 신경을 덜 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믿음과 소망으로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사랑은 성경적 사랑의 정의 자체를 훼손한다.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동안, 고르게 증폭되는 믿음, 소망, 사랑이 필요하다.

믿음, 소망과 균형을 맞추지 않는 사랑은 사랑스럽지 않은 사랑이 된다. 간략하게 그리고 일반적으로 믿음을 고려할 때 우리는 성경이 믿음이라는 단어를 세 가지 방식으로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믿음은 우리의 구원의 도구(엡 2:8), 즉 하나님과 그분의 사역(마 16:8; 17:20; 히11) 또는 정통 교리(유 3)에 대한 확고한 신뢰라고 할 수 있다. 고린도전서 13장과 이 서신 전체에서 바울이 믿음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대한 배경은 이 구절에서 믿음이 ‘하나님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성령께서 주신 신뢰’로 이해되어져야 함을 가장 강력하게 지지한다(고후 5:7). 그리고 이런 신뢰는 예수님 안에서 가장 잘 나타났다. 이 장에서 사용된 것처럼 성경적 믿음은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대상을  영광스러운 하나님으로 정의함으로써 사랑과 균형을 이룬다. 사랑이 믿음보다 우선시되거나 믿음을 배제할 때 사랑은 그 대상이신 복되신 하나님을 잃게 된다.

소망을 고려할 때도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소망은 믿음의 인내, 즉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것을 이루실 것에 대한 확고한 기대이다. 소망 없는 사랑을 상상해 보라.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만물이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선을 위해 끝날 것이라는 기대가 없다면(롬 8:28), 그런 사랑은 변덕스럽고 순간적이며 단순히 주관적인 감정이 되고, 헌신과 언약에서 분리되어 얕은 소망과 일반적인 만족으로 바뀌게 된다.

그렇다면 이것이 문제다. 우리가 고린도전서 13:13절을 믿음과 소망보다 사랑을 더 중요시하는 방식으로 읽는다면, 성경적 사랑 자체를 잃어버리게 된다. 사랑이 존재하고 번성하기 위해서는 믿음과 소망이 필요하다. 이 장의 전체적인 맥락에서 고린도전서 13:13절을 고려할 때 이런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바울은 사랑을 그리스도인의 삶에 필요한 요소로 고려하는 것에서(1~3절) 성경적 사랑의 정의를 고려하는 것으로(4~7절), 그리스도인으로서 현재 순간을 아우르는 시간 선상 위에 믿음, 소망, 사랑을 고려하는 것으로, 나아가 예수님이 재림할 때와 재림 이후에 만물의 절정으로 나아간다. 중요성의 관점에서 볼 때, 믿음, 소망, 사랑은 동등하다. 오래 지속될 수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볼 때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간단히 말해서, 믿음과 소망은 천국에서는 필요하지 않다. 믿음이 하나님과 그분의 사역에 대한 현재적인 신뢰이고, 그 믿음이 타락한 세상에서 현재 우리가 믿음없이 결론 짓고자 하는 것과 상충되는 것이라면(고후 5:7), 천국에서는 더이상 믿음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결국 하나님을 실제로 존재하는 그대로, 분명하게 볼 것이기 때문이다(고전 13:12). 마찬가지로 우리는 더는 소망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희망했던 것을 완전히 소유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희망했던 모든 것을 가질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성취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은 천국에서 계속될 것이고 더 강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위대한 하나님을 영원히 완전하게 사랑할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영원의 개념에서 볼 때 사랑은 세 가지 모두의 목적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믿음과 소망을 능가한다.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동안, 고르게 증폭되는 믿음, 소망, 사랑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 세 가지 모두가 성경적으로 정의되고 서로 균형을 이루게 해야 한다. 고린도전서 13:13절을 잘못 해석함으로 사랑을 우선시하여 이 세 가지 모두를 파괴하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믿음과 소망으로 만물의 성취인 천국을 고대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마침내 그리스도를 온전히 그리고 영원히 사랑하는 마음의 소망을 갖게 될 것이다.

이 글은 원래 테이블톡 매거진에 게재되었습니다.

조 홀랜드
조 홀랜드
조 홀랜드(Joe Holland) 목사는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 있는 그림케 신학 대학원(Grimké Seminary)의 편집장이며 미국 장로교(PCA)의 강도 장로이다.